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를 읽고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 문장은 이상이 지은 ‘날개’의 첫 소절이다. 중학교 때 날개를 처음 읽고 그 당시에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으니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가슴이 찡했다. 영혼은 죽어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아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란 주인공 ‘나’가 술집 작부인 아내의 옆에 붙어사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칭하는 말이다.
‘나’는 직업이 없고 하는 일 없이 아내에게 빌붙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백수이다. 아내는 해질 무렵이 되면 곱게 화장을 하고 어디론가 나가고, 때로는 아내를 찾아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손님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나’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거나 방에서 꼼짝 않고 손님들이 돌아갈 때까지 뒷방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한다. 이쯤이 되어서야 나는 아내의 직업이 술집 작부인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아내가 선택한 일도, 아내의 행동이 수상쩍기 짝이 없지만 그저 아내의 행동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경제력이 없는 ‘나’의 상황도 이해가 가 먹먹했다. 어느 날, 외출했다가 비를 흠뻑 맞고 ‘나’는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만다. 아내는 ‘나’에게 약을 주는 척 하며 약이 아닌 수면제를 먹인다. 그 사실을 알게 된‘나’는 일어나 거리로 나간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에 혼란과 쓸쓸함 분노 여러 감정이 일었을 것이다. ‘나’는 화신백화점의 5층 꼭대기로 올라간다. 이때 정오의 싸이렌 소리가 울리고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낀다. 나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하고 외친다. 이 대목을 중학교 때 읽었을 땐 아내를 믿었던 만큼 아픔이 커서 결국엔 자살로 끝이 나는 그저 흔한 소설인가 싶었다. 겨우 몇해 지났을 뿐인데 고등학교에 올라와 다시 읽은 느낌은 새로웠다. 경제력도 능력도 없어 꺾여버린 날개를 다시 한 번 펼쳐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나’의 포기하기 직전의 마지막 희망을 쥐어짜낸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나는 주인공이 무의미해 보이는 삶에 저항하지 못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일제시대와 우리나라의 지식인을 모두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 일본 지배 계급의 합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날 수 있을 것만큼 재능이 있고 활기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천재성을 아무 곳에도 발휘하지 못하게 지식의 날개를 자르고 손발을 묶어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시대였을 것 같다. 일본의 지배는 한 천재를,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아내의 부정에도 눈을 감게 하고 그 아내에게 의지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날개’가 단순한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평범한 소설이 아니라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대의 어둠을 ‘나’의 무기력을 통해 보여주려는 천재 작가 이상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