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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
대본 알반 베르크(독일어)
초연 1925년 베를린 국립극장
배경 19세기 초 독일의 어느 작은 도시
<2015년 9월 취리히 오페라 / 101분 / 한글자막>
필하모니아 취리히 & 취리히 극장 합창단 연주 / 파비오 루이지 지휘 / 안드레아스 호모키 연출 & 미쉘 레빈 무대미술.의상
보체크........이발사 출신의 가난한 병사.....크리스티안 게르하허(바리톤)
마리...........보체크의 내연의 처...............군-브리트 바르크민(소프라노)
군악대장..............................................브란돈 요바노비치(헬덴 테너)
안드레스.....보체크의 동료......................마우로 피터(테노레 리리코)
대위....................................................볼프강 아블링거-스페르하케(테노레 부포)
의사....................................................라르스 볼트(바소 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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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20세기 베르크의 파격에, 21세기적 감각을 더한 프로덕션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의 2015년 9월 프로덕션으로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신선하고 파격이 서려 있다. 베르크 특유의 진행과 해체적인 미학을 살려내는 루이지 파비오 지휘와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의 보체크 역과 소프라노 군 브리트 바르크민의 마리 역의 열연이 빛나는 무대. 난해하다고만 느껴지던 20세기 오페라가 미장센의 대가 안드레아스 호모키의 연출로 새로운 재미를 어떻게 입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공연이다.
알반 베르크(1885~1935)가 1922년에 완성한 <보체크>는 에리히 클라이버의 지휘로 1925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짧은 15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장은 독립적인 음악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질투로 인해 점점 정신분열에 시달리게 되는 가난한 병사 보체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과의 사이에 아이를 둔 여인 마리가 군악대장에게 유혹 당하자 결국 그녀를 죽이게 된다. 그는 아이와 함께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의 고용주인 부르주아적 대위와 과대망상의 경향을 가진 의사에게 조롱당한다. 마리를 칼로 찌른 후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장소로 돌아오지만, 살인 무기를 다시 손에 넣으려고 광기를 띤 행동을 하다가 호수에 빠져 익사한다.
안드레아스 호모키는 미니멀한 미장센의 대가답게 무대디자이너 미셸 레빈과 함께 여러 겹의 노란색 액자로 무대를 구성했고, 성악가들은 흰색 분칠을 하고 출연하여 광기에 서린 보체크와 일련의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모차르트부터 말러를 아우르는 독일 출신의 전방위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의 보체크 역과 메트 오페라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누비는 독일 출신 소프라노 군 브리트 바르크민의 마리 역이 단연 빛난다. PCM 스테레오와 돌비5.1로 구현되는 사운드를 통해 루이지 파비오가 한 올 한 올 살린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베르크 특유의 진행과 해체적인 미학을 만날 수 있다. 부클릿에는 안드레아스 호모니와 파비오 루이지의 심도 있는 인터뷰(독일·영어·프랑스어)가 담겨 있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정이은 글>
보체크
알반 베르크(1885~1935)
오페라 〈룰루〉와 함께 베르크가 작곡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오페라로 손꼽히고 있다.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원작으로
오페라 〈보체크〉의 원작, 게오르그 뷔히너(Georg Buchner, 1813~1837)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는 1835년에서 1837년 사이에 집필되었다. 이 작품은 한 동안 잊혀 있다가 1879년 칼 에밀 프란초스에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 27개의 장면들로 구성된 《보이체크》는 1879년 이후로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베르크의 오페라는 프란초스의 1879년 《보이체크》 에디션의 구성을 따르지만 27개의 장면 중에서 15개만을 사용하고 있다. 베르크는 1914년 5월 6일 비엔나에서 공연된 〈보이체크〉를 관람했고, 그 즉시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베르크는 직접 이 오페라를 위한 리브레토 작업을 하면서 희곡의 핵심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작에 포함되어 있던 때로는 잔악무도한 언어들을 그대로 살려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한 베르크
베르크가 이 작품을 작곡한 계기는 1914년, 《보이체크》 공연을 본 후였다. 하지만 오페라 〈보체크〉의 작곡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계속 지연되어야만 했다. 당시 베르크는 군인으로 참전했으나 그는 아주 오랫동안 만성천식을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해 군대에서도 후방에서 복무했다. 그리고 몸이 허약했었기에 사람들에게서 갖은 멸시와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 1917년에서 1918년까지 휴가를 얻어냈고 이 시기에 그는 온전히 〈보체크〉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다. 1919년 여름까지 그는 1막을 끝냈고, 1921년 8월에는 2막을, 그리고 그 해 2달 동안 3막을 완성했다. 이 후 반 년 동안을 이 곡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매달린 끝에 1922년 4월 오페라 〈보체크〉가 탄생하게 되었다.
늘 불안함에 시달리는 보체크의 비극
오페라 〈보체크〉는 참전 군인으로 온갖 멸시를 당한 베르크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가난하고 외모도 별로인 병사 보체크. 그는 애인인 마리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지만, 가난 때문에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 그는 주변으로부터 부도덕하다는 모욕까지 당하고, 상관이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잡일까지 하면서 늘 불안함에 시달린다. 그러던 중 그의 부인 마리가 군악대장의 유혹을 받아 결국 그에게 넘어가고 만다. 이에 분노한 보체크는 군악대장과 싸움을 벌이지만, 오히려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군악대장과 마리가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것을 본 보체크는 이성을 잃고 마리를 죽이고,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자 증거인멸을 위해 물속에 던진 칼을 찾는다. 그러던 중 그는 물에 빠져 죽게 된다.
무조성(無調性), 불안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
〈보체크〉는 일반적으로 20세기 최초의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만들어진 오페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무조성으로 작곡된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처음에 베르크의 〈보체크〉 계획을 알고 있었던 베르크의 스승 쇤베르크는 그의 이런 구상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1925년 베를린에서 〈보체크〉의 초연을 보고는 “이것이야말로 오페라이다! 진정한 음악극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작품의 무조성은 〈보체크〉의 불안함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고, 무조음악이 기악음악에서 거두지 못한 성공을 단번에 상쇄할 만큼 청중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보체크〉의 라이트모티프
베르크는 〈보체크〉에서 라이트모티프를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통일성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각각의 주요 인물들에는 특정 모티프를 사용함으로써 베르크는 무조성이 야기할 음악적인 어려움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한다. 대위, 의사, 군악대장의 모티브는 그 중에서도 매우 두드러진다. 보체크의 주요 모티브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그가 무대에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 자주 들리는 것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노래할 때 등장한다. 보체크의 아내 마리의 모티브는 그녀가 자신의 관능성을 표현할 때 등장한다.
마리의 자장가
1막 3장에 등장하는 마리의 노래. 군대의 퍼레이드가 마리의 방 바깥을 지나간다. 마르그레트가 지나가는 군인들을 꼬셔보라고 마리를 희롱한다. 이에 마리는 창문을 닫고 자신의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비좁고 답답한 집안에서 어린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마리의 꽉 막힌 일상이 노래를 통해 전해진다. 창문 너머의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매력적인 남자들의 세계로부터 억지로 자신을 단절시키면서 마리는 자신의 욕망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자장가를 아들에게 불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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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2년 3월 7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베르크, 보체크
무조음악 형식을 사용한 표현주의 오페라
1925년 베를린에서 초연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베르크의 [보체크 Wozzeck] 이후로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오페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표현주의의 폭발”, “무조음악을 사용한 최초의 극장용(한 작품으로 저녁 공연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 오페라”, “진정하고 유일한 사회주의 오페라” 등, 다채로운 찬사와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찬사를 많이 받은 작품이라 해도 ‘표현주의’나 ‘무조음악’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거 어려운 거 아냐?’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죠.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곡가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는 그의 스승 쇤베르크와 비교하면, 훨씬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를 만들었답니다.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작곡을 공부한 일이 없었던 베르크는 16세부터 즉흥적으로 작곡을 하다가 쇤베르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요. 무조음악의 창시자인 스승의 제자답게 베르크는 [보체크]를 작곡하면서 전통적 조성을 떠올릴 수 있는 선율과 화음을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무조음악’이란 조가 없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조성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으뜸화성의 원칙을 포기하면서 조성감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원리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을 시도했던 배경에는 세기 전환기에 예술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표현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감정의 분출과 폭발로 인간의 내면을 노출하고 익숙한 형식과 형태를 왜곡하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 표현주의 예술이었지요.
도덕과 교양의 억압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
1914년에 베르크는 빈에서 게오르크 뷔히너의 극 [보체크] 공연을 보았습니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라는 청년이 애인을 살해하고 사형 당한 실화를 소재로 한 사회비판적 작품이었지요. 뷔히너 작품의 원래 제목은 ‘보이체크’였지만, 당시 뷔히너의 유고를 정리해 출판한 칼 에밀 프란초스가 제목을 잘못 읽어, 오랜 동안 ‘보체크’로 전해졌다는군요.
몸이 몹시 허약했던 작곡가 베르크는 1차 대전 때 전선에서 싸우지 못하고 후방 병영에서 복무했는데, 이때 군에서 엄청난 멸시와 괴롭힘을 당하면서 주인공 보체크에 자신을 대입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반드시 오페라로 작곡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더구나 제대 후에는 1차 대전이라는 압도적인 비극의 충격으로 더욱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고 합니다.
스승 쇤베르크는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작곡하겠다는 베르크의 계획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1925년 베를린에서 이 오페라가 초연되자 “이거야말로 오페라다! 진정한 음악극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경탄했다고 합니다. 베르크의 [보체크]는 1925년부터 1936년까지 29개 도시에서 166회 공연되는 기록을 세웠으나 나치의 문화정책으로 인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퇴폐예술(die entartete Kunst)’로 간주되어 이듬해부터 공연이 금지되었지요.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에서 다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천천히 하게, 보체크, 천천히!(Langsam, Wozzeck, langsam!)” [보체크]의 첫 장면은 이런 대사로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외모도 보잘것없는 병사 보체크는 애인 마리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았지만, 돈이 없어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상관인 대위와 주위 사람들에게 부도덕하다는 비난과 모욕을 당하며 살아가죠. 상관이 사적인 일까지 시키며 종처럼 부리기 때문에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보체크는 늘 마음이 바쁘고 불안합니다. 쥐꼬리만한 군대 봉급으로 마리와 아이도 부양해야 하는 그는 그 와중에도 부업이 될 일거리를 찾으려 애쓰죠. 그에게서 아주 특이한 심리적 장애를 발견한 의사는 학회에 제출할 논문자료로 쓰기 위해 보체크에게 완두콩만을 먹게 하고 그의 신체적인 반응을 관찰합니다. 보체크는 푼돈을 더 벌기 위해 실험용 모르모트로 전락한 셈이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까지 겹친 보체크는 갈수록 세상 전체에 두려움을 느끼며 정서불안 상태를 나타냅니다. 한편, 비좁고 답답한 집안에서 어린 아이와 씨름하며 지루해하던 마리는 어느 날 보체크가 속한 부대의 군악대장을 사귀게 되고, 결국 그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보체크는 마리를 되찾기 위해 군악대장과 몸싸움까지 벌이지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술집에서 군악대장과 열정적으로 춤추고 있는 마리를 본 보체크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마리를 물가로 데려가 칼로 찔러 죽이죠. 마을로 돌아왔다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자 살해 장소로 되돌아가 물 속에 던진 칼을 미친 듯이 찾던 보체크는 물에 빠져 죽고 맙니다. 뷔히너의 원작에서는 죽지 않고 무대 위에 망연히 서 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베르크는 결말을 바꿨습니다.
보체크에 비하면 그의 상관인 대위는 안정된 삶의 토대를 갖추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인물이죠. 보체크가 왜 이처럼 늘 불안한 태도로 서두르며 살아가는가를 대위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체크에게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일을 하라고 항상 충고하죠. 그러면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채 여자와 함께 살며 아이까지 낳은 보체크의 삶을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은근히 비난합니다. 여기서 ‘여유와 서두름’이라는 대비되는 개념은 ‘도덕과 부도덕’,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비로 이어집니다. ‘우선 입에 밥이 들어가야 도덕이고 나발이고 있는 법’이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작품 [서푼짜리 오페라]의 주제는 [보체크]에서 보다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다뤄집니다.
불편한 왈츠, 카페음악과 무조음악의 교차
대위는 대단히 폭력적인 상관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상심리와 부르주아적 도덕관으로 보체크를 교묘하게 억압합니다. 베르크는 이 두 사람 사이의 억압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1막 1장에서 엄격한 규칙성을 지닌 모음곡 형식(프렐류드-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을 사용했습니다. 상관에게 “예, 대위님”이라는 억양 없는(하나의 음정으로 이루어진) 대답만을 들려주던 보체크가 최초의 저항을 나타내는 대목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Wir arme Leut’)”은 이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입니다. 이 동기를 강조함으로써 작곡가 베르크는 이 오페라 초연 거의 1백 년 전에 작품을 썼던 뷔히너의 창작의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에 있다”는 뷔히너의 주장은 16세기에 [유토피아]를 저술한 영국의 토마스 모어나 브레히트와도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베르크는 2막의 다섯 장면을 ‘5악장의 교향곡’으로 설정하고, 마리가 군악대장에게 선물 받은 귀고리를 들여다보며 좋아하는 1장 장면을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군악대장과 마리가 술집에서 왈츠를 추는 장면에는 “계속해, 계속해!(Immer zu, immer zu!)"라고 외치는 마리의 음악적 모티프가 등장합니다. 즐거운 왈츠가 등장하는 이 대목에서 베르크는 여러 조성을 동시에 사용해 불협화음을 만들고, 마치 악단이 술에 취해 연주하는 듯 음악을 자꾸 끊어 의도적으로 청중이 음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죠. 바이올린, 클라리넷, 기타, 튜바, 아코디언이 함께 카바레 음악 또는 카페음악을 연주하는 이 2막 4장에서 베르크는 아코디언의 활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의 막사, 취침시간’을 배경으로 한 5장의 앞부분에 베르크는 자신이 1차 대전 때 군에 복무하면서 겪었던 막사의 체험을 음악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코를 골거나 잠결에 신음하는 소리가 영혼의 심연에서 울리는 원시음악처럼 독특하게 들렸다는군요.
파국으로 치닫는 3막은 다섯 곡의 인벤션으로 이루어집니다. 마리가 보체크를 배신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성경을 읽는 1장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와 푸가로, 보체크가 마리를 살해하는 2장에서는 마리가 죽을 때 올리는 비명의 ‘나(b)'음으로, 보체크가 술집으로 되돌아오는 3장에서는 폴카 리듬으로, 칼을 찾으러 살해현장으로 돌아간 보체크가 물에 빠져 죽는 4장에서는 ’죽음의 소리‘라는 테마로 인벤션이 이어집니다. 보체크가 죽은 직후 5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삽입된 간주곡은 쇤베르크 가곡에서 인용한 장송곡으로, 베르크는 여기서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막 5장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목마 타는 흉내를 내며 혼자 무대에 남겨지는 보체크의 아이는 가난도, 남들의 멸시와 불평등한 신분도 모두 그대로 대물림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베르크는 주인공 보체크의 착란상태와 강박관념 등을 표현하는 데 무조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현악기로 통속적이고 애잔한 분위기를 살리는 조성음악을 쓰다가도 보체크의 불안한 상태를 표현할 때는 언제나 무조적인 음악으로 돌아갔지요. 뷔히너는 냉철한 이성으로 혁명 혹은 개혁을 주도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마리처럼 종교적 구원을 갈망하거나 보체크처럼 착란과 혼돈상태에 빠져드는 현상을 냉정하게 경계했지만, 작곡가 베르크는 이 남녀 주인공의 어긋나는 사랑에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보체크-마리 순)
[음반] 발터 베리, 이자벨 슈트라우스 등, 피에르 불레즈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 1970년 녹음(CBS Records)
[음반] 프란츠 그룬트헤버, 힐데가르트 베렌스 등,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88년 녹음, DG
[DVD] 데일 듀싱, 크리스티네 치진스키 등, 실뱅 캉브를랭 지휘, 프랑크푸르트 뮤지엄 오케스트라 및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합창단, 페터 무스바흐 연출, 1996년 TV 방영용, 스펙트럼(한글자막).
[DVD] 프란츠 그룬트헤버, 발트라우트 마이어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및 베를린 국립오페라 합창단, 파트리스 셰로 연출, 1994년 실황, 워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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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이첵>은 현재까지 세 종류의 원고가 있는데, 두 종류의 내용은 같고 다른 하나는 약간 다릅니다. 독일어 원본 자체가 독일에서도 다르게 유통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요절한 후에 희곡의 장면들 순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원고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연구가들이 유고를 검토하면서 장면의 순서를 배열해서(일종의 조립으로) 작품을 완성했기에 세 가지의 원본이 생겼고, 이는 아직까지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판과 영문판의 원고 내용이 약간 다른 점,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083. 뷔히너 단편선 보이첵 / 이재인 옮김> 일러두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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