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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권한
요한복음 5:16-24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의 행각에 38년 동안 누워 있던 병자를 고치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병자는 자기를 고쳐준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나사렛 예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가 너를 고쳐주었냐?”라고 물은 유대인들에게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대답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성전 안에서’ 만난 후에 그는 신속하게 유대인들에게 가서 “나를 고쳐준 분은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38년된 병자가 치유함을 받은 후에 그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을 어겼다고 따졌던 유대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겨냥하고 그가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판단하고 박해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요 5:16).
그러자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만나셨을 때 대답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우리는 창세기의 기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천지를 6일만에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창조 사역을 다 마무리하심으로 창조 사역에 관한 한 쉬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창조 후에 온 세상을 관리하고 보존하고 운영하시기 위해 전혀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죄로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시며 선한 자들에게 좋은 것을 공급하시는 일도 계속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런 의미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내 아버지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지만, 그분은 만물을 주관하고 관리하면서 창조하신 목적을 향하여 만물을 이끌어 가시는 일에 있어서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하도록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계속 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끝없는 섭리와 통치와 자비로운 사역으로 인해 모든 만물이 매일 필요한 것을 공급 받고 있으면 만물이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이 일을 멈추시고 손을 떼신다면 모든 만물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파괴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무너진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연결된 일로서 예수님은 그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 그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해를 뜨게 하시고 풀을 자라게 하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안식일에 사랑과 자비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안하고 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날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더욱 선한 일들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 중 가장 선한 일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우리의 마음과 삶을 온통 주께 의탁하고 순종하며 살기로 다짐하며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여 생명과 은혜를 충만하게 공급 받는 것이 주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은 사람의 활동을 멈추는 날이 아니라 주 중에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예배는 주의 날에 드려야 할 가장 마땅하고 고귀하고 거룩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십계명의 제4계명을 어겨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번에 나눠드린 [채플]의 <주의 날>을 보면, 안식일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안식일 계명은 사람이 존재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가장 분명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지켜야 하는 계명은 안식일 계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구약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안식일 또는 주일을 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을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이미 사라진 유대인의 제도”가 아닙니다. 그 날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과 부활로 이루어지면서 이제 구약의 안식일은 기독교 안식일인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즉, 율법에 속하던 안식일 제도가 메시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기쁨과 잔치의 주의 날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 시대의 우리는 주의 날을 우리의 안식일로 지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구원하여 주심으로 안식일 준행을 올바른 토대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하심으로 유대인들이 가르쳐 왔던 거짓되고 미신적인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주의 백성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에서 나오는 일과 생명과 관련된 피치 못할 일들,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일은 오히려 안식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인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며 장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하나님은 주의 날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못하도록 막는 율법주의적인 왜곡된 가르침보다는 안식일 자체를 전혀 지키지 않는데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사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는 믿음으로 정성스런 예물을 바치는 의무가 빠진 예배를 드리는 엉터리 신자들이 많고, 더 나아가 복음 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하는 참된 지식이 결핍된 무지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진정성에 있어서도 주를 향한 사랑도, 경외심도, 성실함도, 진실함도 너무나 없습니다. 우리 주님과 만나기로 약속된 날이 주의 날이고 그 날의 공예배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신자들마저 주일 성수는 삶의 우선 순위에 있어서 저 아래로 밀려나서 심심할 때나 할 일 없을 때에 주일 예배에 오는 정도니, 이러한 문제는 어쩌면 유대인들의 그릇된 안식일 개념보다 훨씬 더 악한 자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을 향해 그런 자세를 취한다면 주의 사랑과 은혜와 복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막 7:6-8)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하나님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하나님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주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6-37).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2).
결국,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유대인들의 외식적인 예배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문제입니다. 세속화된 예배, 우선 순위에 있어서 별 중요함이 없는 예배가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이는 지독한 실용주의 및 세속에 물든 마음에서 나오는 부실한 신앙 자세입니다.
잠언 14장 1절을 보니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미련한 사람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는 가장 귀한 의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안식일 계명을 어깁니다. 하지만 경건하고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죄라는 것을 알기에 온 마음을 다해 주일의 안식일을 지키고, 또한 그 날에 하늘 잔치에 참여하여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을 차고 넘치도록 받는 것입니다.
오! 기독교 신자들이여!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당부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처럼 그 날에 가장 소중한 예배를 중심으로 하여 선한 일을 하는 하루가 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그 날에 부부 간에 더욱 사랑하고 자녀들과 부모님들과 화목한 하루가 되게 하고, 성도들과 하늘의 교제를 나누기 바랍니다. 그 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예배 드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충성과 진실함과 감사와 사랑과 의무를 온전히 감당하기 바랍니다. 십계명에서 아예 제4계명을 없애 버린 이 시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신자가 되기 위해 더욱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소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4계명을 어기는 죄가 얼마나 우리에게 비참을 가져오는지 깨닫고 주일을 범하는 죄를 결코 짓지 않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참된 복을 얻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복 중에 최고의 복은 부패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닮아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장 귀한 복은 주의 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복입니다.
아무튼 우리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라고 하시며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언급하셨습니다. 이 표현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친 아들인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뜻은 유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아시고 더욱 분명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친 ‘아들’인 것을 알려주십니다.
[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모든사람으로아버지를공경하는것같이아들을공경하게하려하심이라아들을공경하지아니하는자는그를보내신아버지도공경하지아니하느니라
](요 5:19-23)
자, 그러면 여기서 ‘아들’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태의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삼위 하나님 안에서 독생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아들’입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실, 첫 사람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아담을 지으셨고 아담에게서 그의 자녀들과 후손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아버지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
36 …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눅 3:36-38)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또 다른 유일한 아들을 말합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의 친 아들로서 바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님입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성경은 나사렛 사람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친 아들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런데 그분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함으로 성육신하셔서 참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즉, 독생하신 하나님이 동정녀의 몸을 통해 사람으로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실, 나사렛에서 자라나시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구약에서 예언되어 오던 메시야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는데 그는 그 계시로 말미암아 그의 친척 형제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 1:31-34)
그리고 앞에서 첫째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보여준 누가복음 3장은 놀랍게도 그 족보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부터 시작합니다.
[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그는)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
31 그 위는 … 다윗이요
32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눅 3:11-28)
즉,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인류 대표자로 직접 지으신 사람이었지만, 두 번째 하나님의 아들은 새 인류의 대표로서 독생하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신 메시야이셨던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둘째 아담은 하나님 형상 그 자체이신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십니다. 그러나 아들은 인성에 있어서는 우리와 똑같되 죄는 없으십니다. 이에 아들과 관련한 많은 진술이 그의 인성에 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오는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과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친아들로 부른 것으로서 자신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된 메시야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에서만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1장 47절에서 나다나엘이 고백합니다.
[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47-49)
사도 요한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5-36).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4-36).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우리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3).
[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1-3)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31).
이처럼 이 땅에 계시며 사역하시던 나사렛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메시야가 되기 위해 참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유일한 친 아들로서 참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이 땅에 계시면서도 참으로 독생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실제로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의 유일하고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 18).
여기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칭호는 다름 아닌 독생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바로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사람이 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 즉 그리스도십니다. 이것이 성경 계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알려주시려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권한을 열거하여 알려주십니다.
첫째,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은 성삼위 하나님을 대표하는 아버지의 뜻과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야이시기에 완벽하게 그 사명을 이루셔야 합니다. 그 사명은 완전한 의를 이루신 후에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속량하시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포이운타)라고 하여 현재 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17절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과 연결되는데 아들은 아버지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는 어떤 일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들은 자기 멋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도하시는 일을 동참하여 일하십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뜻하신 바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시공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20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십니다.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인 관계는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무한한 사랑의 ‘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무한한 사랑으로 충만하시고 그 무한한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이신 성령을 통해 서로 사랑하십니다.
이 사랑은 끝이 없는 완전한 사랑이기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는 완전한 개방과 완전한 이해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완전히 아시며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 땅에서 이루십니다. 그 결과, 아버지가 무엇을 하시든 아들도 그렇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아들이 하는 일을 볼 때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이 누구인지 알수록 그의 영원하신 아버지 한 분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20절에서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보다’로 지칭된 “큰 일”은 38년 된 병자를 치유한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일을 ‘너희에게’ 보여주심으로 너희를 놀랍게 여기게 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보다 더 놀랍고 큰 일을 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큰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21절에서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살리신다’는 헬라어 원어는 (조오포이에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새 생명을 주어 살린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고린도후서 15장 45절을 보면, 십자가 속량을 치르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마지막 아담이 되신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똑 같은 단어가 요한복음 6장에서도 사용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바울 역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21).
이로 보건대, 살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받은 자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광의 부활체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동일한 이 단어 (조오포이에오)는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거듭난 사람의 몸을 일으켜 영광의 부활체를 주시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그러므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시는 일”은 먼저 영적으로 죽은 자를 거듭나게 하는 일이고, 또한 궁극적으로는 육체의 영광의 부활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을 시공간의 영역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세 전에 성삼위의 예정에 따라 이 땅에서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십니다. 이는 아들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예정하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으시고 시공간의 역사 속에서 죽은 상태에 있는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권한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이 땅에서 생명을 주는 자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치유하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시공간 영역에서 하나님의 일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중보자이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그리고 예수님 자신도 자아 의식 속에서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생을 주시는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 5:21).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죽음에서 일으켜 살리십니다. 살린다는 것은 성령으로 생명을 주신다는 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거듭나게 된 자들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반드시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의 부활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살린다”는 것은 24절부터 29절 사이에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새언약 시대의 신자들이 성령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는 것을 알려주고, 또한 그리스도는 새생명의 근원인 것을 알려주며, 새생명을 얻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영원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알려줍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며 그 영생은 주의 재림 때에 영광의 몸의 부활과 연합되면서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22절을 보니, 아들은 또 다른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는데 그것은 심판의 권한입니다. 심판은 천국과 지옥 심판이 있고, 또한 각 사람의 행위에 따른 심판이 있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으며, 지옥에서도 더 큰 고통을 받는 자가 있고 덜한 고통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들과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때문에 죄 사함을 받은 상태가 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 영생 얻는 의를 거저 얻게 되었기에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순간부터 이미 천국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값을 스스로 치러야 합니다. 그 죗값은 인간 스스로 영원히 갚을 수 없기에 결국 영원한 형벌 아래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심판은 우리 인간들이 죽는 즉시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주의 재림 때에 지옥에 있던 자들은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고 불못으로 떨어질 것이고, 천국에 있던 자들은 영원한 상급의 심판을 받고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받아 영원히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된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듯 아들을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이는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영원히 멈추는 날이 신속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이 진리가 너무나 중요하기에 우리 주님은 “진실로”를 두 번 말씀하시며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곧,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현세에서부터 영생을 소유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똑같이 선언하였습니다
[
13 그(하나님)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17)
그리고 주 예수께서 십자가 속량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상태가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처럼 그리스도는 지금도 주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여 거듭나게 하십니다. 성령과 교회를 통해 당장 주 예수께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교제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영생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주의 재림 때에 육체의 부활과 함께 새하늘과 새땅을 유업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다면 예수님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은 신구약 전체가 예수님을 알려주며 믿게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님을 바르게 알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욱 정확하고 바르고 깊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고 오직 그분 안에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윗의 뒤를 잇는 영원한 왕이지만 동시에 "다윗의 뿌리”이신 하나님이십니다(계 22:16).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하나님 나라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시고, 이 예배 가운데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을 마음 깊이 모시고 순종하고 높이고 따르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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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은 더 높아만 가고 바람은 부쩍 차가워지며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들에 가을 정취가 가득하네요.
계절의 작은 변화에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시면서 오늘도 아름답고 힘차게 파이팅 하시길 기원하며
웃는얼굴 넓은 마음으로 행복을 담고 사랑을 담아 웃음보 터지는 아름다운 하룻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