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행들의 개인 사정으로 혼자 산행을 하게 되었다. 성지곡 수원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귀가 아플 정도로 매미 우는 소리가 난다. 매미는 여름철에 노래하고 우니까 겨울의 흰 눈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대체로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는 지나친 욕심이 살짝 숨겨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자기가 살면서 얼마나 노력하였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며 지금에 가진 재물과 명예를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지를 헤아려 봐야 옳은데, 흔히 단순하게 주위와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만하면 병이 들어 죽는 사람을 주위에서 남의 일인 듯 보지 않는가. 옛 명언에 인재복중 부지복(人在福中 不知福)이란 명구가 있다. 이는 복이 있을 때는 그 복이 나에게 있음을 전혀 모르다가 불행이 닥쳐오면 그제야 지난 그때가 행복했었구나, 하고 간절히 느낀다는 뜻이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최면을 걸어 보자. ‘내 평생에 하루뿐인 오늘 나는 행복하다. 나는 신념과 용기와 열성이 있다. 나는 신난다.’ 하고 웃으면 뇌도 즐거워서 웃는다.
문득 하늘을 보니 편백나무 사이로 돌아가신 작은누나가 나를 보고 웃어 주는 것 같다. 나에게 눈물이 나도록 격려와 감동을 주신 고마운 작은누나다. 허나 생전에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죄스럽다. 그때 누나는 주위 사정이 호전되어 부유하게 잘살았다. 당뇨병을 알아서 급기야 투석도 하며 병원에 다녔다. 병문안도 자주 못 가서 지금도 후회된다.
나를 가졌을 때 태몽이 어머니가 치마폭에 해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40살 나이에 늦둥이로 낳으니 집안에 경사라기보다도 가난한 집안에 근심이 되었을 것이다. 막둥이로 귀염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하나 어머니 젖이 적어서 애를 먹고 5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한다. 내가 젖먹이 시절의 1950년 겨울 저녁 큰누나가 18살 때 감만동 본가에서 일어난 큰 사건이다. 군부대 물건을 훔친 도독이 우리 집에 있다고 추정한 미군들이 무장한 채 집을 둘러싸고 영어로 고함을 지르고 수색하려고 했다. 남자들은 모두 일하러 나가고 아무도 영어로 통역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인물도 좋고 용기도 있는 큰누나가 자청하고 나서서 이웃에 통역할 수 있는 분을 모셔 오고자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보자기로 덮어쓰고 대문을 막 나가려 하자 도망을 의심한 미군이 공포를 쏘았다. 총소리와 미군들의 군화 소리와 영어로 내지르는 고함에 큰누나는 놀라서 말도 못 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실성한 사람처럼 약간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게 되었다.
부모님이 천신만고 큰누나를 치료하고자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치료하여 시집을 보냈지만, 큰누나는 시집살이 힘들고 고되어서 이따금 얼굴에 멍이 들어서 친정집으로 돌아와서 울고 있는 걸 보았다고 한다. 작은누나는 가난한 집안에 오빠들과 동생들의 틈새에서 마치 어머니처럼 애를 쓰고 수고를 하였다. 설상가상 언니 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했다. 집안일과 농사일 등을 도우니 정말 죽을 고생을 하였다. 작은누나의 인정 어린 도움을 받으면서 부모님에게 못 해본 응석도 부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큰누나 집에 가면 눈물이 나고, 작은누나 집에 갔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했고 조카들도 좋아하고 누나가 엄마 같아서 밥맛이 좋았다. 그날은 장마 가을비가 오는 날이다. 비도 피하고 허기를 면하려고 작은누나 집으로 향했다. 낙숫물이 떨어지는 슬레이트 지붕의 처마 밑으로 삐거덕거리는 구멍가게 문을 힘겹게 열려고 하자 누님이 먼저 보고 잘 열리지 않는 가게 문을 힘겹게 밀어 열었다. 반갑게 맞이하는 누나는 비에 젖은 나를 보자 눈가에 눈물을 보였다. 조그만 방으로 나를 안내하고 옷을 갈아입게 하고 구들목에 앉혔다. 조카들이 등에 매달리며 나에게 엉겨 붙어 오면 긴장이 가고 온몸이 따뜻해졌다. 한번은 누나가 혼자 자치하는 나를 찾아와서 부족하고 우둔한 막둥이 동생에게 책, 의복, 이불을 사다 주었다. 능력이 부족한 나는 분투 중에 죽더라도 힘껏 노력해 보려고 했다. 진정으로 지혜 있는 자는 남이 하는 말을 광범위하게 듣고 나서 보다 훌륭한 지혜를 받아들여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혼자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시대에 주위에 훌륭한 모델이나 진정한 자신의 멘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신뢰의 바탕 위에 가치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장기적 성공은 신뢰와 상호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괜찮은 사람들과의 친근하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로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공유할 사람들과 사귀어 나가면서 하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그리운 누나 말처럼 늘 반성하고 증진해야 하겠다. 인간은 교류하는 사람들만큼 성장하여 간다고 강조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