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연합뉴스 2013-3-14
'킬링필드' 전범 1명 결국 사망…단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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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필드' 핵심 전범 이엥 사리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을 받고 있는 이엥 사리 전 캄보디아 외무장관<자료사진> |
피해자들 "정의 실현에 대한 희망 사라져"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캄보디아인 2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킬링필드' 전범에 대한 재판이 지지부진 결론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핵심 전범 4명 가운데 1명이 결국 숨졌다.
양민 대학살의 책임자들을 32년 만에 겨우 법정에 세웠지만 4명 모두 고령이어서 법의 심판을 받기 전에 숨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킬링필드 학살을 주도했던 이엥 사리(87) 당시 외무장관이 14일 숨졌다고 확인했다.
BBC와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그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2인자인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이엥 티리트 전 내무장관과 함께 핵심 전범 4인방으로 지목돼 2011년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크메르루주 정권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한 캄보디아 지식인층을 회유, 국내로 돌아오도록 한 다음 고문하고 처형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혈압과 심장, 신장 등의 문제로 수차례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최종 판결 전에 숨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왔다. 게다가 그의 부인인 이엥 티리트도 노인성 치매 등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판단에 따라 석방된 상태여서 이제 제대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둘밖에 남지 않았다.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은 그동안에도 직원들의 파업이나 예산 부족으로 심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을 빚어왔다. 재판 과정도 더뎌 전범들을 정말로 처벌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낳아왔다.
지금까지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도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1만5천명을 고문, 처형한 투올 슬렝(일명 S-21) 교도소장인 카잉 구엑 에아브 뿐이다.
이엥 사리의 사망 소식을 접한 크메르루주 정권의 피해자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춤 메이(79)는 "이엥 사리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시인하고 잘못된 행동이었으니 되풀이하지 말라고 하는 한마디면 나는 충분했다"며 탄식했다. 그는 "이제는 직접 답변을 들을 수도 없게 됐고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도 사라졌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전범 재판소 대변인 라스 올슨도 "이엥 사리에 대한 법적 절차를 완수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며 남아있는 2명에 대한 재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1998년 숨진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5∼1979년 집권기간 동안 200만여명에 달하는 지식인과 반대파를 처형하는 '피의 숙청'을 자행했다.
지금도 크메르루주 출신 간부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캄보디아 정권의 처벌 의지 부족 탓에 30년 넘게 제대로 된 재판도 열리지 못했다.
유엔의 끈질긴 압력으로 2006년 전범재판소가 설치됐지만, 학살의 주범들은 재판에서도 학살은 꾸며낸 이야기라고 강변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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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필드' 핵심 전범들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에 회부된 '킬링 필드' 핵심 전범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왼쪽), 누온 찌어 전 공산당 부서기장(중앙),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오른쪽)<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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