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는 근거를 마련해 주셨고,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근거를 이루셨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을 받게 되는 이게 객관적 팩트다. 구원의 근거도 있고, 지식도 있으면 이젠 나가서 전하면 된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신다.
모든 영광과 은혜와 능력이 하나님께 다 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 삶에 다 임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은 능력만 받으면 평생 이루지 못한 일도 단숨에 이룬다. 성령이 임하시면 내게 주신 은혜를 활성화해서 순식간에 이루신다.
오순절 날 베드로가 설교를 끝낸 다음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성령이 임하신 이유는 능력을 주시기 위함이다(행1:8). 그럴 때 비로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오순절의 관심은 능력에 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거절하지 않고 계속 영접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누리지 못하는 것은 거절하는 영성 때문이다. 마귀는 거절의 영이다. 나중에 하겠다고 거절한다.
왕의 초대임에도 불구하고 밭을 샀다고, 소를 샀다고, 장가간다고 거절한다. 우린 다 그렇게 핑계 댈 수 있다. 얼마든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결과가 치명적이다. 바깥 어둠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 굶고 빈약해서 거절할 것이 없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거지 같은 자의 마음이 복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다 준비되었기에 배고픈 마음 가지고 영접하고 살라는 것이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어떤 죄인이든 세리든 창기든 다 영접한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까탈스러워서 영접이 안 된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관계가 성숙해질 때 부흥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듯 이웃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능력, ‘두나미스’에서 나온 단어가 ‘다이나마이트’다. 폭발력 있다는 것. 영접하면 임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동기화돼서 내게 임하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기 힘으로 뛰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뛴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능력은 창조의 능력이다. 아브라함이 창조의 하나님을 영접했다. 그러니 자기 삶 속에서 모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광야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주의 손이라고 표현한다. 홍해를 가르고 원수를 물리치시는 일들을 보았다(창15:6). 성령을 의지하면 창조의 능력, 원수를 멸하는 능력이 임한다. 바벨론이 강해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하시니 제국이 그 밤에 망한다(고후10:4). 어떤 견고한 것도 내 능력으로 깰 순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쉽게 깨진다.
주님의 능력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내신다. 이 능력을 믿음의 스위치를 누르고 구하라는 것이다. 이게 동기화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똑같은 레벨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대로 동기화 시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 것에 마음 두지 않는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영광이 아닌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한다. 하나님 속에 있는 영광을 못 보니까 욕심부리고 헛되게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제일 좋은 것은 성령이시다(눅11장). 성령을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일하면 백배가 아니라 메가톤이다. 10의 6승. 백만 배로 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