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을 때는 못 잡아먹어 하다가 죽은 후에야 칭찬 일색 !!
“사후칭미(死後稱美)”이란 고사(故事)가 있다. 살아있을때는 미워하다가 죽은 후에야 칭찬 한다는 말이다.
윤봉구(尹鳳九)는 조선 영조(英祖)때 벼슬이 판서(判書)까지 했다. 윤봉구(尹鳳九)가 “충현서원(忠賢書院)”이란 시(試)에서 공주(公州) 충현서원에 배향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절의(節義)를 아래 시(詩)로 기렸다. ※충현서원(忠賢書院)-한국의 전통 서원이다. 충현(忠賢)은 충성스럽고 현명한 사람을 의미한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이다.
※조헌(趙憲)-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다. 의병장. 임진왜란 때 충남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충현서원(忠賢書院) 重峯嵂嵂高-중봉(重峯)은 아득히 높은 사람이었다. 所學元正直-배운 바가 높고 바르고 정직하였다. 斯文大是非-학문에 대한 시비(是非)가 크게 있을 적에 一毫無屈曲-틀린 일에는 조금도 굽히는 법이 없었다. 憂時慷慨說-너무 대쪽같이 곧아 오히려 근심하였는데 反被妖言斥-중봉(重峯)의 말을 요망하다며 따돌림을 당했다. 義結七百人-의리로 똘똘 뭉친 7백의 의사(義士) 樹立終卓卓-그들이 세운 발자취 세상에 우뚝하였다. 眞同虎皮詩-참으로 호랑이 가죽 시(詩)와 같으니 死後方嘖嘖-죽은 뒤에서야 칭찬하고 혀를 차네
호피(虎皮)의 시(詩)란 조선시대 대학자(大學者)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우음(偶吟)”이란 시(詩)에 호피(虎皮) 내용이 있다.
※조식(曺植)-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대학자(學者)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과 학문적(學問的) 라이벌이었다 좌퇴계(左退溪) 우남명(右南冥)으로 이름 불리었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임금이 불러도 평생 벼슬을 안 하면서 후학(後學)을 길렀다. 퇴계선생을 야단친 것으로 유명하다
호피(虎皮) 내용 시는 이렇다. 人之愛正士-사람들이 바른 선비 아끼는 것이 好虎皮相似-호랑이 가죽 좋아함과 같구나 生前欲殺之-살았을 때는 호랑이를 못 죽여 안달하다가 死後方稱美-죽은 뒤에 비로소 호랑이 가죽이 좋다고 칭찬을 하네
살아 바른말 할 때는 못 잡아먹어 난리더니, 죽은 뒤에 그제야 그는 참으로 훌륭한 선비였구나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위선칭찬(僞善稱讚) 이다. 지금 우리정치인들이 그렇다 나쁜 것을 본을 잘 보는 유전적(遺傳的)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봉구(尹鳳九)는 중봉(重峯)이 일찍이 “만언소(萬言疏)”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정치(弊政)의 개혁과 왜적(倭賊)의 침략에 대한 방비(防備)를 절실히 간했지만 반대당으로부터 요망한 말로 임금의 뜻을 어지럽히고 민심을 교란시킨다는 모함만 받았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때 그가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 7백 의사(義士)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전북 남원에 칠백의총(七百義塜)이 있다.
윤봉구(尹鳳九)는 이들의 충성을 기리며 조식(曺植)의 이 시(詩)를 거론했다.
이형상(李衡祥)은 조선 후기의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신의 문인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 “영양우거서(永陽寓居序)”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世路羊腸-세상길은 양(羊)의 창자(內臟) 같기에 功名蟻穴-공(功)을 세워 이름을 날리는 것은 개미 굴 같다. 好虎皮相似-이는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니 生欲殺而死方稱-살아서는 죽이려 들다가 죽어서야 칭찬을 한다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에는 聞人善則疑-남의 선(善)함을 들으면 의심부터 하고, 聞人惡則信-남의 악(惡)함을 들으면 덮어놓고 믿는다. 此滿腔殺機也-이는 마음속에 가득한 살기(殺氣)가 있기 때문이다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중국 명(明)나라 말엽 정호(程顥)가 유명 전각가(篆刻家)들의 옛 경전(經典)에서 좋은 글귀를 모아 새긴 인장(印章)을 모아 엮은 책이다
“그럴 리가 있나”와
“그러면 그렇지”
이 위선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호랑이의 가죽이 벗겨졌던가? 특히 우리 정치인들이 그렇다 !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