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에는 민족의 개념이 없었다 라는 주장을 흔히, 너무도 흔히 보아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는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문제로 보인다. 아래 글에서 오랜벗님의 주장(1625번 꼬리말)은 이와 같은 문제가 한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즉, 고구려가 단순히 속지주의적 입장에서 우리 민족으로 분류된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까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명확히 밝힐 필요성을 더더욱 절감한다.
먼저 서양에서 왜 민족의 개념이 18C 이후에 등장하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왜 그럴까…그것은 간단하다. 왕족끼리의 혈연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신성로마제국), 에스파냐(스페인)등은 서로 끊임 없이 결혼을 통한 혈연적 유대와 왕위쟁탈전을 벌여왔음은 구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모른다면 ‘전근대에 민족이란 개념이 없었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께서는 서양사를 간단히라도 공부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러한 혼인으로 이어진 혈연관계는 프랑스에 사는 사람과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다. 즉, 에스파냐의 국민이나 독일의 국민이 느끼는 지배층은 같은 혈연적 유대를 가진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울산현대나 전북현대나 같은 팀으로 보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관계는 유럽의 거의 모든 왕조가 동시적으로 가진 문제점의 하나였고 이러한 문제는 18C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이후 국민, 즉 민족의 개념이 유럽 사회를 뒤흔들게 되기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유럽이 통합될 수 있는 요인도 오랜 기간 이러한 혈연적 유대를 통한 관계가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개념이 아니란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위와 같을까…그렇지 않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으로 보인다. 우리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는 민족의 개념이 분명히 존재했다. 단지 같은 민족은 같은 국가를 가져야 한다거나, 민족의 통합을 고려한다든가 하는 근대적 개념이 없었을 뿐인 것이다. 돌궐의 오르콘 비문에는 분명히 이렇게 적혀 있다.
‘국가를 가진 민족이었는데 우리 조국은 어디에 있으며 카간(왕)을 가진 민족이었는데 우리의 카간은 누구인가?’
즉, 내분과 당의 공격으로 분열된 투르크 민족에 대한 호소문인 것이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여진의 아구타가 여진의 민족 감정에 호소한 점, 백제가 북위에 보낸 국서 등은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말하여 주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 단지 평양이 지금 우리의 땅이라서 속지주의를 적용하여 우리 민족이라 한다는 일부 인사들의 주장에는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역사를 봐줄 것을 당부 드린다. 단지 같은 민족은 하나여야 한다는 통일의 개념을 가지지 못하였고 이러한 감정을 지배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동족의 개념을 가지지 못하였다 하고 말하는 것은 서양의 사관을 동양에 그대로 적용시킨 데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지금 맹장 수술을 받은 뒤라 오래 앉아 쓰기 곤란하고 약간의 통증으로 논리 정연한 반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제발 상황과 역사를 고려하시기를 바란다. 서양의 학자들이 민족의 개념이 18C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이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보고 그렇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PS:고구려가 우리의 선조들이 세운 국가임을 어떤 시대에도 의심한 적이 없는데 최근 일부 인사들이 예맥족과 한족의 혈연의 무관함을 내세워 속지주의네, 뭐네 하고 떠들곤 하는데 그럼 은허는 누구의 것인가...은허의 주인공들이 지금 중국인들하고 '혈연적'으로 얼마나 연관이 있겠는가...그렇다면 속지주의를 말하는 이들의 주장데로 고구려인들과 중국인들과는 얼마나 혈연적 관계가 있겠는가...로마인들과 지금 이탈리아인들과 얼마나 혈연적 관계가 있겠는가...고대 페르시아나 파르티아의 문명을 건설한 이들과 지금 그곳에 사는 이들과 얼마나 혈연적 관계가 있겠는가...세상에 단일 민족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세상엔 주인없는 무덤 뿐인 것이다. 도대체 동아시아사에 있어 민족의 개념이 18C 이후에 등장했다는 이들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아무런 근거 없는 주장이라면 이제 그만 입을 다무시기를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