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죠트 하브라카#2
(신 15:1–6)
"놓아 주시는 여호와"
오늘 본문에는 매우 특별한 명령이 나옵니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신15:1)
히브리어로 ‘면제’는 שְׁמִטָּה(쉐미타)입니다. ‘놓아주다, 내려놓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빚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쉐미니 아쩨렛을 앞둔 절기의 흐름 속에서 읽으면 더욱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초막에서 나온 뒤 무엇을 붙들고 살아갈 것인가
초막절 동안 우리는 초막에 머물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나를 지켜 주는 것은 내가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이시다.”
그런데 초막을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또다시 무언가를 움켜쥐기 시작합니다.
돈을 붙들고,
사람에게 받을 것을 붙들고,
상처를 붙들고,
내 권리를 붙듭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놓아 주라.”
초막절이 ‘여호와께서 공급하신다’를 배우는 절기라면, 쉐미타는 그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2. 놓을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빚을 면제하기 어려운 이유는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지?’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명령만 하시지 않고 약속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니” (신15:4)
즉, 놓아 줄 수 있는 믿음의 근거는 여호와의 공급입니다.
내 생명이 내가 움켜쥔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먹이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믿으면 손을 펼 수 있습니다.
초막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3. 여호와의 복은 나에게서 멈추지 않습니다
5절에는 중요한 조건이 나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언약의 삶입니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은 그 복을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15장은 곧이어 가난한 형제를 향하여 손을 움켜쥐지 말고 펼라고 가르칩니다(신 15:7–11).
4. 어쩌면 돈보다 더 놓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실제로 채무 면제에 관한 토라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직접적인 의미를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아직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과,
잊지 못하는 말 한마디, 억울함, 상처, 내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입으로는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의 장부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빚을 기록해 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쉐미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것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것인가?”
5, 오늘의 묵상
초막절 동안 우리는 연약한 초막 아래에서 여호와의 공급과 보호를 기억했습니다.
이제 초막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갈 때 그 믿음이 실제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먹이시기에 나눌 수 있고,
여호와께서 나를 지키시기에 내려놓을 수 있으며,
여호와께서 나의 몫이시기에 움켜쥐지 않아도 됩니다.
어쩌면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무엇을 더 붙잡는 것이 아니라 손을 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초막절에 배운 믿음을 일상으로 가져갑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공급자이시니, 나는 놓아 줄 수 있습니다.”
6. 기도
여호와여,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을 보게 하소서.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었던 것과 사람에게 받을 것을 마음에 기록하며 살아왔던 것을 돌아보게 하소서.
나를 먹이시고 지키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믿게 하시고, 주께 받은 은혜가 나에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소서.
초막에서 배운 믿음이 일상의 순종으로 이어지게 하시며, 움켜쥔 손을 펴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