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네에 고물상이 있다.
고물상의 넓은 마당에는 폐지가 축적되고 한편에 고철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고물들은 비를 맞고 비 맞은 고철들이 녹슬어 흘러내린 녹물이 땅을 물들인다. 이 집엔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
예쁘게 생긴 이 아들은 병약하여 병치레가 심하고, 그에 따라 가냘픈 몸이 더욱 여위어갔다.
부모는 걱정이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병약한데다가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아들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책이며 장난감이며 음식이며 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을 다 해주지만 아들은 의욕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불행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고물상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아들을 찾아 엄마가 마당을 뒤지다가 마당 뒷뜰 담벼락 양지에 앉아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은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담벼락 밑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가가서 보니 담벼락 아래 돌 틈에 작고 예쁜 들꽃이 몇 송이 피어나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씩은 벌들이 찾아와 조그만 꽃망울을 흔들어놓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아들은 이 뒷 뜰을 찾아와 넋을 놓고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말없이 뒤돌아서 왔다.
그날부터 아들이 보이지 않으면 이 어린 아들은 어김없이 마당 뒷뜰에서 들꽃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아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눈빛에 생기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밥도 잘 먹고 기운차게 걷는다. 물론 시간만 나면 뒷마당으로 가는 예의 그 행위는 계속됐고.
신기하게 여기는 아버지에게 엄마는 사실을 말했고 그들의 얼굴에선 어두운 기운이 가시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 정문에 이런 문구가 아치 형으로 걸려있다.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노동이 자유롭게 하다니. 실은 죽음의 중노동이 너를 죽음으로 몰아내면 그때 자유롭게 될 것이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절을 이용한 나치의 음흉하고 악랄한 왜곡이었다.
나치의 말이 맞다.
태어나 젖을 먹으면서 자라나 수많은 학업의 터널을 통과하여 결혼하고 육아하고 돈을 벌다가
늙고 병들어 인생 무대에서 퇴장하기까지 인간은 노동한다.
노동력이 떨어진 고물이 되어 이 무대를 퇴장하면 그는 노동할 필요가 없으니 자유롭게 된 것일까?
그러나 어떤 인간도 이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는 못하리라.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망이요 절단이요 붕괴다.
진정한 자유, 세상도 사회도 자기 육체도 인생의 역경도 침범할 수 없는 진정한 자유라는 게 있는 것일까?
현대인들 속에는 모두 병들어 창백한 한 어린 아이가 숨어있다.
인간은 먹고 떠들고 아우성치고 몰려가고 거창한 몸짓을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행하는 상스런 어른 행동일 뿐,
아무리 떠들어도 이 세상의 의제와 인간들의 관심거리는 그 아이에겐 폐품과 고철더미에 불과하다.
그 아이는 생명 없는 현실을 두려워하며 창백하게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현란한 거짓말 속에서 웃고 울고 소리지르고 춤을 추다가
간혹 캄캄한 밤이면 남의 주소에 선 것 같은 이탈감과 자기를 집어삼킬 것 같은 광대한 두려움에 자지러진다.
아니면 이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광대짓을 하든지.
당신 안의 어린아이를 울리지 말라.
그 아이에겐 이 세계의 폐품과 고철더미가 아니라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필요하다.
그 아이에겐 내면의 악취를 제거할 영원한 향기가 필요하다.
그 아이에겐 생명의 모조품이 아닌 생명 자체가 필요하다.
그 아이에겐 왜곡된 자유, 모욕된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가 필요하다.
그 아이에겐 자기가 멸망될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해방시킬 영원한 의로움이 필요하다.
그 아이에겐 이 세상의 온갖 천하고 잡스런 이론이 아니라 진리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필요하다. 그의 복음이 필요하다.
우리 안의 어린아이를 울리지 않는 길은 그것 뿐이다.
2024. 8. 12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