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기가, 어쩌면 퍽 어렵겠지요 도회의
이름 긴 간판이 이곳엔 없지요 낡은 혁대처럼
끊기고 구겨진 도로 아홉시면 버스가 길을 버리는
마을 방기防氣, 어둠에 익은 눈도 많이 밝아졌네요
이곳에선 쓸쓸한 것들의 뒷태를, 볼 수 있죠.
더딘 회복 끝에 만약 내가 혹은 그대가 편지를
보낸다면, 휘황한 단청은 없지만 보광사普光寺 대문에
제비표페인트 락카로 그려둔 비천의 옆모습
신묘한 구름의 데칼코마니를 꼭 한번 보고가세요
보름달은 방기갤러리 유일한 조명입니다,
눈물 많은 것들은 천천히 말리는 법이라나요
억새밭 지나 윗 블록으로 걷다보면, 새벽 이슬에
눅눅해진 삭정가지만 소목소목 그러모아 옹기가마
속 불 넣는 화법火法의 소유자, 알락도요 둥지 같은
흰수염 노인장 담 없는 도요지도 굴뚝을 세웠네요
까치머리 사내아들놈 볼에 옴팡지게도 입 맞추는
시골 어무이들 도톰하니 붉은 고 입술로
낮 동안 속닥속닥 깨를 말리면, 도리깨 작대기
능청스레 채잡고 휘휘 돌리며 며느리 말릴 깨를 터느라
두 손 가득 못 잽힌 할마이들도 밤새 쑥덕쑥덕
핏빛 물든 박제된 천형이 아니라 발그레 상기된
속내 여린 얼굴들 콩잎처럼 열리는 붉은 십자가 교회도
하나 솟아 있습니다, 경건하되 위협적이지도 않고
비밀스러워 새침해 보이지도 않은 그 풍경에
안개조차 얼려버리는 골바람도 혹 멎습니다
세상을 잊은 사람들, 무시로 숱이 느는 억새며
짝을 버린 애꾸눈 암고양이 마리가 오늘도 압정마냥
엎드린 배나무 정수리에 올라 그렁그렁 눈매로
당신 오는 그 길목 애써 지켜 개밥바라기하는, 여
언제고 한 번 다녀가세요, 숨이 꺽 막힐 때
해 노을이 남루한 이부자리의 전부인 누렁소처럼
나는 방기放棄를 살고 있습니다
[야왜나무 앞에서 울다],신생,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