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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이 사용한 태극기 |
1883년 3월 6일 고종의 왕명에 의해 태극기가 한국의 국기로 제정되었다. 1875년 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을 일으킨 일본은 운요호에 일본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도 조선수비병이 포격을 가했다고 트집을 잡으며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려 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국기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일행이 일본 선박 메이지 마루[明治丸]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太極四卦)의 도안이 그려진 국기를 만들었다. 이듬해 3월 6일 고종은 태극기를 한국의 공식적인 국기로 제정했으나 해방 뒤까지 구체적인 제작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다. |
황금해안, 가나로 독립
1957. 3. 6
가나 |
1957년 3월 6일 황금해안 식민지가 가나라는 이름으로 독립해 영국연방의 자치령이 되었다. 15세기 초반 포르투갈인들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칸족·만데족·하우사족 등 토착 부족들이 살아가던 황금해안 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후 엘미나에 노예무역의 본거지가 세워졌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영국·덴마크·스웨덴·프로이센 사람들이 가세하면서 황금해안에는 수많은 교역시장이 형성되었다. 1874년 황금해안은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가 1957년 이 지역에 있었던 고대 제국의 이름을 본뜬 가나라는 국명으로 독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