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모름지기 사람의 생명과 평안을 지켜준 산신(山神)의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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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5]
옷깃을 바짝 여미게 하던 매운 바람 지나고, 며칠 째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다시 또 몇몇 지방에 한파예보 소식이 들립니다. 포근하다 했지만, 실은 이 정도가 평년 날씨 아니었던가 싶은데, 지난 며칠 동안의 된 추위에 익숙해진 몸이 포근하다고 느끼는 것이지 싶습니다. 기상청의 장기 예보를 살펴 보니, 이달 하순 들어서면서 또다시 평년보다 낮은 기온의 추위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하기야 아직 설날도 오지 않았으니, 아직은 포근한 날씨를 기다리기는 이르지 싶습니다.
겨울 추위가 오래 이어지는 것도 그렇지만, 봄이 너무 빠르게 오는 것 역시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나무들에게도 그렇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모든 생명을 위한 지상의 양식을 지어낸 나무들에게도 휴식, 혹은 안거(安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무 줄기 안팎으로 스미는 겨울 추위를 잘 이겨내며 줄기를 한 켜 더 키울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 시간들은 곧 새 봄부터의 더 푸르른 생명 활동을 이어갈 충전의 시간이 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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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중산간 지역인 산천단 곰솔도 그렇게 이 겨울에 또 한 켜의 나이테를 덧씌우고 있었습니다. 이곳 산천단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맞이하고자 하늘에서 내려오던 한라산신(漢拏山神)이 잠시 머무르는 나무가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전해오는 옛 이야기입니다. 대개는 사람들이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한라산신께 제를 올리던 겨울 즈음의 일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산신께 제를 올리기 위해 정성껏 마련한 제수용품을 이고진 채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힘겨운 산행에 나서던 때입니다.
그게 2월이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제주도는 다른 곳에 비해 그리 추운 곳이라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제주도는 유난히 바람이 많아서,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도 체감하는 추위가 다른 곳 못지 않게 사납게 느끼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더 그랬겠죠. 게다가 거개의 산들이 그렇지만, 한라산 역시 날씨의 변화가 급격하여 백록담까지 제수용품을 지고 오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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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라산신제를 지내는 일은 언제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선 성종 때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약동(李約東)이라는 어른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라산신제는 제주목사의 소임이었습니다. 새로 제주에 부임한 이약동 어른도 당연히 치러야 할 일이었지요. 그러나 바람 센 2월의 한라산을 오르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습니다. 예정된 날짜에 맞추어 백록담에 오르는 일이 어려웠을 뿐 아니라, 때로는 산행 중에 몰아치는 한파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고 합니다.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평안하게 하기 위한 산신제가 오히려 백성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가 되는 거였죠. 그러자 이약동 목사는 다른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의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평소에 하늘, 혹은 산 깊은 곳에 머무르는 산신(山神)은 사람이 올리는 제사를 지켜보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령스럽고 맑은 나무 가지 위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한라산신이 머무르던 나무를 이약동 목사는 찾아, 그 나무 앞에서 산신제를 올리기로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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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찾은 나무가 바로 지금의 산천단 숲의 곰솔이었습니다. 키가 무척 큰 곰솔들이 여러 그루 무리지어 서 있는 이 숲이야말로, 한라산신이 머무르기에 가장 알맞춤한 신성한 숲이었고, 숲 가운데에 높지거니 자란 곰솔이야말로 산신이 머무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나무로 보였던 겁니다. 이약동 목사는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리기로 하고, 곰솔 숲 한가운데에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때가 이약동이 제주목사로 부임한 첫 해, 조선 성종 원년인 1470년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산천단’이라고 부르는 곳의 내력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한겨울에 목숨을 걸고 백록담까지 오르는 무모한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결국 산천단은 이약동 목사가 제주 백성을 위해 베푼 여러 선정(善政)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상징이 됐습니다. 물론 제주 목사 이약동의 선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그가 제주 목사로 지내던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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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산천단 숲은 아름다운 곰솔이 중심에 우뚝 선 아름다운 숲이지만, 이약동 목사가 산천단을 짓기로 하던 오백여 년 전에도 아름다운 숲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당시 이곳에는 맑은 물이 솟아나오는 소림천(小林泉)이 있었고, 인근에 소림사(小林寺)라는 절도 있었다고 합니다. 절집이나 샘의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하늘로 높이 솟았던 나무들은 필경 그때보다 더 높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고, 언제 보아도 산신이 머무르기에는 더 없이 알맞춤한 신령산 숲임에 틀림없습니다.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제주 산천단 곰솔 군’은 모두 여덟 그루의 곰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곰솔 외에 주변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여러 그루의 팽나무와 멀구슬나무 등이 어우려저 숲의 정경은 싱그럽습니다. 여덟 그루의 곰솔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널찍한 공간이 있지요. 마치 옛 사람들이 제를 올리기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짐작할 수 있는 곳이지요. 울타리 안쪽 깊은 곳에는 산신제를 올리던 돌 제단이 세월의 풍상 따라 푸른 이끼를 얹은 채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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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산천단 곰솔 여덟 그루는 그 규모만으로도 대단합니다. 나무들의 나이는 대략 500년에서 600년 정도 됐고, 가장 큰 나무의 키가 30미터나 됩니다.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도 4미터가 넘는 정도로, 우리나라의 모든 곰솔을 통틀어 가장 큰 나무에 속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 아름다운 곰솔로 여겨지던 충남 서천 신송리 곰솔, 전북 익산 신작리 곰솔 등이 벼락을 맞아 쓰러진 뒤여서 더 귀한 우리의 자연 문화재로의 가치는 더 소중하지 싶습니다.
울타리 한켠에는 산천단을 이곳에 세운 이약동 목사의 치덕을 기억하기 위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약동 목사(1416~1493)는 스물 여섯 되던 해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인 서른 여섯 되어 문과에 급제했으니, 비교적 급제가 늦은 편이지 싶습니다. 제주에 목사로 부임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열아홉 해가 지난 뒤이니, 마흔 다섯 되던 해였습니다. 제주에서 그는 삼년 동안 선정을 베풀었는데, 제주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설치한 산천단을 비롯해, 제주민들에게는 선정을 베푼 관리로 기억되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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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주를 떠나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천단의 흔적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기억했지만, 제단조차 사라지고 나무들만 남아서, 옛 일을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1997년 들어서 곰솔 숲의 공터에서 이약동이 건립한 ‘한라산신고선비(漢拏山神古禪碑)’가 발굴되어 옛 사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해 봄에는 곰솔의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정비를 깔끔히 마무리하여 관람객들에게도 더 좋은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나무에게도 쾌적한 생육환경이 마련된 건 물론이지요.
곰솔 숲 가장자리에 서면 멀리 제주 앞바다가 내다보입니다. 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나무와 바다를 내다보면서 옛 사람의 지혜를 실천하게끔 도움을 준 큰 나무들을 가만히 눈으로 어루만져봅니다. 나무는 그저 사람의 곁에 말없이 서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안녕을 위해 이야기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고맙기만 합니다. 나무 없이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결코 허튼 말이 아닐 게 분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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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내내 사람의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살이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고마운 생명체입니다. 분주하고 번거로운 도시의 아침을 천천히 깨우는 길가의 가로수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우리 곁 아주 가까이에 서 있는 나무들 곁으로 스쳐가는 겨울 바람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평안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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