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하니 잘 마른 나뭇잎처럼 생긴 장신구를 미용회보에서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 앙증맞은지. 책갈피에 넣어 두었던 노란 은행잎을 꺼내든 마음이 이런 것일까. 오래 묵혀둔 매실 항아리를 열었을 때 느껴지는 향이 배어나 듯 고운 자태였다. 그 옛날 어느 여인의 손끝에서 고락을 함께 하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잊혀진 영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솜씨 좋은 장인의 혼으로 만들어져 얄시 하니 날렵한 몸매로 빗 접에 담겨 있었다. 소의 뿔을 정교하게 다듬어 위쪽은 둥글고 얇은 모양으로 머리의 가르마를 타고 아래쪽은 뾰족하고 가늘게 되어 빗의 때를 제거할 때 썼다고 했다. 섬섬옥수 고운 손길에 머물고 싶은 지아비의 마음이 빚어낸 작품이리라.
동백기름 바른 가리마가 반듯한 쪽 머리의 여인이 켜켜이 쌓여진 시간을 걷어내며 빗 치개 사이로 얼굴을 드러냈다. 어쩜 더 이상 가릴 것도 없이 환하게 드러나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거기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석 달째 동생이 까닥 없이 몸이 고롭다고 칭얼거렸다. 꼭 집어서 어디가 아픈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의원을 찾아가 진맥을 하여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미신이라고 거들떠보지 않던 그녀를 대쪽같은 어머니가 사주를 들고 찾아갔다. 대통을 흔들어 점괘를 빼어 든 그녀가 객귀가 들었으니 풀어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을 했다. 금쪽 같은 아들이 고롭어서 말라가니 고지식한 어머니도 굽힐 수밖에 없었다. 한시가 급하다고 댓바람에 달려온 그녀가 객귀를 물리치는 판을 벌렸다. 마른 북어 한 마리와 물 한 그릇을 소반에 놓고, 밥과 고춧가루, 마늘, 멸치, 국물 등 잡다한 음식을 바가지에 담아서 칼로 휘휘 내저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을 향해 그녀는 중얼중얼 주문을 걸었다.
“오다가다 노정 객귀, 배가 고파 들었거든 영검을 내보여라. 맛있게 주거들랑, 마른 것은 싸고 가고 진 것은 먹고 가라. 노중 백구가 범했거든, 냉큼 썩 물러가라. 얼른 가지 않으면 쉰 길 깊은 소에 무쇠가마 덮어 씌어, 엄나무 말뚝을 치 치고 내리쳐서 다시 용납 못 할 끼라. 이 거리 문전에서 궁내도 밥내도 다시는 못 맡게 금줄 치고 말 끼라” 바가지를 두드리며 침을 세 번 뱉더니만 소금을 뿌려댔다. 훠이 훠이 나가라고 삿대질하며 고함을 쳤다. 마지막 동작으로 칼을 뽑아들더니만 벼락같이 소리치며 마당 복판으로 내던졌다. 떨어진 칼의 날이 대문 밖을 바라보면 객귀가 물러갔고 집 안을 향하면 머무는 것이라고 푸닥거리를 해야했다.
어린 내 눈에 비쳐진 그녀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울긋불긋한 신당 앞에 앉아있는 뒷모습이 낯설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평소에는 내왕이 별로 없어도 사달이 나거나 고롭은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 잡귀를 물리쳤다. 액운을 물리치는 그녀의 머리에는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은행잎이 달려있었다. 여느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머리 치장으로 보였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가하면 어느 때는 신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묘한 눈빛이 섬뜩하리만큼 차다가 풀어지기도 했다. 무심코 지나친 일상에 생채기가 나면 그녀는 딱지가 되었다가 새살이 돋아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 곳을 응시하는 색동옷의 그녀가 때로는 허공에 떠있는 신기루로 보였다. 정말 그녀는 내가 볼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참말로 그녀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졌다면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빗 치개는 행여나 가르마가 바르게 타지지 않을까 저어하는 마음과 빗살사이에 때가 끼일까 염려하는 마음이 서린 것이다. 빗 치개가 눈에 보이는 형상을 가지런히 했다면 그녀는 헝클어져버린 보이지 않은 세계를 정리정돈 하는 일을 했으리라. 이제야 생각해보니 빗 치개는 마을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흐트러진 일상을 바로잡으려 애쓰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장신구였다. 제 한 몸 빗 치개가 되어 한 됫박의 보리쌀에 혼신을 다해 고달픈 사람의 근심을 덜어주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 어루만졌다. 정갈하지 못하여 부정탄 마음과 육신을 자신의 주술로 물리치는 그녀는 우리 마을의 빗 치개가 아니었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가게문을 열고 세월의 언덕을 넘어온 바람을 소통시키며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내 생의 반 토막이 잘려나간 여정의 한복판에 불쑥 고개를 내민 빗 치개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할 때 반드시 있어야할 것이 머리 빗이다. 요사이 사용하는 머리 빗은 빗살의 굵기와 모양과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용도에 맞게 사용한 머리 빗의 이 물질은 물로 씻어서는 털어 내지 못한다. 비눗물에 불려서 헌 칫솔을 이용해야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그 옛날 촘촘한 빗살의 묵은 때를 제거하고 긴 머리를 가르마타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구나 요즈음처럼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로 깍은 얼레빗이나 대나무로 만든 참빗임에 일러 무엇하리. 빗 치개는 정갈한 여인이 가져야하는 필수품이었으리라. 제 소임을 다한 빗 치개가 세월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빗 치개가 드나들고 가르마 타야 할 것이 어찌 옛 여인의 머리카락뿐일까.
세상사 미쳐 깨닫지 못하고 반듯하게 가르지 못하여 엉켜버린 일상이 부지기도 많았다. 쉴새없이 앞만 보고 걸음을 재촉하다 매너리즘에 빠져버려 고여있는 생활에는 이끼가 생겼다. 가끔씩 바람이 드나들게 틈새도 만들고 여울물에 발을 담가 헹구어야하는데 주저앉아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투박하게 내뱉는 말투와 몸짓에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로 남은 일도 많았으리라. 나로 인해 응어리진 사람 있다면 물 스미듯 젖어들어 풀어낼 수 없을까. 탐진치[貪嗔痴]에 물들은 어리석은 마음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빗 치개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