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깊이 찾아오심으로 필자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 되셨고 신학을 하셨다. 비록 어머니께서는 질병 때문에 신학의 길을 다 마치지 못하셨지만, 어머니의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며 필자는 자연스레 신앙인이 되었다. 중학생 때 필자는 성경에서 사도 바울을 보았고 그의 삶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었으며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증언한 가장 활발한 선교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선교사가 되기로 생각했고 신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로, 지금 필자는 선교신학을 연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교회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학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신학자가 되려는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필자에게 주어진 삶 자체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 결정을 주변 사람에게 말하자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했다. “왜 굳이 그런 힘든 길을 가느냐, 그럴 거면 학부를 신학교를 가지 왜 일반대학교를 갔냐, 네가 가지고 있는 스펙이 너무 아깝지 않냐, 쓸모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 반응이 요즘 점차 많아지고 있다. 세상은 신학자와 목회자가 되려는 결정에 냉담하다. 일반학생과 신학생 모두 같은 학자의 길을 걷는데도 일반 학문을 배우는 학생에 거는 기대와 신학을 배우는 학생에 거는 기대가 다름을 체감한다. 세상에서 목사의 이미지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언론에서 목사의 추문이 보도되고, 드라마 <오징어게임>, <수리남>, <더 글로리> 등에서 보이듯이 대중매체에서도 목사를 포함한 그리스도인이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심지어 최근에는 그리스도인 청년조차도 목사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상태이다. 또한, 교회가 쇠퇴일로를 걷고 있기에 목회자들이 전임 사역지를 구하는 일도 어렵고, 설령 사역지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로는 생활이 어렵다. 그래서 지금 ‘일하는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으며, 목사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역자로 사는 일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목사도 금수저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금수저가 아니다. 많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흙수저를 문 사람이다. 지금껏 청년 대부분이 가지 않는 길이자 매우 이질적인 길인 신학자의 길을 이야기해서 많은 청년 독자는 필자가 공상과학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저론’이라는 지점에서 많은 청년들이 신학자의 길을 가려는 필자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은 금수저가 되지 못함을 한탄하며 흙수저인 자기 삶을 비관하고 모든 걸 포기하는 ‘올(All)포 세대’가 되거나, 흙수저이지만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며,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안식 없는 삶을 매일매일 살아가다가, 어쩌다 여행하거나 명품선물을 받은 일과 같이 남 보기에 부러울 만한 일이 생기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사진 찍어 올리면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삶을 산다. 아무리 일해도 이번 생에서는 내 집 하나 마련하지 못할 거 같은 상황 속에 로또나 주식, 비트코인 등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며 큰 거 한방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청년들은 인생을 단번에 역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바라는 듯하다. 지난 2022년에 방영된 웹툰 원작 드라마인 <금수저>와 <재벌집 막내아들> 모두 그러한 현재 젊은 세대의 꿈같은 희망을 읽어낸 작품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정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거나 남이 가진 금수저를 빼앗아서라도 금수저를 쥐고 있어야만 이번 생이 좋은 생인가? 그렇지 못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높은 사회적 위치에 오르지도 못하면 이번 생은 망한 생인가? ‘수저론’과 같은 신(新)계급론이 우리 삶의 가치와 세계관을 주도하도록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
필자는 흙수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불을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 도자기 만드는 체험학습장에 간 경험이 인상 깊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흙은 불을 만날 때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 불의 이미지로 묘사된 존재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때 교회에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성령이 내려오셨다. 그러자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포함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실패자였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음도 불사하고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담대히 전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필자는 이 일이 성경의 이야기만이 아니라고 믿는다. 실패자처럼 보이는 흙수저 청년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불을 받는다면 명품 ‘도자기 수저’가 되어 귀한 삶을 살 것이다. 또한, 이 불은 ‘흙수저’에게만 소용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잠언에서는 불이 은과 금을 연단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금수저 혹은 은수저를 문 청년이라도 성령의 불을 받지 않는다면 순금과 순은이 될 수 없다. 금수저라도 불을 만나지 않는다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수저를 물고 있던지 불을 만나자! 그 불이 자신의 수저를, 자신의 삶을 좋게 만드실 것이다. 자신이 어떤 수저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불을 만났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첫댓글 금수저이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
그게 중요한게 아니랍니다^^
어떤 수저든 불을 만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