(16)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아내와 어머니, 여자로 살아가는 데 드는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음, 저는 그 희생과 노고를 잘 알아요. 우리가 함께 30분을 보낸 뒤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될 겁니다. 눈에 확 띄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만들 겁니다. 참 중요한 것이죠.”
(46)
엘리자베스는 이 말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자신은 남자들이 어떤지 모른다. 캘빈과 죽은 오빠 존, 메이슨 박사는 빼고, 어쩌면 월터 파인까지 제하더라도, 이제껏 봐온 남자들은 최악이었다. 남자들은 엘리자베스를 멋대로 휘두르고, 만지고, 지배하고, 입 다물리고, 교정하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어 했다. 왜 남자들은 자신을 평등한 인간으로, 동료로, 친구로, 동등한 존재로, 하다못해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선 사람으로도 봐주지 않는 걸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인 다음 뒷마당에 묻어놓았다가 발각된 범죄자를 맞닥뜨린 게 아니고서야 누굴 처음 봤으면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니야?
(48)
해리엇은 손톱에 낀 때를 빼내면서 엘리자베스가 여성에게 배정된 종속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째서 작은 몸집을 뇌가 작다는 생물학적 표시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왜 여성이 선천적으로 열등하며 그만큼 예쁘장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개념을 주입받은 많은 여성이 그걸 다시 아이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남자애는 남자다워야지’라든가 ‘여자애들이 어떤지 알잖아’ 같은 말을 해대면서 말이다.
(72-73)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분자식을 가리켰다.
“이제 세 번째 결합을 보겠습니다. 수소 결합은 이 셋 중에 가장 약하고 섬세한 결합니다. 저는 이것을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양쪽 다 그저 상대의 시각적 정보만을 근거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그 남자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서 끌리고, 그 남자는 여러분의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어서 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해보니, 그 남자는 남몰래 나치즘을 추종하고 있었던 데다 여자들이 너무 불평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펑 하고 끝나는 거죠. 약한 결합은 이렇듯 깨지고 맙니다. 이게 바로 수소 결합입니다. 숙녀분들. 만약 뭔가가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면, 대부분 생각처럼 진짜일 리 없다는 걸 화학적으로 알려주는 표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86)
“대중들이 멋대로 당신의 이야기를 지어내게 두면 안 돼요, 조트 양. 그들은 진실을 왜곡할 줄 알거든요.”
“기자들도 마찬가지죠.”
(192-193)
“저는 ‘우리’를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로스 씨. 우리의 실수 말예요. 자연은 인간보다 더 높은 지적 영역에서 작용합니다. 우리는 더 배우고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열어젖혀야 합니다. 명석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무식한 편견 때문에 과학 연구를 못 하고 있어요. 저는 그 점에 무척 분노하고, 당신도 마땅히 분노해야 해요. 과학은 기아와 질병, 멸종 등 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기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적 관념으로 일부러 다른 이의 앞길을 막는 자들은 부정직할 뿐 아니라 참으로 게으른 인간들이에요. 헤이스팅스 연구소는 그런 인간이 가득한 곳이죠.”
(230)
“화학의 기본은 변화잖습니까. 변화는 당신의 신념 체계의 바탕을 이루고요. 변화는 좋은 겁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해요. 우리는 현 상태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곤 하죠. 하지만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당신의 경우에는 오빠의 자살과 캘빈의 죽음 같은 일은 사실 언제나 일어나요. 엘리자베스, 사건사고는 항상 생깁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말이죠.”
(236)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