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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2 코제트
추적 그리고 은신(1)
장 발장은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부부의 손에서 구출한 그날 저녁 파리에 도착했다. 해질 무렵에 그는 소녀와 함께 몽소의 성문으로 해서 시내에 들어왔다. 여기서 그는 마차를 타고 천문대 앞 광장으로 갔다. 마차에서 내려 삯을 지불한 그는 코제트의 손을 잡고 루르신과 글라시에르에 인접한 길을 걸어 로피탈 가도로 향했다.
코제트에게 있어서 그날은 이상하고도 감격적인 일이 연속되는 날이었다. 외딴곳에 있는 식품점에서 산 빵과 치즈를 울타리 뒤에 숨어서 먹기도 하고, 몇 번이나 마차를 갈아타기도 했다. 그러나 소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피로를 느꼈을 뿐이었다. 장 발장은 소녀가 걸으면서 점점 더 그에게 기대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코제트를 업었다. 코제트는 카트린을 안은 채 자기 머리를 장 발장의 어깨에 기대고 곧 잠이 들었다.
장 발장은 황폐한 큰 집 앞에 섰다. 우체부는 이 황폐한 집을 50-52 번지라 불렀으나, 이웃들 사이에서는 고르보 저택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는 들새처럼 자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아주 고요한 장소를 택했던 것이다.
그는 조끼에서 열쇄를 꺼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도로 잠그고는, 여전히 코제트를 업은 채 층계를 올라갔다. 층계 위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열쇠를 꺼내 문 하나를 열었다. 방에 들어가자 얼른 문을 닫았다. 그 방은 아주 큰 다락방 같은 곳으로 마루에 깐 양탄자와 탁자 하나 그리고 몇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난로가 있어 불길이 보였다. 이 초라한 실내를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구석에 작은 방이 있고 조립식 침대가 놓여 있었다. 장 발장은 소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침대에 눕혔다.
장 발장은 허리를 구부려 소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9개월 전에는 영원히 잠들어 버린 아이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추었는데, 그때와 같은 애절하고 경건하며 침통한 생각이 지금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코제트의 침대 곁에 무릎을 꿇었다.
이튿날 아침 장 발장은 아직 코제트의 침대 곁에 있었다. 그는 코제트가 눈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영혼 속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와 있었다. 지금껏 한번도 어느 누구의 아버지나 애인, 남편, 친구였던 적이 없었고 남을 사랑해 본 기억도 없었다. 감옥에서 나오자 누나와 조카들을 찾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25세 이후로는 줄곧 혼자 외롭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코제트를 보았을 때, 코제트를 악인의 손에서 구출해 냈을 때, 가슴속에 그 무엇이 꿈틀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내부에 잠재해 있던 정열과 애정의 모든 것들이 일시에 눈을 떠 이 아이에게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가련한 늙은이의 참으로 신선한 마음이여! 다만 그는 쉰세 살이고 코제트는 겨우 여덟 살이었기에 그가 일평생 품게 될 모든 사랑은, 일종의 말하기 힘든 광명과 같은 것 속에 녹아들었다. 그가 만난 두 번째 서광이었다. 미리엘 주교가 그의 마음의 지평선에 미덕이란 서광을 가져다 주었다면, 코제트는 사랑의 불씨를 던져 주었던 것이다.
코제트는 너무 어려서 어머니 품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기억이라곤 전혀 없는 소녀였다. 테나르디에 가족에게 사랑을 못 받은 코제트는 한때 개에게 정을 담뿍 쏟았었다. 그러나 그 개마저 죽어 버리자 이 세상에서 코제트를 상대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는 속에 살아왔다. 그래서 어린 코제트는 장 발장을 처음 만난 날부터 무척 따랐다.
처음 며칠 동안은 이 같은 흥분 속에서 보냈다. 더구나 장 발장은 이 은신처를 잘 선택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가 코제트와 함께 살고 있는 안방이 딸린 방에는 한길 쪽문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그 집에는 창문이 이것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옆에서나 앞에서도 이웃 사람에게 보일 염려가 없었다.
폐허가 된 창고와도 같은 이 50-52번지의 1층은 채소 장수들이 곳간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2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아래위층 사이에는 위로 들어 올리는 문이나 층계도 없었고, 다만 가로막 같은 천장이 있을 뿐이었다. 2층에는 몇 개의 방과 헛간이 있어 그 하나에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이 노파가 장 발장의 가사를 보살펴 주었다. 그 밖의 방은 모두 비어 있었다.
이 노파는 명색이 셋집 주인이었으나 사실은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노파가 크리스마스 날 장 발장에게 방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그는 노파에게 자기는 스페인 공채에 손을 댔다가 그만 파산한 연금 생활자로서, 손녀와 같이 산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년 치 방세를 선불하고 앞서 말한 가구를 준비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도착한 날 밤 난로에 불을 피우는 등 모든 준비를 해 준 것은 이 주인 노파였다.
몇 주일이 지났다. 그들은 볼품없고 황폐한 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코제트는 아침 일찍부터 웃고 지껄이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이란 새와 마찬가지로 아침의 노래를 즐기는 것이다. 장 발장은 소녀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코제트에게 글을 가르치고 놀게 하는 것이 장 발장의 거의 모든 일과였다. 그는 또 코제트에게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기도드리게 했다. 코제트는 그를 아버지를 불렀다.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생메다르 교회 곁에는 버려진 공동 우물이 있었다. 그 옆에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장 발장은 그에게 곧잘 적선을 하곤 했다. 이 사나이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얼마씩 동전을 주었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이 거지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모처의 첩자라고 했다. 그는 75세나 된 성당의 임시 고용원으로 언제나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장 발장은 혼자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거지가 지금 막 켜진 가로등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지는 역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듯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장 발장은 곁에 가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 손에 동전을 쥐어 주었다. 거지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장 발장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 동작은 전광석화와 같이 빨랐지만 장 발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로등에 비친 모습은 신앙심 깊은 노인의 얼굴이 아니라, 전부터 알고 있던 어떤 무서운 얼굴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무서움에 떨며 한 걸음 물러서서 화석처럼 굳었다. 숨을 쉴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었으며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누더기를 입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 거지를 바라보았다. 거지는 장 발장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했다. 이 야릇한 순간에 본능, 아마도 불가사의한 자기 보존 본능에 의해 장 발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지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누더기를 걸치고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제기랄! 나는 바보로군. 꿈이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그는 몹시 심란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가 본 얼굴이 자베르의 얼굴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 사나이에게 무어라 질문을 하여 한 번 더 얼굴을 들게 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튿날 해가 저물자 그는 다시 거기에 가 보았다. 거지는 역시 그곳에 있었다. 장 발장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면서 그 거지에게 동전 하나를 주었다.
“안녕하세요, 영감님.”
거지는 고개를 들고 슬픈 음성으로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친절하신 선생님.”
분명히 나이 든 노인이었다. 장 발장은 완전히 마음을 놓고는 웃었다. 그는 생각했다.
‘어째서 나는 그를 자베르라고 여겼을까. 벌써 그토록 눈이 나빠진 건가?’
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뒤 저녁 8시 경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방에서 코제트에게 큰소리로 글을 읽게 하고 있었다. 그때 집의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은 노파 한 사람뿐인데, 그 노파는 초를 아끼기 위해 초저녁만 되면 자리에 들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코제트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노파가 병이 들어 약국에 갔다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장 발장은 귀를 기울였다.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나이의 발소리인 것 같았다. 하지만 노파도 큰 신발을 신고 있어서 발소리는 남자의 것과 비슷했다. 그래도 장 발장은 촛불을 껐다.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가서 자거라.”
코제트를 침대로 보내며 그가 코제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있는 동안 발소리가 멎었다. 장 발장은 문에 등을 돌리고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않고 어둠 속에서 귀를 기울였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조용히 돌아앉아 문으로 시선을 보냈다. 열쇠 구멍을 빛이 보였다. 그 빛은 문과 벽의 암흑 속에서 불길한 별빛처럼 빛났다. 거기엔 분명히 누군가가 있어서 한 손에 촛불을 켜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몇 분이 지나자 빛은 사라졌다. 발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문곁에서 엿들은 사람은 아마도 신발을 벗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 발장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했다. 날이 샐 무렵, 피곤에 지쳐 겨우 눈을 붙이려 할 때 복도 끝 다락방에서 문소리가 났다. 그는 눈을 떴다. 지난밤 층계를 올라온 것과 똑같은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열쇠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열쇠 구멍은 제법 컸기 때문에 어제 이 집에 들어와 엿듣던 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과연 그자는 장 발장의 방 앞을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남자였다. 복도가 아직 어두워 그 사내의 얼굴은 확실히 분간할 수 없었다. 바깥에서 들어온 광선만이 그의 윤곽을 비춰 주고 있었다. 장 발장은 그의 뒷모습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사나이는 키가 크고 긴 프록코트를 입었으며 팔에 단장을 걸고 있었다. 그것은 자베르의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장 발장은 한 길에 면한 창문으로부터 다시 한 번 그 남자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문을 열어야 했다. 장 발장은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분명히 자기 집처럼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열쇠를 주었을까? 그가 이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아침 7시에 노파가 청소하러 왔을 때 장 발장은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으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노파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노파는 청소를 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어젯밤 누가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지요?”
노파의 나이와 또 그 거리에 사는 사람에게 밤 8시는 한밤이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들린 듯도 하군요. 도대체 누구였소?”
노파가 말했다.
“새로 세 든 사람이에요. 이 집에 말입니다.”
“그럼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뒤몽이라든가 도몽이라든가 하는 그런 이름이었어요.”
“뭣하는 사람이랍니까, 그 뒤몽이란 사람은?”
노파는 교활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금을 받는 사람이래요, 선생님같이.”
노파는 아무 생각없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파가 나가자 그는 옷장에 있던 10프랑 정도 되는 돈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5프랑짜리 금화 하나가 그만 마루바닥에 떨어져 땡그렁 하고 소리를 냈다.
저녁 때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길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전혀 사람이 내왕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도로 2층으로 올라가 코제트에게 말햇다.
“이리 온.”
그는 코제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장 발장은 코제트를 데리고 뒷길로 들어가 몇 군데 어두운 골목을 돌았으나 자베르와 그 부하의 추적을 벗어날 수 없었다.막다른 골목으로 쫓긴 그는 담에 기어올라 코제트를 끌어 올렸다. 이리하여 그들은 사람이 없는 정원에 숨을 수 있었다. 코제트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소녀는 돌을 베고 잠들었다. 장 발장은 곁에 앉아 소녀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차차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진실을,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생활의 근본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아이가 있고 자기 곁에 머물러 있는 한, 자기가 필요로하는 것은 모두 코제트를 위해서이고 두려운 것이 있다면 오직 이 코제트뿐이란 것을. 장 발장은 자기의 프록코트를 벗어 코제트에게 덮어 주었으나 추운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생각에 잠겼으면서도 조금 전부터 들려오는 묘한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종을 흔드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정원 안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약한 소리였지만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밤의 목장에서 가축들이 내는 그런 방울 소리와 비슷했다.
장 발장은 소리 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정원에 누군가가 있었다. 사람같이 생긴 것이 멜론 밭의 덮개 사이에서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기도 하고 걷거나 멈추기도 하고 있었다. 그는 절름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장 발장은 불행한 사람이 흔히 그러듯이 몸을 부르르떨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수상했고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사람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낮을 경계하고 습격을 당하기 때문에 밤을 경계한다. 조금 전에 그는 정원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두려워했으나 이 제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웠다.
그는 공상 속의 공포에서 돌아와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자베르와 형사들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것이라 생각됐다. 그들은 틀림없이 망보는 사람을 남겨 두었을 것이다. 만약 저 사내가 정원에서 자기네를 발견한다면 도둑이라 소리쳐서 그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는 잠들어 있는 코제트를 가만히 팔에 안고 헛간의 제일 구석진 곳, 쓰지 못하게 된 가구를 쌓아 놓은 곳으로 옮겼다. 코제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장 발장은 멜론 밭에 있는 사내의 동정을 살폈다. 이상스럽게도 방울 소리는 남자의 동작에 따라 울리고 있었다. 남자가 가까이 오면 방울 소리도 가까이에서 울렸다. 남자가 벌어지면 그 소리도 멀어졌다. 남자가 몸을 흔들면 방울 소리도 요란해지고 그가 멈춰 서면 그 소리도 끊겼다. 남자가 방울을 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만일 그게 맞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양이나 소처럼 방울을 달고 있는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장 발장은 이런 의심을 품으면서 코제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얼음처럼 찼다.
“큰일났구나!”
그리고 나직한 소리로 불렀다.
“코제트.”
소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가 마구 흔들어 대는 데도 코제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니겠지?’
장 발장은 몸을 떨며 일어났다. 무서운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추운 밤에 한데서 자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코제트는 얼굴이 백지장같이 창백해져 그의 발밑에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코제트의 입에 귀를 대어 보았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숨결이 약해 금세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눈을 뜨게 할 수 있을까? 그것밖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장 발장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떻게든지 코제트를 따뜻한 방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여태껏 그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는 정원에서 본 사내에게로 곧장 달려갔다. 장 발장은 조끼 주머니에 있던 돈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사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장 발장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남자에게로 가 외치듯이 말했다.
“백 프랑이오!”
남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장 발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백 프랑 드리겠소. 오늘 밤 여기서 재워 준다면!”
달빛은 장 발장의 당황해하는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아아, 당신이군요! 마들렌 씨!”
이 어두운 시각에, 이 알지 못할 장소에서 낯선 사내가 내뱉은 그 이름을 장 발장을 소스라치게 했다. 장 발장은 흠칫 뒤로 물러섰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이것만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에게 이야기를 한 노인은 등이 굽고 절룩거리는 사람이었다. 농부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왼쪽 무릎에 가죽을 대고 있었으며, 거기에 큼직한 방울이 달려 있었다. 얼굴은 어둠 때문에 분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노인은 모자를 벗었다. 노인이 떨면서 말했다.
“아아, 어떻게 여기 오셨나요. 마들렌 씨,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셨습니까? 하늘에서라도 내려오셨습니까? 틀림없어요. 당신이 오셨다면 분명히 하늘에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모습입니까? 넥타이와 모자도 없고 윗도리마저 안 입으셨다니! 당신인 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깜짝 놀라겠습니다. 윗도리도 없이….도대체 요즘에는 고귀한 분들도 이상해지는 것 같군요! 그건 그렇고 어떻게 여기에 들어오셨나요?”
마구 찌껄여 대는 노인의 어투에는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 시골 사람 같은 데가 있었다. 놀라움과 소박함이 한데 어울린 그러한 태도였다. 장 발장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리고 이 집은 도대체 어떤 곳이오?”
노인이 말했다.
“진정으로 물으시는 겁니까? 저는 당신이 돌봐 준 사람입니다. 이 집도 당신께서 주선해 주신 집입니다. 아니 그래,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나를 알고 있나요?”
장 발장의 말에 노인이 대답했다.
“당신은 제 은인이십니다.”
그가 얼굴을 돌렸다. 달빛이 그의 옆얼굴을 비추었다. 그제야 장 발장은 포슐방을 알아보았다.
“아아, 당신이었구려! 이제야 알겠어요.”
노인은 비난 비슷하게 말했다.
“그럼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멜론에 봉지를 씌우고 있습니다.”
“무릎에 단 그 방울을 어떻게 된 거요?”
“이것 말입니까? 이것은 사람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뭐라고요? 사람을 피하게 하다니?”
포슐방은 묘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이 집에는 여성들만이 삽니다. 많은 처녀들이 있어요. 얼굴을 마주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 방울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가 지나가면 모두 피한답니다.”
“무슨 집인데 그렇소?”
“이곳은 프티 픽퓌스 수녀원입니다.”
장 발장은 지난 일이 되살아났다. 우연, 즉 하느님의 뜻이 그를 생탕투안 지구의 이 수녀원에 오게 한 것이었다. 마차에 깔려서 불구가 된 포슐방은 장 발장의 추천으로 2년 전부터 여기 살게 되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프티 픽퓌스 수녀원이라.”
포슐방이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리 들어오셨나요, 마들렌 씨? 고귀한 분임에는 틀림없으나 당신은 남자이니 여기 들어올 수가 없을 텐데요?”
“당신은 남자가 아니오?”
“저 하나뿐입니다.”
장 발장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꼭 여기 있어야 하겠소.”
장 발장은 노인 곁으로 가서는 엄숙한 투로 말했다.
“포슐방 영감, 전에 내가 영감님의 생명을 구해 드린 일이 있지요?”
포슐방은 대답했다.
“그 일은 제가 먼저 상기했습니다.”
“그러면 전에 내가 당신에게 해 준 일을, 이번에는 당신이 내게 해 주었으면 좋겠소.”
포슐방은 주름투성이가 된 늙은 손으로 장 발장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은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얼마 후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아!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하느님의 은총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이 늙은이가 당신을 구해 주다니! 시장님, 이 늙은이를 마음대로 부려 주십시오!”
환한 웃음이 노인의 모습을 변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설명하리다. 당신은 방을 가지고 있소?”
“저기 낡은 수녀원 구관 곁에 따로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입니다. 방이 셋 있습니다.”
과연 그곳은 구관 뒤에 숨겨져 있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장 발장에게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장 발장이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두 가지만 부탁하리다.”
“어떤 일입니까, 시장님?”
“첫째,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나 비밀로 해 주시오. 둘째, 나에 대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올바른 일만 하시고 또 신앙심이 깊은 분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저를 이곳에 보내신 것도 당신입니다. 저는 당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그러면 나와 함께 갑시다. 아이를 찾아야 하니까.”
“네? 어린애가 있었군요.”
포슐방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인을 따라가는 개처럼 장 발장을 따라갔다. 코제트는 곧 포슐방 영감의 방으로 옮겨졌다. 난로 앞에서 잠이 든 코제트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코제트를 눕힌 장 발장과 포슐방은 활활 타는 불 곁에 앉아 포도주 한 잔과 커다란 치즈 한 덩이로 식사를 했다. 하나밖에 없는 침대는 코제트가 점령했으므로 그들은 짚 더미에 몸을 던졌다.
“시장님, 시장님은 절 금세 알아보지 못하시더군요. 시장님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주시고는 그들을 이내 잊어버리시는 모양입니다만, 시장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시장님을 잊지 않는답니다. 두고 보세요. 시장님께서 원하신다면, 여기서 일을 하시게 해 드리겠어요. 시장님은 제 동생이고 코제트는 시장님의 손녀라고 말하면 됩니다.”
“앞으로는 나도 여기 있어야 하겠군.”
이 말은 밤새도록 포슐방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은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장 발장은 자기가 발견되어 자베르의 추적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만일 파리에 돌아간다면 자신과 코제트가 파멸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 수녀원에 오게 된 이상 여기서 머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편 포슐방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저처럼 담이 둘러 있는데 어떻게 마들렌 씨가 들어왔을까? 수녀원의 담은 기어오를 수도 없다. 또 아이는 누구일까? 두 사람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포슐방은 수녀원으로 들어온 이후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기에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포슐방은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 보았으나 마들렌 시장이 자기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것밖에는 분명한 사실이 없었다. 이 확실하고도 유일한 것만으로도 그는 족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마들렌 씨는 나를 구하기 위해 마차 밑으로 들어갈 때 이것저것 생각하며 망설이지 않았다. 마들렌 씨를 이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드리자.’
수녀원에 머물게 있게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포슐방 노인은 여러 생각에 잠겨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눈을 떠 마들렌을 보았다. 그는 짚단에 앉아 잠자는 코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슐방은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 작정입니까?”
이 말은 사태를 요약한 것이었다. 장 발장도 생각을 현실로 돌렸다.
두 노인은 상의햇다.
포슐방이 말했다.
“우선, 이 방에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하겠어요. 당신이나 어린애나 모두 말입니다. 정원에 한 걸음이라도 나서면 끝장입니다.”
“알았소.”
포슐방이 계속했다.
“마들렌 씨, 당신은 마침 좋은 때 오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쁜 때 오셨다고도 할 수 있지만, 지금 수녀님 한 분이 위독하십니다. 그래서 이곳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은 안심이 됩니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만.”
장 발장이 지적했다.
“하지만 여기는 담으로 가려져 있고 저 폐옥 같은 집의 그늘에 숨어 있소. 나무도 우거지고 해서 수녀원에서는 보이지 않을 텐데.”
“처녀들이 있습니다.”
장 발장이 물었다.
“어떤 처녀?”
포슐방이 지금 자기가 말한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그가 말했다.
“수녀가 죽었습니다. 조종(弔鐘)입니다.”
그러면서 장 발장에게 들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번째 종이 울렸다.
“종은 유해가 교회를 나갈 때까지 1분마다 24시간 계속해서 울립니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부속학교 여학생들이 문제입니다. 쉬는 시간에 공이라도 굴러 오면, 물론 금지되어 있지만 모두들 이리 와서 샅샅이 찾고 뒤지고 법석들입니다. 그들 천사들은 장난꾸러기 악마지요.”
“알겠어요, 포슐방. 기숙생이 있단 말이군요.”
장 발장은 마음속으로 ‘코제트의 교육을 위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포슐방이 말했다.
“젊은 처녀들이죠. 아주 시끄러워요. 저를 보면 막 도망친답니다. 여기서 남자란 페스트와 마찬가지입니다. 제 발에 맹수처럼 방울이 달린 것은 그 때문입니다.”
장 발장은 점점 더 깊이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 수녀원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어 그가 소리 내어 말했다.
“그렇지, 여기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포슐방이 대답했다.
“아니죠. 여기서 나가는 일이 어렵습니다.”
장 발장은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밖에 나가는 일이?”
“그렇습니다, 마들렌 씨.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는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포슐방은 다시 들려오는 조종 소리를 들으며 말햇다.
“이러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큰일입니다. 어디로 들어왔는지 의심을 받게 됩니다.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으니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는 것으로 좋습니다만, 수녀들이 볼 때 사람은 누구나 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갑자기 또 다른 종소리가 상당히 복잡하게 들려왔다. 포슐방이 물었다.
“들어오신 곳으로 다시 나가실 수 없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포슐방,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어 주시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포슐방의 대답이었다.
“제게는 새삼스레 그런 말씀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가까이 불렀다가 다시 내려보내신 것이죠. 다만 남자 수도원에 보내시려던 것을 잊었을 뿐입니다. 아, 또 종이 울리는군요. 저것은 문지기더러 시청에 가라는 지시입니다. 시청에서 의사를 보내 죽은 수녀를 검시하게 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 죽었을 때의 의식입니다. 물론 수녀들은 이런 의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신앙심도 없죠. 그들은 베일을 들춥니다. 때로는 다른 것까지 들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빨리도 의사를 부르는군요. 왜 그럴까요? 이 아이는 여전히 잠을 자는군요. 참, 이름이 무엇입니까?”
“코제트요.”
“손녀달인가요? 아니면 따님인가요?”
“그렇소.”
“이 아이가 나가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안마당 쪽에 제가 다니는 통용문이 있으니까요. 제가 문을 두드리면 문지기가 열어 줍니다. 제가 이 아이를 담은 큰 광주리를 메고 나가면 됩니다. 제가 광주리를 메고 나가는 건 흔히 보는 일이니까요. 당신이 어린애더러 꼼짝 말고 있으라는 말만 하게 됩니다. 위에는 보를 덮을 겁니다. 저는 슈맹베르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한 노파를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거기에 맡기면 되지요. 귀머거리 노파인데 아이용 침대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 노파에게 내 조카라고 하면서 내일까지 좀 맡아 달라면 됩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당신과 함께 올 수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도로 들어오시도록 할 테니까요.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나가느냐가 문제입니다.”
장 발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알려지고 싶지가 않아요. 그것이 문제요. 포슐방, 코제트를 광주리에 담아 보를 씌우듯이 나도 그런 방법으로 나가게 할 방법을 연구해 주시오.”
포슐방은 왼손 가운뎃 손가락으로 귀밑을 긁었다. 난처하다는 표시였다.
이때 세 번째 종이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들었다. 포슐방이 말했다.
“의사가 돌아가는 신호입니다. 의사가 시체를 보고 ‘응, 죽었군. 좋아요’하고 말한 것입니다. 의사가 천국에 가는 여행증에 서명을 하면 장의사가 관을 보냅니다. 죽은 사람이 수녀라면 수녀가 입관을 시킵니다. 수사가 죽으면 수사들이 입관시키고요. 그런 다음 제가 못을 박습니다. 그것도 정원사의 한 가지 역할입니다. 정원사가 무덤 파는 일까지 하는 셈이죠. 관은 교회당의 천장이 낮은 방에 안치하는데 그 방은 한길과 통해 있습니다. 의사 이외에 다른 남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장의사의 일꾼과 저는 남자 축에 끼이지도 못하니까 예외이지만요. 그 방에서 제가 관에 못질을 합니다. 그러면 인부들이 와서 관을 마차에 싣습니다. 이것이 천국에 가는 순서죠. 빈 상자를 가지고 와서 무엇을 담아 가지고 가는 것, 이것이 장례신이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