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책연습 / 박솔뫼 / 문학동네
박솔뫼의 작품은 처음이다. 이건 뭐지 뭐지 하면서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익숙하지 않은 전개, 접해보지 못한 문체가 나를 힘들게 하면서도 왠지 모를 호기심과 오기가 나에게 책을 계속 들게 한다. 남은 쪽의 분량이 얇아질수록 소설은 점점 익숙해진다.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거다.
82년 미문화원 사건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한다. 제목처럼 현재/과거/미래를 산책하는 모양이다. 산책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고 사람을 중심으로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 환경에서 일들이 벌어진다. 현재에서 미래를 이야기하고 과거를 끄집어낸다. 현재의 그 어떤 일도 과거와 무관하지 않듯 현재 벌어지는 일과 행동이 미래에 이루어질 것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82년 사건과 80년을 언급하면서도 무엇 하나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가 작가가 수상하다는 생각에 작가의 연혁을 살펴보았다. 나무위키 개요에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소설가.
1985 광주에서 태어났다.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하다. 드러내면 아프다. 비록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닐지라도 아픈 것은 아픈거다.
드러나지 않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을 산책하다 보면 무엇을 만날 수 있으며, 무엇을 만나야만 하는지, 우리는 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하고, 이해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이해한다.
이곳의 역사는 미문화원과 동일했다. 일제 수탈 기구를 만들고 군이 이어받은 곳이다. - 177~178
82년 부산 미문화원 건물은 일제 수탈기구로 사용되던 건물이었고 미군 보급창고로 쓰였던 건물도 동일했다는 것을 작가는 밝힌다. 미래에는 나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냥 그대로 지금처럼, 아니 과거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것이 주인공의 고민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고민은 이대로 나의 인생이 변함없으리라는 것 - 115
이것은 작가의 고민일까?
모두는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순간에 누구나 멋진 미래를 꿈꾸면서 순간을 메꾼다. 그러나 나의 순간이 나만의 순간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터. 수미는 그의 순간순간을 이룰 수 있게 과거에서 힘쓴 윤미 언니를 통해 늘 미래를 그려본다.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사람으로 각기 다른 순간과 국면을 가지고 각자에게만 생생한 순간들을 살아가는데 우연히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 - 13
시간의 흐름도 뒤죽박죽, 사건의 내용도 분명하게 전하지 않아, 뿌연 그림처럼 다가오지만 그 저편의 내용을 알기에 어떤 대목에서는 땀구멍이 솟아오르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정말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설이 흐리멍덩한 것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뿌옇게 주검과 아픔, 그리고 가슴앓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미래 산책이 즐거워지려면, 희망차려면 치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왜, 병원으로 가는 사람은 윤미여야 할까!
* * * * *
이 부분을 읽다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그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 91 [밥 딜런 평전] 79쪽을 읽다가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미래를 연습하는 훈련을 거치겠다는 것과 아주 다르지 않을 것 -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