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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에세이집 [☆소리를 삼킨 그림자처럼☆]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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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삼킨 그림자처럼]
오유정 에세이집 / ARETE총서 0004 / 천년의 시작(2015.09.23)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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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오유정
태양도 추위에 움츠린 채 아직 잠자리를 걷어차지 못하는 아침 여섯 시,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교한 길이의 호흡으로 또박또박 걷는 것처럼 나는 가족들의 하루를 위해 어둑한 겨울 아침에도 늘 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아직 곤한 잠에 취한 가족들이 따뜻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옷자락이 스르륵 흘러내리듯 잠자리를 빠져나온다.
사위는 어둠에 묻혀 있고, 어둠 속에서 으스스한 혀를 날름거리는 한기에 맞서려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친다.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는 사이 이달 초에 거실에 설치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며 나를 반긴다. 졸린 눈을 깜박이며 우리 집을 뜬눈으로 지켰을 트리의 불빛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거실의 불을 켜기 전, 캄캄해서 더욱 밝았을 색색의 아기 전구들과 눈인사를 한다. 바쁜 걸음을 저녁마다 내려놓고 잠드는 것처럼 전류의 흐름을 끊었다 이었다 하며 노동이 보폭을 조정하는 이가 전구들도 수없이 반짝이다 잠깐씩 멈췄다.
트리도 가쁜 숨을 고르며 눈감고 이 겨울을 골똘하게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점멸을 단락이라 한다면 낮과 밤도 하나의 단락이고, 길고 긴 삶의 여정에서 잠깐씩 뒤돌아보는 시간도 단락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밤새 고요에 묻힌 집 안을 지킨 노고를 알아 달라고 고개를 수굿이 숙이고 쑥스러운 윙크를 보내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무 말 없이 밤이라는 마디의 제자리를 지켜준 기특한 녀석들이다.
찬 공기가 폐부에 들어오도록 아니, 아직 덜 깬 뇌에 들어오도록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이제는 형광등이 시간을 이어받을 때가 되었다고 부엌 쪽 스위치를 올린다. 스위치에 막혀 있던 전류가 물밀 듯이 형광등에 뛰어들어 거실의 어둠을 밀어내고 환해지며 아기 전구에서 발산되어 뻗치던 색색의 불빛들이 다소곳하게 트리 주변으로 반경을 좁힌다. 아기 전구들의 불빛을 벗 삼아 잠들었던 살림들이 아침을 맞는다. 밤새 집을 지켰던 트리를 좀 더 켜진 상태로 놔두기로 한다. 부산을 떨며 각자 정해진 위치로 달려 나갈 가족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다.
‘음식이 없는 식탁 자체만으로도 살아가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마술 식탁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실없는 생각을 하다 피식 웃어 버린다. 오늘 아침엔 가족들에게 무슨 반찬으로 식사를 하게 할 건지, 전기밥솥에 쌀을 안치며 잠시 고민한다. 부드러운 된장찌개가 괜찮을 것 같고, 공부하느라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아들과 딸을 위해 뇌에 힘을 부어 주는 등 푸른 생선구이가 좋을 것 같다. 반찬 준비에 대한 잠깐의 혼란은 짧은 시간에 정리가 되고, 방향이 설정되자 손이 익숙하게 움직인다.
뚝배기에 물을 담고 된장을 물에 개어 곱게 푼 후, 파를 썰고 버섯을 썰고 두부도 썰어 넣는다. 칼의 움직임 따라 도마의 소리가 경쾌하게 리듬을 탄다. 도마의 경쾌한 리듬은 숱한 세월 반복하며 숙련된 내 손끝이 내는 목소리이다. 가스레인지 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냉동고의 생선을 꺼내 굽는 냄새가 빠져나가도록 환기팬을 가동시킨다. 뚝배기 속에 넣은 식자재들이 된장찌개가 되기까지 부글부글, 지글지글 우려내며 연단하는 동안, 생선을 노릇하게 굽고 몸을 뒤집어 속살까지 골고루 익힌다.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녹여야 살 수 있는 것처럼 가족들의 몸속에 녹아들기 위해 저들은 불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세포를 철저하게 풀어놓는 것이다.
익어가는 반찬들을 보며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얼굴을 본 적은 없어도 수고한 손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깔깔한 입에 아침이 걸릴 수도 있으니 국을 준비한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들을 적당한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옮기며 가족들을 깨운다. 늘 반복하는 일이지만 스스로가 대견할 때가 많다. 오늘 하루도 삶의 전쟁터에 나갈 가족들을 위해 이른 아침 소리 없는 정성을 무기 삼아 치르는 나의 전쟁을 무난하게 치러 냈다. 부엌 창문에 묻어 있던 어둠이 한 조각 떨어져 나가는 만큼만 부엌에서 시작된 아침이 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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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새
오유정
나는 산촌 아이였다. 숲 속 유치원생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산이 보이고 마당이 끝나면서부터 풀이 나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고향은 공주시 유구면이었다. 아버지는 아랫마을에 살고 있던 어머니와 결혼을 했는데 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사셨다. 내가 네 살 때 아버지께서 막내딸이라며 나를 안고 이웃 마을에 놀러 가셨을 때부터 기억이 나는데, 지금 그 마을엔 기도원이 지어졌고 그때보다 더 작은 마을이 되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나는 ‘솔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솔새를 찾아 노래를 시키곤 했다. 여섯 살인 그때 언니 오빠가 많은 탓에 내 노래는 ‘꽃바구니 데굴데굴 금잔디에 굴려 놓고……’이거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란 노래를 목청껏 불러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고 한다. 언니 오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동생과 소꿉놀이를 자주 했다. 진달래를 꺾어 화병 대신 집 앞 개울에 꽂아 놓으면 그곳까지 우리 집 거실이 되었다. 여름이면 옥수수를 들고 나무에 올라앉아 매미 소리 들으며 지난 해 따 먹었던 머루가 익을 날을 꿈꾸었다. 제기를 함께 만들던 동현이라는 친구, 비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다가 내 팔이 아플 것을 걱정하여 우산을 대신 들어 내 머리를 생쥐처럼 적셔놓았던 이웃집 언니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85명이었는데, 오빠가 회장이어서 개구쟁이 남학생들도 나는 놀리지 않고 고무줄을 빼앗기거나 치마를 들춰 울고 다닌 적은 없었다. 산골 학교라 선생님이 학교에서 주무시거나, 좀 더 큰 마을에서 우리를 가르치시려 아침 일찍 학교로 오시곤 했다. 오빠를 가르치시던 키가 크신 선생님이 그대로 나도 가르쳤는데 키가 크신 선생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1학년들이 교문까지 달려가 인사를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닌지라 선생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교문으로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선생님이 못 보실까봐 되도록 가까이 오셨을 때 인사를 하려다 선생님 무릎에 부딪쳐 넘어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오빠는 집에 돌아가 거리 감각이 없다며 ‘오빠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나는 걸어가며 인사하고’를 몇 번이나 연습시킨 적도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줄을 섰다. 우리 집 쪽으로 가는 친구들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차도 없고 자전거만 있는 마을이라도 교통질서를 배워야 한다며 학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항상 왼쪽 길로 구령을 붙이며 다녔다. 겨울이면 난로가 문제였다. 아버지는 내가 추울까봐 장작을 몇 짐 학교에 보내곤 하셨다. 내가 3학년이 되던 해 큰 변화가 생겼다. 어머니는 농사도 힘들고 아이들 중학교가 멀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졸라 이모가 살고 계시는 온양 온천으로 이사를 했다. 같은 충청도라도 지역마다 사투리는 조금씩 다르다. 이모가 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사투리를 쓰실 때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동생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곳 온양은 길도 반듯하고 차도 많지만 하굣길에 줄도 서지 않고 구령도 없었다. 또 길가에 있던 덜 연근 목화를 누가 따 먹고 지나갔을까를 생각할 필요도 없고 열려 있는 대문 앞을 지날 때 개 조심만 하면 되었다. 이모 따라 대중온천탕에 가서 목욕을 하며 산촌 아이의 때는 목욕탕 속에 버리고 서서히 소도시 온양 온천 아이가 되어갔다.
이제 내가 아침 이슬로 발을 적시며 오빠를 따라 학교를 가던 그 길과 무지개가 내려앉았던 샘물에는 나무가 울창하여 볼 수도 없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면 머루가 익던 늘어진 나무도 늙어서 삭정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뜰에 ehdtodf을 재워 놓고 밭에 나가신 사이 동생 무릎에 생긴 상처가 잘 아물었을지 궁금하여 손톱으로 딱지를 떼어 보았다. 피가 나는 바람에 재빨리 흙으로 뿌렸던 우리 집 뒤뜰에도 나무가 무성할 것이다.
이웃집과 딱딱한 콘크리트 벽 하나를 사이로 하고 침대에 누워 ‘엄마, 나 내일 여섯 시간 해요’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 고향이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 게다. 내가 넘어져 웃음바다가 되었던 학교 운동장도, 아랫마을에 단옷날이면 아득히 높게 매어졌던 정자나무의 그넷줄과 체육 시간 냇가에 함께 발 담그고 놀던 친구도 볼 수 없다. 그저 꿈속에서 잠시 날아가 샘물에 손 씻고 산꼭대기에서 미끄러져 친구 집 뒤꼍으로 떨어지며 그리는 나만의 고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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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낮을 서성이다
오유정
회덕초등학교에서 특기 적성 수업이 있는 날이다.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싸늘한 기운이 몸에 파고드는 날씨였다. 어설픈 날씨에 찬바람이 몸 안을 헤집으면 아주 추운 겨울날씨보다도 우리 몸은 더 추위를 느끼게 되어 있다. 회덕은 조선 시대에는 회덕현이 있던 곳이다. 하기야 대전의 옛 이름이 ‘한밭’이었던 것을 보면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닌 너른 평야의 밭과 논이 많은 지역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근대에 대전에 철도가 부설되어 개발되면서 대전은 급격한 성장의 길에 들어섰다. 개발의 주도권을 대전에 빼앗긴 회덕, 회덕면으로 그 명맥을 이어 오다 대덕군이 대전광역시에 편입이 되면서 대전에 포함된 곳이다. 버스를 타면 대전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교통이 불편했던 시대에 그렇게 나뉘어졌던 곳이 대전에 포함된 것이다.
나는 회덕초등학교에서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논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저학년인 1-2학년생들이 많았다. 너무 어려서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내심 당혹했었다. 내 눈높이를 아이들에게 맞추어야 하는 것과 그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진도를 따라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마주치면서 아이들에게 먼저 사랑과 용기를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이라 해도 전심을 다해 정성을 들이는 것을 모를 리 없다는 생각은 곧 답을 얻었다. 그 이후 아이들은 내 수업을 잘 따라 주었다. 나는 최대한 쉬운 단어들을 사용하여 아이들과 동화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는 몇 번씩 반복하여 설명하며 아이들과 친해졌다.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에 유독 산만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책상 위를 뛰어다니기도 했었고, 수업 시간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옆에 앉은 아이들의 수업까지도 방해를 하는 아이였다. 나는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그 아이에 대한 생각과 그 아이의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 등을 생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딱히,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아이는 내 관심을 받으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수업에 집중하며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산만한 행동들은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한 아이 나름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사랑을 받고 싶어도 받을 게 없는 개별적 상황들에 의해 아이들의 행동 양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과 정성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고, 나아가서 어린이일 경우에 미래를 살아가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가을 하늘이 내려앉은 초등학교의 나지막한 경사진 진입로를 따라 베고니아가 곱게 피어 있었다. 경사진 진입로는 십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으나, 꽃을 감상하며 걷는 길은 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거리였다. 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운동장에 들어섰다. 평평하게 잘 다듬어진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아스팔트와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이곳 운동장에서는 바깥세상과는 시간의 개념이 확연히 달라 바쁠 것 없는 가을 햇살이 한적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동차만 없어도,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자연스런 흙에서 풍기는 여유로운 느낌의 묘를 연출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풍경 사진에서 사람만 들어가지 않으면 명품이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인위를 빼면 자연스러움으로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옛 시골의 풍경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면서 내 어린 시절이 운동장에 펼쳐진 것 같았다. 아이들이 타고 노는 자전거 바퀴를 내 눈이 따라가며 운동장에서 내가 뛰어노는 듯했다. 내 유년을 보는 듯 멈춘 가을의 대낮, 볕 속에서 시간을 멈춰 세우고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현재보다 먼 과거일수록 그 시절의 내 시간은 천천히 흘렀던 기억이 났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의 시간은 거의 멈춘 듯 더디게 흐르던 시절이었던 것이 떠올랐고, 나이 들면서 점점 빨라지는 시간을 멈출 방법은 없는 것인지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특기적성을 진행하려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 내게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도 먼 훗날 무심한 일상으로 눈여겨보지 않았을 운동장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련히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다. 세월은 빠르지만 우리의 후진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고, 이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우리의 과거처럼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삶의 힘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학교의 교정을 걸어 교실까지 오는 중간중간의 모습은 결국 내 유년을 추억하는 시간이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들이 작아도 작지 않고, 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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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의 상춘
오유정
겨울이라는 계절은 추위로 인해 우리 삶의 영역을 축소한다. 먹이가 턱없이 부족한 겨울을 넘기는 방법으로 일부 동물들은 겨울잠을 잔다. 사람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아니어도 추위에 의해 활동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좀 과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사람들도 활동을 하면서 일정 부분 제약을 받는 겨울을 약하나마 겨울잠을 자는 기간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겨우내 추위에 움츠려 산에 올 생각을 못 하다 봄기운이 완연하여 따스한 바람의 온기를 느끼며 계족산에 갔다. 겨울의 뒤꿈치를 물고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숲의 색은 갈색의 겨울 흔적을 간직한 채 여기저기 쑥들이 고개를 내밀고, 돌나물의 새순이 마치 파란색 꽃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고개를 든 새싹들을 보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이 더해져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온기를 풀어 놓는 봄기운은 전염병처럼 내게 들어와 내가 감염이 되었다. 애초에 계족산의 순환 등산로를 걷기로 했던 계획은 뒤로하고 벗은 모자 속에 어린 쑥이 차 오르며 시간이 흘렀다.
계족산은 대전의 동쪽에 위치해 전체 지형에서 보면 좌청룡에 해당되는 산이다. 계족산은 대전의 송촌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산의 상층부에 산 전체를 환상으로 연결하는 자동차가 다녀도 될 만큼 제법 넓은 길이 있다. 송촌동 일대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환상 등산로까지 지선으로 연결된 작은 등산로가 곳곳에 있어 송촌 일대의 어느 곳에서나 계족산 등산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높은 산이 아니고 아기자기하여 등사하기에 적당한 산이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의 한 기업에서 투자를 하여 순환 등산로에 황톳길을 조성해 맨발로 걷는 명소로 만들고 있다. 이 기업의 후원에 힘입어 해마다 전국 규모의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우리나라 마라톤 영웅 중의 하나인 이봉주 선수가 현역 시절 큰 대회를 앞두고 이곳에서 연습을 하여 유명해진 코스이기도 하다. 잠시 황톳길 쪽을 바라보며 이봉주 선수가 현역 시절 큰 대회를 앞두고 이곳에서 연습을 하여 유명해진 코스이기도 하다. 잠시 황톳길 쪽을 바라보며 이봉주 선수의 발자국이 수없이 쌓였을 흙길을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많은 인내와 열정이 담금질되었을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훈련하기엔 더없이 좋은 코스였을 것이다. 언덕이 많은 순환 도로의 길이가 14-15㎞에 이르러 하프마라톤 코스보다는 짧지만, 언덕을 감안하면 하프마라톤 코스에 버금가는 아주 좋은 코스로 소문이 나 있다.
계족산에는 백제 시대의 석축 산성인 계족산성이 있다. 금강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백제 시대의 토기 조각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문의와 청주로 가는 길목을 감시할 수 있고, 보은, 옥천, 대전, 공주에 이르는 웅진도로를 감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산성 내부에 군대를 주둔하기 위한 작은 못까지 많은 부분이 복원되어 명소가 되고 있다.
대전은 사방에 빙 둘러 산이 있어 서민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30-40분만 이동하면 근교의 산을 등산할 수 있는 살기 좋은 천혜의 땅이다. 계족산이라 불리는 이름의 연유에 대해 몇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 지형이 닭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계족산이라 불리었다는 말이 있다. 둘째, 지금의 송촌동 일대에 지네가 많아서 지네와 천적인 닭을 빌어 지네를 없애기 위한 일환으로 계족산이라 불리었다고도 한다. 셋째는 본래 봉황산이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낮춰 부르기 위해 닭의 발이란 뜻의 계족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전해진다. 계족산의 정상에 있는 정자 이름이 ‘봉황정’인 것을 보면 옛 이름이 봉황산이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산의 이름과 지역의 이름에서 큰 인재들이 나올 법한 것들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바꾸었던 일들이 어디 계족산뿐이겠는가. 만약에 일본인들의 불순한 생각으로 바뀌었다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잘못된 이름이 영구적으로 고착화되기 전에 하나씩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땅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은 양지바른 계족산 언저리에서 돋아난 쑥을 캐며 봄의 풍광에 취해 당초의 계획과 달리 계족산 순환 등산로는 홑잎나물이 피어날 즈음에 다시 걷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전 동부경찰서 담장 옆으로 쭉 피어 있는 풍성한 개나리를 보면서 봄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칠 줄 몰랐다. 마음에서 피어나던 봄볕을 타고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시집을 출간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이 봄에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온 것이다.
산에 오르기 전보다 낮 동안 따스한 햇볕을 받은 개나리가 더욱 흐드러진 모습으로 다가와 인상적이었다. 봄에 꽃이 피는 나무들은 꽃이 먼저 벙글고 꽃이 진 후 잎이 나중에 나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목련, 복숭아 등의 나무들은 겨울을 무사히 넘긴 환호성을 대신해 환희의 화려한 꽃들로 계절의 변화를 알려 준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바싹 마른 가지에 봄기운을 받아 그 연하디 연한 꽃봉오리들이 딱딱한 가지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신비롭다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부드러운 가지의 휨에 따라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며 어두웠던 마음도 활짝 열렸다. 꽃을 보면 누구나 밝아지는 신비한 힘, 조물주는 이 삭막한 세상을 밝혀 줄 사명을 꽃들에게 일임한 것 같다. 파릇파릇한 새싹들과 개나리의 노란 환호성을 듣고 내 몸에 있는 겨울의 기운을 단숨에 몰아낼 수 있었다. 내 몸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자연 치유의 힘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깊은 겨울잠에서 바야흐로 활동의 계절로 옮겨졌다. 봄기운을 맘껏 받은 힘에 의해 오랫동안 내게서 힘을 빼앗아 가던 허기증과 어지럼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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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엮으며
제1부 아침
•아침
•동향東向이라서 난들에게 미안하다
•오빠를 만나고
•주부들
•엄마
•형부가 암에 걸렸다
•벚꽃을 거실에 모시다
•아버지의 팔찌
•딸아이의 연기학원 등록
•부모님 산소
•격자무늬 그림자
•솔새
•역귀성逆歸省
•선생님
제2부 가을 낮을 서성이다
•상큼한 봄바람
•구름 속의 태양
•거북이걸음
•선사 유적지
•가을 낮을 서성이다
•영화 [타짜]를 보던 날
•매미 울음으로 여름의 기울기를 느끼다
•쌍춘년
•농수산 시장을 다녀오다
•보문산
•무릉도원
•세천유원지
•흑석리
제3부 계족산의 상춘
•전주
•계족산의 상춘
•밤을 타는 사람들
•단풍 계절
•첫 번째 문학 기행
•산사 체험―오대산 월정사
•경주 세미나
•송년음악회
•도솔산 내원사
•갑사
•감성사회의 도래
•되돌아본 문학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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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엮으며
일기장의 먼지를 털어내면 변색된 잉크의 기억들이 다소곳해진다.
지금 내 앞에 의젓하게 서 있는 누렇게 변해 가던 나의 소중한 시간들에게
흘러온 시간만큼 나아진 것이 보이는지 묻고 싶은 밤이다.
밤마다 머리맡에 두고 기록했던 마음 한 편앤,
기회가 온다면 한 권으로 묶겠다는 작은 욕심도 있었다.
내 삶의 단상들이 품을 떠나 모습을 드러내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이 책이 미지의 단 한 사람에게라도 미소를 짓게 한다면 더없는 기쁨이다.
2015년 9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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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벚나무 아래 누워보니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어떤 시인의 시구가 생각이 났다. 벚나무 아래 벚꽃의 꽃그늘에 누워보고 싶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벚꽃 아래 눕는 것도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거실에 살짝 발을 들여놓은 귀한 손님인 벚꽃 앞에 앉아 꽃의 아름다운 향기와 대화할 수 있는 이곳, 우리 거실, 그리고 오늘이 천국임을 믿기로 했다.
― 오유정, 분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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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유정 수필가∥
∙ 경기도 안성 출생
∙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편입학 졸업
∙ 충남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 2004년『시사사』를 통해 시 등단
∙ 시집으로『푸른 집에 머물다』가 있음
∙ 혜산 박두진문학작품상 수상
∙ 대전 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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