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에서 주희가 만든 성리학이 동방에 퍼져 나간 것은 불교를 배척하고 새로운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생긴 것도 있지만 조선이 유학을 적극 장려 하여 더 빨리 성리학을 자리잡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 뛰어난 학자를 꼽으라 하면 포은, 익재, 안향, 목은 등이 있지만 조선에서는 유독 동방5현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선현을 모시는 서원이 그러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고 어떠한 학문을 배우자 하였을 때는 추종하는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인물이 동방 5현이라 생각하여 더욱 중시하는 결과를 나은 것으로 생각된다.
답사를 하면서 동방5현의 묘와 서원을 가 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 마음대로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동방5현의 묘와 서원을 답사를 사진기에 담고 머리속에 넣었다.
그러한 내용을 글로 표현 하여 본다.
먼저 수현이라 일컫는 현풍의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묘와 서원을 찾았다.
묘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한훤당의 묘소이다. 석등과 망주석은 현대물이지만 문인석은 금관조복을 입었는데
조선중기 보이는 양식으로는 빠른 편에 속한다. 석마와 동자상이 있고 묘 서편으로는 묘비가 있다.
잘 꾸며진 묘를 보고 나서 도동서원으로 내려와 내부를 보면 재미 있는 것도 많다.
기둥의 흰띠라던가 높게 쌓은 축담에는 여러가지 무늬처럼 돌을 쌓았는데 여러서원에서 보지 못한 것으로 건축의
백미로 여기진다.
5현 중에서 首賢이라 표현 된것은 신도비 내용의 일부이지만 5현중에서 제일 년장자 인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도동서원은 여름에 가도 좋았던 곳이고 겨울에도 좋았던 곳이다.
기둥에 보이는 백미를 보면서 삼국지 인물인 마량을 떠올리게 하는데 나만의 생각일지도.....
도동서원은 대표적 배산임수의 서원이다. 뒤는 산이고 앞은 낙동강이 흘러 그러한 느낌이 많이든다.
누군가 서원에 연못이 없다 하였는데 서원에는 연못이 굳이 필요 없다. 깊은 산속의 사찰이 아니고
임수에 있으므로 화재에 필요한 물은 쉽개 구 할수 있기에 그렇다.
남계서원이나, 옥산서원 도산서원은 쉽게 물을 구할 수 있는 구조 이지만 정암 조광조의 심곡서원은 가까이에는 물이 없다.
도동서원이라는 이름은 현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원주, 곡성등에도 보여서 여러 곳에서 이름이 쓰인 것으로 생각된다.
도동서원에서 볼 거리는 많아서 나열하기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곳이다.
이 여름에 다시가고 싶다.
그 다음은 일두 정여창이다.... 하나의 좀벌레라는 호를 썼던 정여창이다. 함양에는 정여창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유학적으로는 함양은 정여창의 고장이다. 장성이 필암서원에 모시는 김인후의 고장이듯이..
글을 쓰다가 한가지 생각 나는 것이 있는데 서원 철폐령에 의해 남아 있는 서원 중 2번째 서원이라는 것이
남계서원 이지만 사액순서는 분명히 임고서원이 빠르다. 이 점을 꼭 기억해서 알려주기 바란다.
남계는 서원 앞에 흐르는 냇가를 말한다.
정여창의 묘는 남계서원에서 바라보면 뒷산에 있지만 차를 타고가면 5분거리에 있다.
묘비를 비롯하여 몇좌의 묘소 중에서 망주석과 상석이 있고 풍수에서 보이는 막이 돌이 있다.
남계서원 강학공간인데 편액이 처마 밑에 있지만 기둥을 사이에 두고 편액을 걸었다.
서고와 재실도 있고 들어 오는 입구 루각의 이름은 풍화루 이다. 풍월을 읊는다 뜻인데 처음에는
바람을 뜻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남계서원에는 하마비가 있는데 현대에 제작되었다. 5현중 하마비가 없는 곳은 유일하게 도동서원이다.
낙동강변에 있는 이노정이다. 일두와 한훤당 가끔 만나서 학문을 토론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전설이 있지만
문이 닫혀 들어 갈수 없다.
함양과 현풍을 오가면서 풍류를 즐겼다 하는데 그 전설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면....
회재선생의 묘는 옥산서원에서 20여분거리에 있는 달전에 있다. 그곳 이름은 달전 재사이다.
비석앞에 향로석이 아름다웠는데 도난을 당하고 새로 하였다. 여기에는 또 다른 신도비가 있는데 옥산서원의 신도비 보다는
격이 떨어진다. 비수와 귀부는 없다.
회재선생의 문집에는 그의 할머니의 기록을 남겼는데 울산과 관련된 인물의 후손이며, 경상도 수군만호
이고 언양 구량리 은행나무 전설이 깃든 이지대 선조의 손녀분이 회재의 조모이시다.
문집에서 의문은 할머니 기록은 비교적 잘 남겼는데 조부의 기록은 거의 없다. 왜 그렇게 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옥산서원 강당이다. 편액의 글씨는 추사이고 편액 뒷면에는 아계 이산해의 글이 보인다.
정료석은 석등의 부재인데 추정하기는 13층석탑이 있는 정혜사지의 부재로 추정된다.
회재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옥산리는 필자의 선조 고향이다.
자주 가는 곳이고 옥산이라는 號도
옥산리를 따왔다.
옥산서원 하마비이다. 길을 내면서 둑 근처에 있다가 다시 서원 입구로, 다시 글이 안 보여서, 보이게
세우게하는 등 곡절이 있는 하마비이다.
독락당과 장산서원은 회재 깊은 인연이 있는곳으로 배다른 아들과 적손이 머무는 곳이 서원 가까이 있다.
서원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서원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라 다른 곳과 다르게 물이 풍부한 서원이다.
여름에는 시원한물이 흐르는 서원이다.
정암 조광조 신도비이다.
심곡서원에서 조금만 걸어오면 한양조씨 무덤군 제일 위쪽에 묘가 있다.
주초위왕의 모함을 받고 화순에서 귀향을 살다가 나중에 사사가 되었지만 나중에 사림에 의해서 신원이 복원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도 죽고 난 뒤에 명예는 부질없어 보인다. 필자의 생각에는
심곡서원 하마비는 입구에 있지만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택시를 타고 이러저리 돌다가 결국에 그 자리에 다시 오니
있는 하마비.
생각만 해도 내가 어리석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검은 돌에 하마비라 되어있다.
10월의 은행나무가 아름다운 심곡서원은 수원에서 택시를타고 왔다.
택시기사 놀라서 대체 무엇하시는 분인데
멀리 택시를 타는지 의아해 모습이 선하다.
마지막으로 퇴계의 서원인 도산서원이다. 1000원 지폐에도 그 모습이 보이는 서원이다.
원래는 동방4현 이었는데 퇴계는 제자가 많아서 5현에 들어간 느낌이 많이든다.
쉽게 말해서 학문도 뛰어 나지만 이름난 제자를 많이 길러서 5현에 들어 갔다 할 정도로 많은 제자를 배출 하였다.
나만의 생각인가?
퇴계의 무덤은 서원에서 10여분거리에 있다. 나즈막한 산에 있으며 망주석과 동자석 묘비가 있다.
앞에는 낙동강 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그 부근에 종택이 있다.
묘비에는 월문이 새겨져 있으며 모양이 당파풍을 연상 시킨다.
퇴계선생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많이 알려지고 퇴계학파가 있을 정도로 학문적 사상이
동방에서 제일로 칭할 정도이다.
동방5현의 서원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도산서원이다.
배산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박물관과 여러 개의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동방 5현의 내면과 사상을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하나 서원과 묘를 다 갔다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필자는 큰 기쁨을 느낀다.
멀고 먼 심곡서원이나 가까이 있지만 등한시 하여 가지 않는 서원이나
대학자의 사상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이었고, 직접 발로 뛰어 보고 왔다는 사실에 답사의 즐거움이
나오는것이다.
동방 5현에 대해서 깊이는 모르지만 서원, 묘, 종택 등을 가 보았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남한에 남아 있는 47개 서원중 북한의 것은 제외하고 남한에 남아 있는 서원을 답사를 다녔는데
의정부, 하남, 경기 광주에만 갔다 오면 끝이난다.
재미와 감동의 답사의 길을 떠나는 답사객
벽라 이희득
첫댓글 좋은 날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