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22/0824]또 ‘일’을 저지른 전라고6회
그것 참, 연례행사처럼 또 ‘일’을 저지른, 강인하고 단단하고 멋진, 대단하고 지독한 한 팀이 있었으니, 이 폭염특보에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다섯 명의 전사戰士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름을 확실히 밝히자. 단장은 빅 마우스로 이미 유명세를 탄 윤중현, 단원으로는 최근 5년 동안 명산 80여개를 섭렵한 달우 박치원- 안수당 구영례부부, 당뇨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면서도 술이라면 어지간히 뻗치는 고천 민장식과 그들을 적극 환영하며 출정식 전날밤 고향집에서 가든파티를 성대하게 벌여준 소천 형관우.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소천의 형수가 고마울 따름이다. 작년에는 이보다 몇 배 더 거창하게, 온동네 소문나게 40여명이 모여 한밤 내내 민폐를 끼쳤거늘.
세상에나, 내일 새벽 5시에 큰산, 큰봉우리를 오른다는 친구들이 11시까지 술판을 벌이다니, ‘죽으려면 공주마마 젖가슴을 못만지겠느냐’는 농지꺼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마을(춘향전에도 나오는 구화뜰마을) 소천의 고향집 마당에는 차일이 쳐졌겠다. 토요일 오후 모인 면면을 보자. 순천의 잉꼬부부 우당 김택수-소선당 정수미 형수, 최근 결성하여 깃발을 날리고 있는 ‘벗길맛’(벗따라 길따라 맛따라의 준말. 전라고 6회 최대의 한량패 모임)의 차주車主인 지암 이병운과 내일모레 40년 교직생활을 마감하는 ‘연극인 교장’ 상암 정영우, 운봉의 우직한 고랭지 농부 벽곡 장상수와 아양의 포도농장 심부름꾼인 지리산 산사나이 고룡 맹치덕, 수십년간 인술仁術을 펼치는 마취 전문의ㅇ이자 남원병원 원장 남악 박종관, 금실 좋기로 유명한 가장 이상형인 귀농부부 근봉 이종대부부, 오수 고향으로 40년만에 귀향한 필자인 우천부부. 이러니 이날 오후 5시에 모인 인간들만 해도 16명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여름 손님은 마마보다 더 무섭다는데, 내일 산행을 앞두고 오리고기와 소괴기에 각종 술이라니, 묵은지와 파김치, 꽈리고추볶음, 뭐 하나 안맛나는 게 없다. 백미白眉와 백미百味는 100% 자연산 추어탕. 소천이 직접 파서 만든 방죽(작은 웅덩이)에서 잡은 미꾸라지로 이 집의 쉐프가 끓인 추어탕은 남원추어탕은 저리 가라였다. 이백막걸리와 남원 황진이, 왕년의 두꺼비 진로쐬주와 복분자가 몇 병이나 날아다녔을까? 그러고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배를 채우고 산청의 중산리로 향했다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오전내내 조마조마하는데, 11시쯤 날아온 사진 한 장. 천왕봉 정상 300m를 앞둔 안내판에서 찍은 사진. 야, 이녀석들 보게. 끝내 해냈구나. 후회가 된다. 체력 시험 겸 나도 갈 걸, 민폐를 염려해 동참하지 못한 게 못내 후회가 된다. 해발 1905m 천황봉을 밟는 것은 ‘6학년’중턱의 우리에겐 로망의 하나인 것을. 지난해에도 6명이 일을 내더니, 한 친구는 정상에 핸드폰을 놓고 와 내려오다 다시 올라갔다던가. 또 한 친구는 운명적으로 그곳에서 여친을 만났다던가. 얘기는 언제나 어디서나 만발하는 게 우리들의 모임이다. 그런 친구들이 작년에 이어 또 천왕봉을 밟았다. 누가 뭐래도 대다나닷!
일요일 오후 6시 반. 등반성공 축하 뒤풀이가 오수면 소재지, 소천의 단골집에서 거행됐다. 어제 오후에 이어 또 모였다. 또 보아도 반가운 얼굴들. 흐흐, 모두 9명. 철각鐵脚 칭찬에 이어 등반하면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캐기에 바빴다. 솔직히 말해라! 6시간 정도 걸으면서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냐? 말끔하고 유쾌한 저녁이다. 뭔가를 해치우고, 달성한, 개선장군같이 으쓱으쓱, 뽐내는 친구들의 낯빛이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위하여 문 좀 열어달라는 소천의 몽니에 식당 주인장이 할 수 없이 응했다는데, 메뉴는 우족탕. 남원 병원장이 달려와 쏴버리는 바람에 원장대팀이 무색하다. 카톡 단톡방에 올린 단체사진을 보시라. 참 주긴당!
이번에는 진짜로 마음놓고 ‘2차’다. 4km쯤 떨어진 필자의 집 사랑방에 멤버가 고스란히 모였겠닷! ‘점백 고스톱’으로 날을 새자고 했는데, 다음날 출근하는 친구도 있어, 게임은 접기로 하고, 졸지에 노래판이 벌어졌다. 소천의 ‘사랑가’가 구성지다. 판소리는 역시 전라도다. 멋있다. 최소한 판소리 한 가락쯤 어디서든 부를 줄 알아야 전라도맨이지 않겠는가. 그것 배우느라 고생깨나 했겠다. 음치인 필자의 가창歌唱을 부추기는 달우 덕분에 필자도 오랜만에 이 시대 가객인 정태춘과 장사익 노래 몇 곡을 불러 박수를 받다. 그들이 잘 모르거나 처음 들어보는 노래이기에 음치인 줄을 모른다. 희한한 경연대회에 뮤지션 윤총장이 입을 다물 정도였으니. 그렇게 팔월의 밤이 깊어갔다. 이 아니, 흐뭇하고 아름다운 밤이 아니랴?
대다난 친구들, 입도 쉬임이 없다. 이런 ‘재미’는 억지로 만든다해도 어려운 일인 것을. 나도 근력을 길러 내년에는, 아니 올 가을 끝무렵에라도 꼭 한번 더 천왕봉을 오르리라, 다짐을 했다. 벽곡, 근봉, 고룡, 그때 우리 같이 가자잉.
첫댓글 대단하다 우리 친구들
못올라가도 친구들 얼굴보러 가고싶었는데
꼭 참석하려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서울에서
전주로 피난온 손주들 보느라
못갔네
이렇게 친구의 세세한 소식에 참석한것보다 마음이 더 들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