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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IM 8:80 – 8:89_교정된 지각으로서의 치유
IX. Healing as Corrected Perception
IX. 교정된 지각으로서의 치유
80 We once said that the Holy Spirit is the Answer. He is the Answer to everything because He knows what the answer to everything is. The ego does not know what a real question is, although it asks an endless number. Yet you can learn this as you learn to question the value of the ego and thus establish your ability to evaluate its questions. When the ego tempts you to sickness, do not ask the Holy Spirit to heal the body, for this would merely be to accept the ego's belief that the body is the proper aim for healing. Ask rather that the Holy Spirit teach you the right perception of the body, for perception alone can be distorted. Only perception can be sick because only perception can be wrong.
80 우리는 언젠가 성령은 유일한 응답이라고 말했다. 성령은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응답이니, 성령은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답이 정녕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에고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제기하지만, 유일한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너는 에고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여 에고의 질문들을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는 법을 배움에 따라, 진짜 질문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에고가 너를 병에 걸리라고 유혹할 때, 성령께 몸을 치유해 달라고 청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몸이 치유의 본래 대상이라는 에고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성령께, 몸에 대한 바른 지각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하라. 오로지 지각만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지각만이 그릇될 수 있기에, 오로지 지각만이 병들 수 있다.
81 Wrong perception is distorted willing, which wants things to be as they are not. The reality of everything is totally harmless because total harmlessness is the condition of its reality. It is also the condition of your awareness of its reality. You do not have to seek reality. It will seek you and find you when you meet its conditions. Its conditions are part of what it is. And this part only is up to you. The rest is of itself. You need do so little because it is so powerful that your little part will bring the whole to you. Accept then your little part, and let the whole be yours.
81 그릇된 지각은 왜곡되게 뜻을 내는 것이며, 그것은 사물이 그 본래 모습이 아니기를 원한다. 모든 것의 실재는 전적으로 무해하니, 전적인 무해함은 모든 것의 실재를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네가 모든 것의 실재를 자각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너는 실재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네가 실재의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실재가 너를 찾아 나서서 발견할 것이다. 실재의 조건들은 실재의 정체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오로지 이 역할만이 너에게 달려있으며, 나머지는 저절로 갖춰져 있다. 네가 이렇게 조금만 하면 되는 이유는, 네가 하는 그 작은 역할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서 너에게 전체를 다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의 작은 역할을 받아들여라. 그럼으로써 전체가 네 것이 되게 하라.
82 Wholeness heals because it is of the mind. All forms of sickness, even unto death, are physical expressions of the fear of awakening. They are attempts to reinforce unconsciousness out of fear of consciousness. This is a pathetic way of trying not to know by rendering the faculties for knowing ineffectual. "Rest in peace" is a blessing for the living, not the dead, because rest comes from waking, not from sleeping. Sleep is withdrawing; waking is joining. Dreams are illusions of joining, taking on the ego's distortions about what joining means if you are sleeping under its guidance. Yet the Holy Spirit, too, has use for sleep and can use dreams on behalf of waking if you will let Him.
82 온전성이 치유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음의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음을 포함한 모든 형식의 병은 깨어남에 대한 두려움이 육체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병은 의식하기가 두려워서 무의식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알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알지 않으려고 하는 안쓰러운 방법이다. “평화 속에 안식하다.”라는 말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축복의 말이니, 안식은 잠이 아닌 깨어남에서 오기 때문이다. 잠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고, 깨어나는 것은 결합하는 것이다. 꿈이란 결합의 환상으로서, 만약 네가 에고의 안내 아래 잠을 잔다면, 그것은 결합의 의미에 대한 에고의 왜곡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도 잠을 사용하는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네가 허락한다면 깨어남을 위해 꿈을 사용할 수 있다.
83 How you wake is the sign of how you have used sleep. To whom did you give it? Under which teacher did you place it? Whenever you wake dispiritedly, it was not of the Holy Spirit. Only when you awaken joyously have you utilized sleep according to the Holy Spirit's purpose. You can indeed be "drugged by sleep," but this is always because you have misused it on behalf of sickness. Sleep is no more a form of death than death is a form of unconsciousness. Unconsciousness is impossible. You can rest in peace only because you are awake.
83 네가 잠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네가 어떻게 깨어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너는 누구에게 잠을 주었는가? 어느 교사에게 잠을 맡겼는가? 네가 낙심한 채로 깨어난다면, 그 잠을 성령께 맡긴 것이 아니다. 네가 오로지 기쁘게 깨어날 때만, 성령의 목적에 따라 잠을 사용한 것이다. 너는 과연 “잠에 취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항상 병을 위해 잠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의식의 한 형식이 아니듯, 잠은 죽음의 한 형식이 아니다. 무의식은 불가능하다. 네가 평화 속에 안식할 수 있는 이유는, 깨어있기 때문이다.
84 Healing is release from the fear of waking and the substitution of the will to wake. The will to wake is the will to love, since all healing involves replacing fear with love. The Holy Spirit cannot distinguish among degrees of error, for if He taught that one form of sickness is more serious than another, He would be teaching that one error can be more real than another. His function is to distinguish only between the false and the true, replacing the false with the true.
84 치유는 깨어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깨어나겠다는 뜻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깨어나겠다는 뜻은 곧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모든 치유는 두려움을 사랑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잘못의 정도를 구분할 수 없다. 만약 성령이 어떤 형식의 병이 다른 형식의 병보다 더 심각하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어떤 잘못이 다른 잘못보다 더 실제적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기능은 오로지 거짓된 것과 참된 것만을 구별하여,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85 The ego, which always weakens the will, wants to separate the body from the mind. This is an attempt to destroy it, yet the ego actually believes that it is protecting it. This is because the ego believes that mind is dangerous and that to make mindless is to heal. But to make mindless is impossible, since it would mean to make nothing out of what God created. The ego despises weakness, even though it makes every effort to induce it. The ego wants only what it hates. To the ego this is perfectly sensible. Believing in the power of attack, the ego wants attack.
85 에고는 항상 뜻을 약화시키며, 따라서 몸을 마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어 한다. 이것은 마음을 파괴하려는 시도이지만, 에고는 실제로 자신이 몸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에고는, 마음은 위험하므로 마음이 없게 만드는 것이 치유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없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을 가지고 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비록 약함을 유발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약함을 경멸한다. 에고는 오로지 자신이 증오하는 것만을 원한다. 에고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말이 된다. 에고는 공격의 힘을 믿기에, 공격을 원한다.
86 You have surely begun to realize that this is a very practical course which means exactly what it says. So does the Bible, if it is properly understood. There has been a marked tendency on the part of many of the Bible's followers and also its translators to be entirely literal about fear and its effects but not about love and its results. Thus, "hellfire" means "burning," but raising the dead becomes allegorical. Actually, it is particularly the references to the outcomes of love which should be taken literally because the Bible is about love, being about God.
86 이 수업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아주 실제적인 수업이다. 너는 분명 이를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대로 이해한다면, 성서도 그와 같다. 성서를 따르는 자들과 성서의 번역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두려움의 결과는 완전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사랑과 사랑의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향을 뚜렷이 보여줬다. 따라서 “지옥 불”은 “불타는”을 의미하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비유가 된다. 실제로 반드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특히 사랑의 결과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이다. 하느님에 관한 책인 성서는 사랑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87 The Bible enjoins you to be perfect, to heal all errors, to take no thought of the body as separate, and to accomplish all things in my name. This is not my name alone, for ours is a shared identification. The name of God's Son is one, and you are enjoined to do the works of love because we share this oneness. Our minds are whole because they are one. If you are sick you are withdrawing from me. Yet you cannot withdraw from me alone. You can only withdraw from yourself and me.
87 성서는 너에게 완벽할 것을, 모든 잘못을 치유할 것을, 몸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말 것을, 그리고 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것을 명한다. 이것은 나의 이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름은 공유된 정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들의 이름은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하나인 상태를 공유하기에, 너는 사랑의 과업을 이행하라는 명을 받았다. 우리의 마음이 온전한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너는 병들었을 때 나로부터 물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는 나로부터만 물러날 수는 없다. 너는 단지 너 자신과 나로부터 동시에 물러날 수만 있을 뿐이다.
88 I would not ask you to do the things you cannot do, and it is impossible that I could do things you cannot do. Given this, and given this quite literally, there can be nothing which prevents you from doing exactly what I ask, and everything which argues for your doing it. I give you no limits because God lays none upon you. When you limit yourself, we are not of one mind and that is sickness. Yet sickness is not of the body, but of the mind. All forms of dysfunction are merely signs that the mind has split and does not accept a unified purpose.
88 나는 네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할 수 없는 것은 나도 할 수 없다. 아주 문자 그대로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는, 너는 내가 부탁하는 일과 너에게 강력히 요청되는 모든 일을 어떤 방해도 없이 정확하게 할 수 있다. 나는 너에게 어떤 한계도 부과하지 않을 것이니, 하느님은 너에게 어떤 한계도 지우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네가 너 자신을 제한할 때 우리는 한마음 상태가 아니며, 그것이 곧 병이다. 하지만 병은 몸이 아닌 마음의 것이다. 모든 형식의 기능 장애는 단지 마음이 분열되어서 통합된 목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89 The unification of purpose, then, is the Holy Spirit's only way of healing. This is because it is the only level at which healing means anything. The re-establishing of meaning in a chaotic thought system is the only way to heal it. We have said that your task is only to meet the conditions for meaning since meaning itself is of God. Yet your return to meaning is essential to His because your meaning is part of His. Your healing, then, is part of His health since it is part of His Wholeness. He cannot lose this, but you can not know it. Yet it is still His Will for you, and His Will must stand forever and in all things.
89 그렇다면 목적의 통합은 성령이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치유가 의미 있는 유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사고체계에 의미를 재정립하는 것은 그것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전에, 너의 과제는 단지 의미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의미 자체는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의 의미는 하느님 의미의 일부이며, 따라서 네가 의미로 돌아오는 것은 하느님의 의미에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너의 치유는 하느님의 온전성을 이루는 일부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건강을 이루는 일부다. 하느님은 당신의 온전성을 잃으실 수 없지만, 네가 그것을 알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모든 것 안에 영원히 서 있다.
[출처] [4월 7일] 텍스트 8:80 – 8:89 (한국 기적수업 공부 모임) | 작성자 도서출판 기적의 향기
첫댓글 병은 의식하기가 두려워서 무의식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치유는 깨어남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이며,
깨어나겠다는 뜻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깨어나겠다는 뜻은 곧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모든 치유는 두려움을 사랑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