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여행학교 이야기
김현아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우리가 배움을 얻는 곳은 학교, 학원, 공부방 등 다양하지만 로드스꼴라의 학생들의 학교는 다름 아닌 길 위, 바로 여행 속에서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와 미래를 향한 꿈을 배우는 학교, 로드스꼴라에 찾아가 여행을 학교로 만든 사람, 김현아 교사를 만나봤다.
Written by 홍유진 Photo by 백기광
여행을 꿈꾸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누구에게는 치열했던 일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에 에너지를 주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남을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 정처 없이 헤매는 방랑 같은 여행도 있다.
여행으로 세상을 배우는 학교
대안학교 로드스꼴라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여행학교’다. 미인가 대안학교인 탓에 학력인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타 학교처럼 3년제로 운영되며 학기별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졸업 때는 결과물을 제출해야 수료할 수 있다.
“로드스꼴라에 대한 오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 년 내내 여행만 하는 학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실은 그렇지 않고요. 여행은 한 학기에 한 번, 한 달 정도 하게 됩니다. 나머지는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로도 충분히 벅차거든요.”
대부분 ‘따분한 학교수업 대신 여행을 하는 학교라니 얼마나 재미있을까?’ 식의 기대를 하고 찾아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니, 절대로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여행하기 전 여행지에 대한 지리, 문화, 사회적 상식은 기본이요, 관련 주제에 대한 전문가 초청 강의만 해도 10회 이상에 감상문도 제출해야 한다. 해외여행에 필수인 외국어 공부는 외고보다 더 철저하며 경우에 따라 제 2외국어도 배운단다. 그 뿐이랴. 여행지에서 낯선 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는 필수. 어디서나 손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연주는 물론, 전문가 급의 사진기술도 익히고 있다.
“최근에는 졸업반 친구들과 함께 ‘백제의 길, 백제의 향기’라는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서울, 부여, 공주, 익산부터 일본까지 백제의 흔적을 좇아가는 대형 프로젝트죠.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각각 자기 나름의 발견을 하게 돼요. 역사나 인류학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는 졸업 후 대학에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을 것이고, 이런 식의 스토리를 만드는 여행 자체가 좋은 친구는 여행업계로 진출하고 싶겠죠. 여행을 통해 자신이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친구도 있고요. 여행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반드시 여행 관련 업종에 종사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김현아 교사는 여행학교 로드스꼴라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대표교사로 ‘아픔을 딛고 미래로 향하는 나라 베트남 이야기’ ‘박영숙을 만나다’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그녀들에 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등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하다. 또 청소년직업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오랫동안 ‘창의적 글쓰기’ 강좌로 청소년들을 만나오기도 하고 ‘고정희문학상’? 수상자들의 모임 ‘고글리’를 운영하면서 문학에 소질 있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글로벌 마인드를 익히는 확실한 방법
그런 그녀가 여행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공정여행’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도가 높아진데서 출발했다. 공정여행이란 쉽게 말해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그곳의 자연을 지키는 방식’을 이른다.
그렇게 공정여행을 전파하고자 한 사람들이 모였고, 일부는 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을, 그리고 김 교사는 대안학교 로드스꼴라를 맡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들을 학교를 운영하면서 다시금 깨닫게 돼요. ‘여행이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구나, 여행 자체가 학교가 될 수 있겠구나….’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맞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증명시켜준 셈이죠.”
그녀의 지론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학교를 다니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이유는 평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다. 즉 학교는, ‘내가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곳인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여행은 더없이 훌륭한 학교임에 틀림없다.
“솔직히 20세 이하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계획 하에 독립적인 여행을 떠나볼 기회가 거의 없죠. 하지만 배움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시기 아이들에게 여행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져요. 인생의 거창한 깨달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도 필수적인 삶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지요.”
혹자가 말하듯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식주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드스꼴라에서 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숙소를 제외하곤 독립적인 재정을 운영하며 무엇을 입고, 먹고, 볼 것인지를 결정한다. 매일 학교와 학원, 독서실 등 부모가 정해진 루트만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180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또 일상에서는 나를 아는 사람 혹은 나와 비슷한 히스토리를 지닌 사람만을 만나게 되지만, 여행에서는 늘 낯선 사람,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된다.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낯선 사람과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배우는 것은 그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
“네팔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4,000미터나 되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셰르파라고 부르는 핼퍼를 고용해 짐을 운반하거든요. 우리아이들은 자기 짐은 자기가 맡기로 했지만 그래도 공동의 짐이 있었기 때문에 핼퍼가 필요했죠. 그 핼퍼들이 대부분 아이들 또래였어요. 열흘이 넘게 여정을 함께하면서 친해지고 대화도 나누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쟤하고 나는 같은 나이인데 나는 부모 돈으로 이렇게 해외여행을 다니고 저 아이는 학교는커녕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그 이유가 뭘까.’ 말로는 글로벌시대니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산 체험을 한 아이들은 진짜 이해가 뭔지 저절로 알게 되지 않을까요?”
진정한 교육을 향한 새로운 가능성
로드스꼴라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학년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기수별로 신입생을 뽑는데 나이는 15세부터 22세까지 다양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동갑내기하고만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또 어린데도 배울 점이 많은 친구가 있고 나이 먹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친구도 있지요. 그들이 서로 의지하고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이대를 초월한 교감을 얻기도 해요.”
그래서 형, 언니, 선생님 등의 호칭을 빼고 자신만의 호칭을 스스로 정해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로드스꼴라만의 차별성이다. 김 교사도 학교 내에서는 선생이 아닌 ‘어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렇듯 보도듣도 못한 형식 파괴의 배움터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변하고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을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했다. 김현아 교사에 의하면 그 변화는 놀라움을 넘어 감동적일 정도라고.
“창준이는 1학기 때만 해도 적응을 못하는 듯 보였어요. 어떤 것을 보여줘도 늘 멍하니 있는 모습이더라고요. 사실, 저희 수업은 몇 시간을 연속해서 스트레이트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긴 하거든요. 어쨌든 그랬던 창준이가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진 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세상에 대한 질문도 많아지고, 제법 수준 높은 책도 찾아 읽게 됐단다. 무엇보다 가장 흐뭇했던 것은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발휘했던 리더십과 협동심이었다.
“4,000미터나 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십대 아이들에게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에요.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들은 제몫의 짐까지 지고 올라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니죠. 창준이는 체력이 좋은 편이라 먼저 올라갔는데 한참 후 보니 다시 뛰어내려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경사가 꽤 급한 편이라 제가 깜짝 놀라 왜 내려오냐 물으니 ‘어딘이 짐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제가 들어드리려고요.’ 그러는 거예요.”
누가 요즘 아이들은 인내심도 없고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했는가. 김 교사가 함께 여행했던 아이들은 적어도 서로 힘이 되어주고 이끌어주는 과정 속에서 ‘진짜’ 인생이 완성된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었다.
“여행이라는 게 마냥 설레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무조건 국내 도보여행을 하는데 발에 물집 잡히는 것은 다반사고, 때로는 부상도 당하죠. 누구는 속도가 느리고 능력이 부족하기도 해요. 하지만 ‘경쟁’만 해서는 결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거든요. 혼자 기를 쓰고 간다고 해서 그 길이 즐거운 것도 아니고요.”
로드스꼴라에는 교복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대신 교실에서는 흥겨운 합주 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교과서 대신 두꺼운 인문학 책을 품고 다니며, 고민과 투정 대신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와 내일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은 정부지원이 없기 때문에 미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희 같은 작은 학교가 창출해 내는 재미있는 상상력이 공교육과 만난다면 분명 대단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거라 믿거든요. 그때까지 로드스꼴라는 계속 재미있는 일들을 벌여나갈 작정이에요.”
출처 : 초록우산의 교육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