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1-12-24 16:56 조회 : 1828 |
| | | 조물주 작품의 미비점 하나
임병식
아침에 동네마트를 다녀오는데 샛노란 은행잎이 많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걸 발견하니 반사적으로 눈이 옆에 서있는 나무에게로 옮겨졌다. 얼핏 보아도 은행나무인데, 그 나무는 엊그제만 해도 화려하리만큼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나목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보니 새삼 자연의 변화속도가 이렇게 빠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진 낙엽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어느 시인은 이렇듯 흩뿌려진 것을 두고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같다’고 했지만 마치 그것처럼 휩쓸리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 묘하게 기분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나는 걷다말고 발부리에 걸린 이파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렇잖아도 이즘 나뭇잎의 형상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집어든 이파리는 작은 부채모양으로 앙증맞기 짝이 없다. 장롱의 백동장식을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것을 자세히 보니 가운데 부분이 마치 여인의 스커트처럼 갈라져있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하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단지 추측하기로 그런 방법으로 진화한 게 낫겠다 싶어서 그리 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은행나무는 원시의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2억 년 전인 고생대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빙하기 때는 멸종위기를 겪었으나 끈질기게 살아남았단다. 그러면서도 형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류의 출현보다 시원이 훨씬 앞선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그 놀라운 생존능력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막연하기는 하지만 화재에 강한 특성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불은 예나지금이나 자연발화로 발생하기도 하는데 은행나무는 그때마다 평소 수피에 물기를 저장했다가 분사시켜서 지기 몸을 보호하는 탁월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에 쥐어든 잎자루를 살펴보니 이것은 여느 나뭇잎처럼 주맥에서 측맥이 뻗어 있지 않고 측맥이 곧바로 잎자루로 이어져서 잘게 갈라져 있다. 이를 보니 생긴 형태가 넓적하기는 하지만 침엽수로 분류된 까닭을 알만하다. 전체적인 모양은 부채꼴이고 잎자루는 긴 편이다. 이렇게 생긴 건 아마도 바람이 불어도 적당히 흔들려서 꺾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나무들의 이파리 모양은 제각각이다. 창끝 같이 뾰족한 게 있는가 하면 손부채를 닮은 것도 있고, 갸름한 달걀모양의 것도 있다. 돋아난 모양도 어떤 건 어긋나 있는가 하면, 마주보는 것도 있고 돌려서 난 것도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그 어떤 것도 되바라지지 않고 오긋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위에서 떨어지는 빗물이나 눈을 맞아도 꺾이지 않으면서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기위한 지혜가 아닐까. 그리고 거친 뒷면보다 앞면이 반질반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 한편, 잎자루를 보면 흐르는 빗물이 한꺼번에 넘치지 않고 흐르면서도 적당히 그 물기를 몸통과 뿌리로 흘러들게 하는 것도 같다.
이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조금씩 진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는 물론 조물주의 조화의 손길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데, 이런 놀라운 것들을 보면서 나는 문득 아쉬움을 느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흉악범을 잡는데 어떤 비책을 마련해 둘만도 한데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혼탁해지니 흉악범이 날뛰고 있는데 해결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장치가 없는 그 미비점이 매우 아쉽게 생각된다.
만약에 나무 잎맥의 진화와 그 기능처럼 상대방을 바라 볼 때면 광원이 있는 상태에서 눈동자 속에 눈부처의 영상이 맺힐 때처럼 그것이 오래토록 유지가 된다면 유용할 것이 아닌가. 한데 그게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에 최후에 본 눈부처가 남았다면 범인을 금방 붙잡을 수 있을게 아닌가.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껏 미궁에 빠져있는 엽기적인 미제 살인사건도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고 , 증거자료로서도 그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한편 생각해 보면 그렇게 허술하게 해둔 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정밀한 장치를 해두기 이전에, 인간 스스로에게 숙제로 남겨놓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인간만큼 절대 강자가 없음으로 잡다한 문제의 해결도 인간들이 스스로 알아서 풀어나가라는 개연성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뭇잎의 기하학적 형상과 적응, 그 활용의 지혜를 보면서 새삼스레 조물주가 만들어 놓지 못한 미비점에 아쉬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보다 깊은 뜻, 또 다른 과제도 동시에 주지 않았을까 하는 별난 생각도 해보게 된다. (2011) |
| 한동희 | 11-12-24 18:42 | | 나무잎 한장에 담긴 사색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습니다. 임병식 선생님, 새해에는 더욱더 좋은 작품으로 감동주시고, 사모님 건강도 회볻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
| | 임병식 | 11-12-24 22:58 | | 오랜만에 글 한편 올렸습니다. 한선생님을 해를 넘기지 않고 뵙기를 바랐으나 기회가 닫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한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 |
| | 일만성철용 | 11-12-24 21:26 | | 나무가 잎을 떨구고 겨울을 견디는 것을 나력(裸力)이라 하더군요. 식물이 잎에 젖지 않고 이슬을 맞는 것은 모든 잎에 가는 털이 있어 그렇다고 하구요. 이 모두가 신의 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벌견한 발명품 등이 동식물의 신비로운 세계에서 따왔다구도 하구요. 영상을 남기지 않는 것은 흉악범에게는 신의 은총이겠네요. | |
| | 임병식 | 11-12-24 23:03 | | 저는 선생님의 전설적인 산행과 그곳의 유적을 더듬는 발품의 행보에 늘 탄복합니다. 새해에도 잘 건강 유지하셔서 아름다운 국토의 기운과 향기를 많이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늘 든든합니다. | |
| | 박원명화 | 11-12-24 23:41 | | 선생님의 감성의 작품 읽다보니 가을의 상념에 빠져 봅니다. 나목의 용기가 삶의 교훈이고 지혜인 것 같습니다. 이젠 한 해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샣 소망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 |
| | 임병식 | 11-12-25 07:19 | | 작가회 살림을 챙기고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은줄 압니다. 모임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숨어서 들어나지 않게 봉사하는 분들의 노고가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새헤에는 더욱 기운을 얻으셔서 왕성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 |
| | 임재문 | 11-12-25 14:37 | | 임병식 선생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배우기는 은행나무는 잎이 넓기는 해도 침엽수에 속한다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표현할 만큼 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제 고향에서 요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꿈에 은행나무의 은행잎이 온통 바람에 떨어져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렇게 되었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욱 더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소원성취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병식 | 11-12-25 18:06 | |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임선생님 잘 계신지요.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
| | 이진화 | 11-12-25 23:30 | | 임병식 선생님, 나뭇잎 한 장을 통해 시작된 사유로 차근차근 엮어간 글 유심히 읽었습니다. 불가사의한 자연 현상를 보면서 조물주의 섭리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의 눈이기에 미비점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으며 그 또한 특별한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한 해 즐겁게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필하시길 빕니다. ^^ | |
| | 임병식 | 11-12-26 06:39 | | 나무나 짐승을 보면서 생긴 구조와 기능에 탄복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풍기는 냄새까지도 그러한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쉽게 생각한 것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황상 보아도 남편의 소행이 분명한데, 결정적인 증거나 나오지 않아 풀려나고 말았지요. 그때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에 눈동자에 어린 눈부처가 오래만 남이 있었더라도 범인을 잡고 확정지을 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요. 그걸 떠올리면서 써보았습니다. 한해 정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건안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
| | 정진철 | 11-12-26 01:19 | | 역시 임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저도 심오한 경지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아 참 저번에 보내 주신 그리움 아직도 읽고 있는중입니다 한작품한작품마다 혼불이 들어있는 좋은 작품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임병식 | 11-12-26 06:43 | | 정진철 선생님 반갑습니다. 잘 계시는지요. 제게 카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시간나시면 다음으로 들어오셔서 '임병식의 수필세상'을 한번 쳐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도 뵐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 잘 돌보시고 새해에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 | 임병문 | 11-12-29 10:08 | | 겨울 나목에서 무심히 떨어지는 한닢 나무잎을 관조하시는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깊은 사유를 느낍니다. 그것은 아마도 조물주가 내린 온갖 것의 역사성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만물의 흥망과 성쇠, 그것이 생각납니다. 선생님 내외분 두루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
| | 임병식 | 11-12-29 13:35 | | 임병문선생님 반갑습니다. 세상이 각박해 지니 흉악범이 날뛰는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아 그렇게만 해놓았다면 잡히지 않는 범인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
| | 강승택 | 11-12-29 22:59 | | 발부리에 걸린 이파리 하나에도 무심치 않은 선생님의 관조가 부럽습니다. 한동안 뜸하셔서 아쉬웠는데 선생님의 방문으로 인해 작가회 방이 한결 생기를 더하는 느낌입니다. 새 해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이 모두 결실을 맺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 |
| | 임병식 | 11-12-30 05:59 | | 강승택선생님 반갑습니다. 카페를 만들어 관리하다보니 아무래도 뜸해 진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새해 소마하시는 일 이루시는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 | |
| | 박영자 | 12-01-05 05:43 | | 임병식선생님, 섬세한 감성으로 그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은행나무가 화재에 스스로 적응해왔다는 것은 처음 듣는 상식이네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기대합니다. | |
| | 임병식 | 12-01-18 09:09 | | 수첩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드리니 결번으로 나오더군요. 잘 계시는지요? 선생님도 해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 |
| | 김자인 | 12-01-18 18:11 | | 노란 은행잎 한장에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댓글이 늦었습니다. | |
| | 임병식 | 12-01-19 20:51 | | 그때 주어온 은행잎이 말라서 만지면 바스러지는군요.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최복희 | 12-01-20 18:48 | | 컴이 자주 고장나 선생님 글을 읽고도 제때 답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늘 좋은 글만 쓰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사유가 깊지 못한 저는 지금도 선생님 책을 곁에 두고 있답니다. 요즘은 동적인 일을 하다보니 더욱 그러네요. 작은 것에서 시작해 깊고 넓게 풀어가시는 창작의 힘이 부럽습니다. | |
| | 임병식 | 12-02-07 18:14 | | 댓글 고맙습니다. 날씨가 고르지 않아 방에만 들어박혀 삽니다. 열심히 쓰고 계신줄로 압니다. 새해 문운이 더욱 활짝 펴시지시길 빕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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