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치 혀의 독백
김 순 교
키는 십 센티 정도, 몸은 근육 덩어리, 뼈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산다. 그것도 한 장소에서만.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유연성은 갑이다. 몸을 폴더폰처럼 접을 수도 있다. 늘 촉촉하니 피부과 물광 주사도 필요 없다. 허리 밑 옹달샘 덕분이다. 보기에는 부드럽고 연한 분홍빛이 돈다. 그때 내 컨디션은 최고다.
온수를 끼얹는다. 옆구리에 아리한 통증이 몰려온다. 나물 더미를 급하게 옮기던 중 울타리 사이에 끼이는 바람에 생긴 생채기다. 며칠 동안 온갖 신경이 곤두섰다. 부풀어 올랐던 살점이 이제 겨우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늘 방에만 있다. 머리가 천장이든 벽이든 어디라도 닿는다. 좁지만 두툼한 대문과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안전한 곳이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이다. 기분에 따라 모양이나 색깔도 변한다. 그렇다고 눈까지 돌아가는 카멜레온은 아니다. 방에는 수시로 다양한 것들이 들어온다. 아무 물건이나 못 침입하게 통제를 하지만 맘대로 안 될 때가 있다. 세 해 전, 눈에도 안 보이고 소리도 없이 들어온 것 때문에 세상이 난리를 쳤다. 그때부터 방 입구에 텐트까지 치고 지내야 하니 갑갑하기 짝이 없다. 바로 뒷방에서 콜록거리면 나까지 싸한 기분이 든다.
내 방에 물건이 들어오면 대문을 닫고는 요상스런 작업을 시작한다. 흰색 울타리랑 바쁘게 움직인다. 난 물을 뿌려 먼지도 막고 섞기도 한다. 울타리는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물건들을 자르고 부수고, 심지어 찧기도 하여 부드럽게 만든다. 몰캉몰캉해진 것을 내 등에다 올려 아래쪽으로 넘겨주면, 그 이웃은 나와 다른 역할로 움직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몸은 왜소하지만 난 거대한 우주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셈이다. 나와 연결된 이웃들은 각자 할 일이 있다. 누구라도 탈이 나면 삐걱거리고 불편해진다. 함께 움직여야 구석구석에 생기가 돈다.
어제는 작은 고추의 톡 쏘는 매운맛에 거의 질식할 뻔했다. 온몸 세포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데 좀 웃기는 건 그 고통이 사라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오히려 상쾌해졌다는 사실이다. 짧은 순간 생의 매운맛 단맛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것이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 감각이 마비된다. 특히 위쪽 관제탑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 한꺼번에 훅 들어오면 더 당황스럽다. 가만히 있던 도로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고 땅이 기울기도 한다. 관제탑 레이더가 방향을 잃으면서 몸이 꼬이고 온 우주가 흔들린다. 그때 나도 정신이 혼미하다. 미지근한 꿀물을 끼얹고 호흡을 가다듬으면 대부분 제자리로 돌아온다. 갑작스러운 외부 자극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관제탑과 이웃들 덕분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 체구는 작지만, 자부심 하나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공명하고 음색도 조절한다.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을 잘 살펴보면, 대문, 흰색 울타리, 방 천장 바닥 뒤쪽 등 구석구석을 활용하는 소리로 만드셨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성을 전달하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꿰뚫어 보신 거다. 그중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나에 대해 말들이 많다. 길이가 세 치밖에 안 되면서 사람 잡는다느니, 뼈도 없으면서 사람들 뼈를 부순다느니, 뾰족한 감정 전류가 흐르면 내 밑에 도끼가 들어있다고 구시렁거린다. 사람들에게 세심하게 잘해주면 입 안의 나처럼 군다고도 한다.
또 이런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거울에 내 온몸이 드러났다. 완전 노출에 흠칫 놀라 당황했지만, 나도 내 몸을 자세히 보려고 집중했다. 관제탑은 나를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들어올려 살피고 또 돌려보고 말아 보았다. 울타리 사이에 넣어 두드려보게도 하더니 글쎄 나를 보고 뱀 같다며 큰소리쳤다. 피식 웃었다. 관제탑 렌즈로 본 내 모습은 뱀은커녕, 변화무쌍한 모양이 그저 귀엽기만 했는데도 그런 핀잔을 들으니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귀여운 솔이 들어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거나 때도 밀어주니 기분전환도 된다.
가끔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몸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표면이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으면 스트레스로 심장 친구가 화났다는 증거라고 하고, 또 굳은 것처럼 뻣뻣하면 중앙 통신망에 이상이 왔다고 하며,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한쪽으로 치우치면 가장 높은 관제탑 회로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고, 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균열이 있으면 척추나 위에 염증이 있을 수 있다는 둥 말들이 많다.
어떤 날은 물 한 방울 못 삼킬 때도 있다. 몸에 돌기가 생겨 입맛이 쓰고 아무것도 못 넘긴다. 바늘로 찌르듯 아프다. 허리 아래 옹달샘도 마르며 몸이 건조해지고 갈라지기라도 하면 칼로 살을 도려내는 것 같다. 그래도 참는다. 옆 동네에 일이 생겨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며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또 저절로 나아질 때가 있다. 이웃과 연결되어 있으니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더불어 잘 지내야 하는 게 필수다.
지구별 많은 동물 생명체는 어떤 형태로든 나를 품고 있다. 생존을 위한 일은 정교하게 해내니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내가 속한 우주는 사람들이 사는 거대한 세상과도 씨실과 날실로 교직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를 연결하고 확인한다. 무수한 체세포에 생기를 불어넣고 서로 소통하는 것 등은 대부분 내가 관여해야 가능하다. 미세한 내 움직임으로 때로는 천국과 지옥을 맛보기도 한다.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는 생명의 장에 함께하는 셈이다.
소소한 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를 움직인다. 생김새는 달라도 이웃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공생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아리한 생채기의 일깨움이 골수에 파고든다.
따뜻한 뽕잎차에 몸을 담근다.
첫댓글 ^^
대단한 관찰력과
표현력에 박수를 보내는
멋진 글입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