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이미지 변주곡
<클림트>
2006.06.20 / 송순진 기자
오스트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1900년대 초 '키스', '유디트', '다나에' 등 화려하고 장식적인 작품들로 세대를 넘어 이름을 떨쳤던 클림트의 세계가 스크린에 옮겨졌다. 20일 서울 종로 씨네코아에서 언론에 처음 공개된 <클림트>(수입/배급 스폰지)는 황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클림트의 그림을 바라보듯, 꿈과 현실, 이성과 광기가 한데 섞인 그의 기억과 무의식 속으로 빠져든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병원 침대에 뉘인 구스타프 클림트(존 말코비치). 정신마저 혼미해진 그는 죽음을 앞두고 환상과 기억의 세계 속에 빠져든다. 그 중심에는 무희 레아 드 카스트로(새프론 버로우즈)를 향한 클림트의 사랑과 열정의 역사가 놓여있다. 영화와 과학의 등장, 규정할 수 없는 예술의 출현, 철학과 논리가 극도로 날이 선 혼란과 이성의 시대 19세기 말. 구스타프 클림트는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멜리에스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레아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을 가짜 레아라고 소개하며 영화에 등장한 진짜 레아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레아의 매혹에 빠져든 클림트는 그녀를 이상적이고 에로틱한 뮤즈로 그림 속에 투영한다. 그러나 레아의 정체는 점점 모호해지고, 낯선 존재가 끝없이 나타나 클림트를 괴롭히는 등 죽음에 다다른 클림트의 기억은 혼란으로 휩싸인다.
<클림트>는 '키스'의 모델이었던 연인 에밀리 플뢰게와 동시대 화가였던 에곤 실레, 1900년대 초의 영화감독 멜리에스와 같은 실제 인물과의 관계도 클림트의 환상 속에 녹여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영화화하며 스토리텔링이 아닌 이미지의 변주에 주력했던 라울 루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라울 루이즈 감독은 "클림트가 전체보다는 세부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표현보다는 장식을 중요시했던 것과 같이, 디테일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때, 바로 한 세기의 마지막이었던 당시를 잘 반영하길 바란다"는 연출 의도를 가지고 클림트의 작품이 드러내는 이미지를 영화에 투영했다. 이름만으로 하나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배우 존 말코비치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연기했고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레아는 <프리다><트로이>에 출연했던 새프론 버로우즈가 맡았다. 실제 모습과 꼭 닮아 더욱 눈에 띄는 에곤 실레 역은 니콜라이 킨스키가 연기했다. 6월 29일 개봉.
After Screening
<클림트>는 천재적이라는 수사가 진부해져 버린 감독 라울 루이즈가 또 한명의 천재 클림트에게 스스로의 예술가적 고뇌를 투영시킨 듯한 영화로 읽힌다. 감독과 주인공의 이름값에 매우 걸맞게도 <클림트>는 결코 전형적인 '전기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영화로 탄생했다. 클림트의 작품에도, 클림트의 생애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 영화는, 그러나 그 어떤 전기영화못지 않게 흥미로운 방식으로 클림트를 해석하고 비평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준비운동을 요구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은 클림트를 발견 또는 재발견하는 것을 넘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까지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최광희(FILM2.0 온라인 편집장)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클림트의 그림처럼, 라울 루이즈의 <클림트> 역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 그 속에는 매독에 걸려 죽어가는 한 화가의 초상이, 그림에 관한 열정이, 애욕에 불타오르는 한 인간이 숨어 있다. 이제 막 시작된 20세기의 빈을 배경으로 전운이 감도는 어지러운 시대상과 한 예술가의 복잡한 내면 세계를 다양한 시각적 장치로 구현해 낸다. 숨막힐 듯 아름다운 영화라고 할 수밖에. 이상용(영화평론가)
<클림트>는 라울 루이즈 감독을 루이스 브뉘엘 혹은 알렝 레네에 비교하거나 그 적자라고 평가하는 일이 헛되지 않은 것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카메라의 시점이 종횡무진 왜곡되고 공간과 인물, 시간과 이야기가 자유롭게 흩어지는 <클림트>는 그 자체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과 인생을 닮아있다. 이는 영화가 당대의 대중들이 클림트에게 쏟아냈던 욕지거리와 유사한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데카당트, 아르누보 따위의 제한적 수사로 클림트와 그의 작품을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영화다. 허지웅(FILM2.0 기자) |
첫댓글 네이버에 있는, 제 블로그에서 이 기사를 한 번 옮겨 보았습니다. 이전의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던 피카소를 능가하는, 기록을 갱신했다는 내용이라. 이 분도 살아 생전에 피카소 만큼 유명세를 타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엘로이즈님 좋은 자료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 저련 고가에 팔리도록 유명세를 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살다보면 그런날도 올까요? 그랬으면 좋으련만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