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 없는 장사
따르릉~ 따르릉~
" 어~ 난디,
어이 ! 고구마를 이번 목요일날 캘랑게 좀 팔라조이 이~
아이구~ 내가 왜 안죽나 몰러
내가 어서 죽어야 동상한테 이런 애 안믹일 틴디
이래 안죽으니 어짜면 쓰까이~ "
또 한바탕 넉두리를 늘어놓는다.
무얼 팔아달라고 부탁을 할 때마다
늘 하시는 소리이다.
벌써 10년도 훨씬 넘게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라도 우리 아줌마의 전화이다.
엣날 아줌마와 처음 만날을대만 해도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 였었는데
지금은 팔순중반의 꼬부랑 할머니가 된지 오래고
온몸이 아파 죽겠다면서도
혼자서 여전히 각종 농사를 지으며
간간이 품앗이로 이웃일까지 하시며 사시는
독거노인이다.
봄부터 시작해서
산에서 꺽은 고사리에, 복분자에,
가을이 들어서면 참깨,들깨 농사에다가
수수, 팥, 율무를 비롯해서 각종 잡곡들,
그리고 고구마를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이 한 해에 나에게 팔아달라는 품목들이다.
대농, 중농도 아니고
팔순 노인네 힘으로 겨우 지을 수 있는 만큼만 가짓껏 짓는 농사라
농협수매도 힘들고 팔 곳이 마땅 잖으니
아는 곳도 , 또 애써 줄 자식도 하나 없는 홀홀단신 외로운 처지라
그나마 팔아달라고 떼를 쓸 곳이 달랑 나 밖에 없단다.
그러니 철마다 죽는소리를 하며
" 팔아줘 봐이~~ 이이~ " 를 연발을 하는 전화가 오니
내가 솔바서 살 수가 없어,
죽으나 사나 감당을 하게 될 수 밖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인연인지?
전생에 내가
울 아줌마에게 신세를 많이진게 분명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이런 우리 인연은
아주 오래전 내가 한창 일을 할 때
파출부협회 소개로 아줌마가 우리집에 오게 된 후
근 10여년을 우리집 살림을 도와주며 살다가
일을 그만 두고 난 후
노후엔 일가 친척이라도 있는
고향 전라도 진안으로 내려가 살겠다며 낙향하여
지금은 고향인 마이산 아래 작은동네에 빈집 하나 얻어서
혼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어느날인가 전화로 뜬검없이
"어이~ 선상님!
나 이제부터 선상님 그만 두고 "동상"이라 부를란게
날 보고는"성" 이라 불러 어이~ 이이~"
하며 의지를 해오니
얼떨결에 호적에 없는 언니가 한명 더 생긴 셈이지 ㅎㅎ
이렇게 맺은 인연이
끈질기게 지금껏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으니
생각해 보면 어쩌다 한번 맺은 인연이지만
그래도 전생의 끈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
올해도 지난 10월 중순 어느날,
또 어김없이 고구마를 팔아달라는 전화가 연속으로 왔고
난 또 큰 숙제를 떠안고
팔자에도 없는 고구마장사를 시작해야만 했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해 온 건데도
올핸 왜 더 하기가 싫어지는지
이젠 나도 늙어 팔 능력도 줄고
세상도 어수선하고 주위 모두들도 나이가 드니 먹세도 줄고
먹을 자식들도 곁에 없는데
고구마 사라고 부탁을 할려니 부담을 주는일이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정말 말을 꺼내기가 싫었었다.
친한사람이 팔아달레니
한 두 해는 인사로라도 사주었지만
사실 요즘 시장 나가면 흔한게 고구마인데
사먹고 싶으면 모양도 이뿌고 크기도 마치맞은거
그때그때 골라서 입맛데로 조금씩 사먹을 수 있는데
뭐하러 모양도 크기도 들숙날숙한 할매표 고구마를
보관하기도 힘든 판에
박스채 사놓고 먹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라는 말이 쉽게 나오질않아 며칠을 뜸을 들이다가
또 노인네 전화를 받고나서야
그때사 겨우
만만하고 흉 안되는 자매들에게
제일 먼저 전화해서 강제로(?)떠 맡기고는
조카 질녀들 카톡방과 친구들 카톡방에 올렸더니
바로 카톡카톡~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다.
일단은 불쌍한 노인네 도우는 거라는 걸 아니까 ....
사실은 아줌마한테는 미리
올해는 많이 팔기가 힘들것 같으니 기대하지 말고
다른 판로도 좀 알아보라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목빼고 기다릴 노인네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마음이 편칠않아서
또 이 군데 저 군데 전화를 돌리게 되니
내가 이게 무슨 팔자인지.....
작년 까지는 거의 매년 3~40박스 넘게 늘 팔아줬는데
올핸 그 숫자까지는 도저히 내 능력부족이라
그래도 매년 이렇게 하다보니 고마운 것이
이런 고충을 잘 헤아리는 친구가 있어
그 긴 세월 동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기일처럼 팔 걷어부치고
본인은 물론 지인들까지 끌여들어 팔아주니
올 해도 작년에 이어
혼자서 무려 열박스나 파는 기염을 토하며 내게 큰 힘을 주니
백지장도 맛들면 낫다는데
하물며 그 보다 몇 만배 더 무거운 고구마 30여 박스를
혼자서 어찌다 들겠노
고맙고 감사하고 감동이 여울져 오니
그 바람에 난 또 나를 한번 더 돌아보며 반성도 하게 되더라
요즘
점점 인정이 메말라가는 각박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친구가 있는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노인네인다가
요즘 시골엔 건장한 젊은이들도 없어
주문받은 고구마를 부칠래도
택배사무실 까지 가져 가는것도 쉬운일이 아니라
매번 동네 목사님이
몇차례 실어다 나르며 애를 썼다기에
팔아주는 건 권사님이 단단히 한몫을 했다고 했더니만
고구마 할매 왈~
"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내가 겁나게 불쌍했던 게비여
이렇게 목사님, 권사님이 돕게 하시는거 보면 ,
근데, 왜 나를 데려가시지는 않나 몰러~이 ~ "
하시길래 내가 그랬어.
" 저 할마씨 하늘나라에 데려오면
여기 와서도
고구마 농사 지어 팔아달라고 조를까바
귀찮아서 안데려 가는 모양이네 ㅎㅎㅎ "
했더니만 죽겠다고 웃는다.
이렇게 또 한 해의 나의 임무가 끝났다.
머리가 가뿐, 답답했던 가슴이 뻥~뚫려서 후~련하다.
이게 모두
나의 가장 큰 숙제를 같이 풀어준 친구들 덕분이라~
하지만 역시 장사는 참~ 힘든일이여
내년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할매 살아계시고 나, 살아있슴
또 이렇게 팔자에 없는 장사를 해야되지 않을까 싶네.
그때 기억들 해 주시게
고구마는 마이산밑 할매표 고구마로~ ㅎㅎㅎ
숙제를 끝내고 속 시원해진 친구가
첫댓글 나라를 구하는 일을 하기엔 능력이 없고 사회에 공헌할 그릇도 못되고 ~
내 가까이에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내 형편에 맞게 도와는 주고 싶고 그러면 맘이 편하고 좋아
할매표 고구마를 사는 사람들에게 상품가치 따지지 말고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짓는 분 돕는 마음으로 사라고 미리 말해서 다 알고 사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기에 가능한거지
그 친구들이 부탁할 때 되도록이면 들어 주고~
이렇게 오가는 속에 정도 쌓이고 그 정 때문에 행복하고~
네가 할 수 있는 선행을 제공하는 그 할머니 고맙게 생각해 ㅋㅋ
사겠다는 카톡이 올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쏙쏙 올라와서 받는 기쁨을 생각하면 나도 그 할머니가 고마워!
짝 짝 짝 ~~ 맞는 소리여
올해도 그대가 나의 큰숙제를 거들어 줘서 할매의 올겨울도 따뜻할거라
허리 다리 성한데 없이
유모차 지탱 하며 흙바닥에 주저앉아
지은 농사지만 그게 할매의 목숨줄이라
그래도 언제나 전화 목소린 명랑하게
이렇게 도와주는이 있어 감사하며
사신다고,,,성권사님께 많이 고마와하고
있다고 기도할 줄 몰라도
꼭 유념해서 기도 히시겠다고 전하리야
다 평소에 잘 한 니 덕분이긴 하지만
도와준 너희 친구들께
두 노친네가 진심으로 고마와 한다고
전해 난 시장에 고구마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할매표 고구마 팔 생각에
사먹자도 않고 고민하느라
가슴이 답답했는데
다 하고 나면 휴~~하고 맘 놓고
고구마를 찾게되여 ㅋㅋ
고구마 알레르기 ㅋㅋ
감사함이 절로 나오지 고마워^^
이글 두번째인지 세번째인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낯익은 글이네,
이 할마씨 나도 기억을 하니까,
우리 향수기가 남을 돕는 일이니까,
이리도 열심히 도와주지,
보험같은
나를 위한 외판이면
절대로 이런걸 할 사람이 아닌데,
남을 돕는 일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어찌할꼬,
더더구나 이럴 때마다 내 일인양 팔걷어 부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도 한두 사람도 아니고....
이 할매야 나하고 인연이 근 30년이고
내가 할매 장사 해준지가
10년도 훌쩍 넘었으니 이 할매 존재를
들음직도 했겠지만
낯익은 글까지야 ????
그것도 두세번까지,,,
했던소리 또 한 적은 있어도
올린사연 또 올린적은 아직까진 없다네
더 늙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정신까지 가면
카페 출입도 못하게 되지않을까?
아직까진 정신말짱하고
기억력도 쓸만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