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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제작년도 : 1999년 ㆍ제작국가 : 미국 ㆍ감독 : Phillip Noyce ㆍ출연 : Denzel Washington, Angelina Jolie
먼저, 이 영화는 줄거리부터 이야기해보자. 법의학 전문 형사였던, 링컨 라임(덴절 워싱턴 분)은 사고로 인해 사지가 마비되어 머리와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한때 범죄수사학의 대가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친구인 의사에게 안락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한편, 순찰경관인 도나위(안젤리나 졸리 분)는 어린시절 경관이었던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신고를 받고 달려간 현장에서 사지가 절단되어 손만 남긴 시체를 발견하고,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달려오는 기차를 가로 막는다. 이후 살인사건은 이어지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라임에게 사건은 의뢰된다. 라임은 사건현장을 잘 보존한 도나위를 신임하고, 자신을 대신하여 모든 사건의 현장에 그녀를 파견하게 된다.
▒ 비상한 두뇌의 법의학자와 그의 신임을 얻는 여성경관 이 영화에서 특히 여성관객들은 남성인 라임의 지시에 따라 사건을 해결해가는 도나위의 역할에 대해 불만스러워 할 수도 있다. 도나위는 라임의 손과 발을 대신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얼핏보면, 도나위는 라임의 대리 인물 정도로 비춰질 수 있다. 즉 전통적인 남녀상에 이 영화는 그대로 부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흔히 남성의 두뇌가 여성보다 낫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라임의 비상한 두뇌가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이들의 관계를 좀더 들여다 보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 도나위 아버지의 자살... 이 영화의 도입부를 보면, 도나위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우울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리적으로 어린시절 부모가 죽게되면, 어린이들은 그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뭔가 죄를 짓거나 잘못해서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은 거야".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을 하였다. 자살일 경우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은 평생 가족들이 떠 안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나위는 영화 초반 약간은 우울하고 소심한 여성으로 그려지게 된다.
▒ 냉정한 부성애적 사랑을 표현하는 라임 그러나 라임은 도나위의 가정환경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섭게 그녀를 몰아치게 된다. 라임은 그녀의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살인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막지 못했지만, 또 다른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그녀의 콤플렉스는 해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임은 끔찍한 살해현장에서 그녀에게 시체의 팔을 잘라서 증거를 살펴보도록 하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처음 도나위는 이런 라임의 지시를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직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죽음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앗아버린 파괴적인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피상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뿐, 죽음의 현장을 넘나들며 증거를 수집할 만큼 그녀는 죽음에 담대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대리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라임과 렉터 여기서 라임은 어떤 면에서 보면, 도나위의 대리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아나 다름없는 도나위에게 사건을 해결해주는 열쇠를 조금씩 흘려주며 그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임과 도나위의 아버지가 비슷한 점은 도나위의 아버지는 자살을 했으며, 라임은 자신의 신체상태를 비관해서 곧 자살을 결행할 마음을 먹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대리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양들의 침묵]에서 정신과 의사인 렉터박사와 FBI요원인 스탈링(조디 포스터)과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고아나 다름없는 스탈링이 연쇄살인의 희생자를 구할 수 있도록 렉터 박사는 조금씩 정보를 흘려주며, 그녀의 콤플렉스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자살을 막지 못한 콤플렉스의 회복 도나위가 적극적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게된 이유는, 라임이 곧 자살을 할거라는 사실을 알고 난 직후이다. 그녀는 바로 아버지의 자살을 막지 못한 콤플렉스를 라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라임의 손과 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어쩌면 라임의 자살, 즉 대리 아버지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도나위는 마지막 장면에서 라임이 살인범에게 죽음을 당하는 현장에서 그를 구하게 된다. 그녀는 사실 두 번이나 라임을 죽음에서 구해주었던 것이다. 한번은 연쇄 살인범의 칼끝에서, 또 한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한 라임에게 도나위가 손과 발이 됨으로서, 살아있는 당위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라임일까? 도나위일까?
글/ 김상준(정신과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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