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때 정치가이자 군웅 이밀(李密, 582~619)
그의 본명은 고밀이며 백제계 사람으로 일찌기 중국왕조 후주에서 활동한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부인이 독고씨로서 수나라 황비족이었다.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면서 613년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조하여 태원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거의 대권을 잡는듯하였으나 천운이 따라주지 않아 그를 황제로 밀었던 당고종 이연에게 귀의하였다.
이때 그의 수하이자 명신 위징과 서세적(후에 이적)과 함께 당나라 개국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이연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장수 성언사에게 패하여 죽었다. 그는 38세를 일기로 하남성 려산 (려양현)에 묻혔다.
위징은 주군 이밀의 죽은후 이연에게 간청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하는데 발굴된 묘비명 내용에 한나라 창업의 비밀이 숨어있다.
曾祖弼,(後)周太師上柱國衛公.祖曜,周太保魏公.父寬,隋上柱國大將軍涼州總管蒲山郡公.
그의 증조부는 고필, 조부는 고요,부친은 고관인데 이연에게 사성받아 이씨로 바꾸었다.
묘비명에 아리송한 내용은 바로 이것들이다.
觀乎天造草昧之初,有聖經綸之始,原鹿逐而猶走,瞻烏飛而未定,必有異人間出,命世挺生,負問鼎之雄圖,郁拔山之壯氣,控禦英傑,..
이 내용은 한나라때 저작된 <초씨역림>에 - 사슴을 쫓다 얻지는 못했지만(逐鹿不得), 바닷가로 가서(去之海隅), 바람을 맞으며 술을 뿌리면서(臨風洒酒), 스스로 부여왕이 되다(自王扶餘) 내용을 따온듯하다.
한나라가 부여의 힘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맥과 연의 기병 5천이 유방을 도우러왔다'는 <한서>고조기 내용과 일치한다.
또한 다른 문구
始聞楚霸,終基漢王.群雄並起,莫恢王度.
처음에는 초패왕 항우가 권력을 잡는듯 하였으나 결국 유방을 한왕에 앉혔다.
野戰群龍,馳走原鹿.競窺周鼎,爭亡秦族.
진나라와 싸워 망하게 했다.
또한 그의 묘비명에는 그가 동하(東夏)와 관련있는 인물임을 쓰고있는데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에 왜 한나라가 부여왕에게 황족만 사용하는 옥갑을 지속적으로 공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2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