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문장도 좀 엉망이고 비문도 많고 그런데도 종종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듣다보면 스스로 조금은 우쭐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냉정을 찾습니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그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거라고. 하여 제 경험에 비추어 글 쓰는 걸 좋아하게 된 계기는 좀 밝혀 모종의 오해(?)를 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우스운 이유에서입니다-.- 부끄럽지만 적은 이유는 글이란 모름지기 결국 솔직해야 된다는 나름의 확신이 들어서입니다. 그게 참 쓸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요. 이 글도 예전에 이창동 감독이 밀양 촬영하고 나서 제작 발표회 때 한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끼적인 글입니다. 비단 저만 위로가 되지 않았으리라 혼자 상상하며 올려봅니다. 글의 제목은 이창동이었습니다.
그는 영화감독이다.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 본선 심사위원이 됐다. 그는 사범대를 나와 국어교사를 했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가 쓴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소설을 대학시절 읽었다. 배다른 동생을 둔 형의 이야기였다. 동생은 명문대 출신의 운동권이었고 형은 그저 회사에 다니는 소시민. 동생을 숨겨주다가 동생에 대한 질시와 행여 자신의 아내와 눈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에 동생을 관계당국에 신고한다. 그리고 형은 아파트 단지가 형성된 녹천역 어딘가에 똥을 밟고 주저앉아 운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녹천은 전철 1호선이 1990년대 성북에서 창동으로 연결되면서 생긴 역이다. 유년시절 1호선을 타고 녹천을 거쳐 동두천 집으로 갔었다.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 손이 갔던 것은 ‘녹천역’을 알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가 고3때 호암아트홀에서 본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조연출을 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임철우 작가의 단편을 옮긴 영화였다. 6.25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는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부터 이창동은 영화를 본격적으로 준비했고 1997년 무렵 ‘초록물고기’로 데뷔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초록물고기’를 극찬했다.
아이러니하게 조선일보가 유일하게(?) 인터뷰를 못하는 감독이 이창동이다. 그의 데뷔작 ‘초록물고기’를 군대 후반기 교육을 받으면서 봤던 걸로 기억한다.(이 기억은 부정확하다) 하기야 ‘박하사탕’도 군대에서 봤다. 공군에 간 보람이 있었다.
이창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시시하다. 최근 어느 자리에서 이창동이 질의응답을 했다. 그때 영화를 왜 만드냐는 질문에 “예쁜 여배우랑 작업을 같이 할 수 있어서” 라는 답을 했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고자 하는 답이었겠지만 그날 이창동의 다른 어떤 대답보다 뇌리에 깊게 남았다.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였다.
돌이켜보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 대상이 아주 처음에는 엄마였기도 했고, 풋사랑을 느끼던 성당 누나였기도 했다. 사춘기에는 낭만적인 연예편지 한 통이면 이성교제가 바로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내 스스로와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예쁜 여배우와 작업하는 것이 좋아서 라고 대답한 한국영화 거장의 실없는 대답이 실망이었지만 실은 커다란 위로였다. 이창동도 저럴진데 하물며 나라고 별수 있겠냐? 그런 위로 말이다.
첫댓글 생각해보면 저도 '이성'은 아니지만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게 되면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네요. 월영님의 글은 '솔직, 담백'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립니다. 저도 아무 군더더기 없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