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固執) 藤登固執右-등나무 넝쿨은 오로지 오른쪽을 고집하고 左側何無視-좌측을 왜무시하는가 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이 없네 葛向何必左-칡넝쿨은 왜 하필 좌로만 가는가 河欲下處居-강은 낮은 곳에만 머물려하는가. 勿問何焉其-묻지마소 왜 그런지 只天志地意-다만 천지의 뜻이라네 子或世難事-그대 혹시 세상사 버겁거든 一顧逆走之-한번 돌아보소 順理有没背-순리를 거슬리고 있지는 않은지 ※위는 한시(漢詩)가 아니고 한시 형태를 띤 표현임
객관적인 의견이 통하지 않고 박스에 갇힌 미스터 대한민국!!
“양가지론(兩可之論)”이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양가(兩可)-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관계없다는 뜻이다 ▷지론(之論)-어떤 주제나 사안에 대한 의견 ▶양가지론(兩可之論)-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다 가능한 논리 “이것도 흥 저것도 흥”이다
세상에는 모두에게 통하는 객관적(客觀的)인 주장이 있다. 사람마다 의견을 달리하는 주관적(主觀的)인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1+1=2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객관적(客觀的)인 사실이다.
예를 들어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좋은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을이 좋다 봄이 좋다 등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은 주관적(主觀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상식 이하의 자극적인 말이나 객관적인 사실마저 무시하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이 여의도에서든 인공지능AI 에서든 간에---
이런 사회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우리 국민들간 문제만 아니라 외국인의 신뢰도 떨어지게 된다.
중국 고사(故事)하나를 말하겠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정(鄭)나라 정치인 자산(子産)과 등석(鄧析)은 정치적인 대립 관계 였다. 자산(子産)이 무슨 정책을 내놓으면, 등석(鄧析)은 어떻게 해서라도 부정적인 내용을 만들어 자산(子産)을 공격했다. 꼭 지금 한국 정치의 여당 야당과 닮았다.
그 결과 정(鄭)나라에는 커다란 사회 문제가 생겨도 좀처럼 사회적 정치적 합의를 할 수가 없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등석(鄧析)”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고대 중국 진(秦)나라 여불위(呂不韋)가 학자(學者)들을 시켜서 만든 역사론서(歷史論書)다.
어느 해 홍수가 나서 부잣집의 가족 한 사람이 익사(溺死)했다. 강가에 살던 어떤 사람이 죽은 시신(屍身)을 건져냈다. 부자(富者)가 강가 사람을 찾아와 사례를 하며 시신(屍身)을 찾아가려고 하자 수고비를 너무 많이 요구했다.
부자(富者)가 “등석(鄧析)”을 찾아가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등석(鄧析)은 시신(屍身)을 인수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부자(富者)가 시신(屍身)을 찾아가지 않자 강가의 사람이 “등석(鄧析)”을 찾아와서 전후 사정을 말하고 대책을 물었다.
등석(鄧析)은 말하기를 그 시신(屍身)은 부자(富者)외에 다른 사람을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기다리면 부자(富者)가 반드시 큰돈을 들고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등석(鄧析)은 같은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반대를 하기도 긍정을 하기도 하는 “양가지론(兩可之論)”을 펼쳤다고 한다.
“등석(鄧析)”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객관적인 사실이 존중을 받지 못한다. 객관적인 사실이 존중받지 못하면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
지금 여의도의 상자 속에 갇힌 우울한 미스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옆에 아름다운 한강이 흘러도 밖을 내다볼 수도 없다 전망(展望)을 상실한 그(Mr)에게 별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로 서글프다. 눈만 뜨면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이라는 두 패거리 집단이 미스터 대한민국을 막(幕)뒤에 가두고 커튼을 첬기 때문이다.
이런 양극(兩極)의 이익집단(利益集團)에 갇힌 국민만 불쌍하다. 이런 집단들을 선택한 국민도 책임이 있지만 밉든 곱든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되는 것이 또 국민의 딜레마(Dilemma)다.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가 있다. 이상(李箱)은 소설 “날개”에서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말을 내뱉었다. 박제(剝製)는 동물의 속을 파내고 겉만 말려 놓은 껍데기다. 일제강점기에 시 소설등 글을 쓰던 소설가 “이상(李箱)”은 필명(筆名)이다 “이상(李箱)”은 껍데기만 있는 상자라는 뜻이다. “이상(李箱)”의 원 이름은 이상섭(李尙燮)이다
“상(箱)”은 “상자(박스)”다. 알맹이가 없는 빈 박스라는 필명(筆名)이다. 그는 그 이름도 모자라 “박제(剝製)”라는 이미지를 더한다. 박제(剝製) 역시 “껍데기”를 말한다.
일제강점기에서 이상(李箱)은 인간으로서 소설가로서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게 된다. 어디 이상(李箱) 뿐이겠가 만은--
지금 한국 정치 꼬라지가 그렇다. 날아야 할 날개는 상자 속에서 처박혀 박제가 되어 있다. 방위산업이 날개를 달았다 삼성이 날개가 부러졌다 모두 정부와 정치가 붙들어 줘야 한다.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변(離邊)-양 극단(極端)을 벗어나는=떠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여기부터이다. 지금 양 극단을 벗어난다고 하면 우리 뇌는 “중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극단(極端)을 벗어난다는 말이 “가운데가 아니다”라고 대못을 친다. 퇴로를 차단하는 토를 다는 것이다.
양가지론(兩可之論)은 등석이 살았던 그 시대나 오늘날에나 궤변(詭辯)이라는 평을 받지만 무덤 속의 등석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그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규범이 무너지고 어제의 충신이 오늘의 역적으로 변하는 난세(亂世) 속에서 살았다.
이런 시절에 그는 양가론(兩可論)을 통해 “대체 인간에게 모두가 공평하게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규범이란 게 있을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꿩잡는게 매 아닌가? 까치가 꿩을 잡아도 “까치 매”라 할 수 있지 않는가? 쉽게 말해서 권력을 잡는 것이 “삼팔광땡”이라는 것이다. 그런 대한민국이다.
등석(鄧析)이 살았던 춘추시기는 사상적(思想的)이니 뭐니 이런 고급스런 용어보다도 권력을 누가 잡느냐가 생사(生死)를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2025년 대한민국도 그렇지만---
등석(鄧析)과 거의 같은 시대 인물인로 “사묵(史墨)”이란 사람이 있다 BC 510년대의 사람이다. 진(晉)나라의 재상 조간자(趙簡子)가 신하인 사묵(史墨)에게, “노(魯)나라의 계씨가 임금을 내쫓았음에도 백성들은 계씨를 따르고 그를 단죄(斷罪)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웬일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사묵(史墨)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어떤 종묘사직(宗廟社稷)도 영원히 섬김을 받지는 못한다. 임금과 끝빨좋은 신하의 지위 또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님은 예로부터의 진실이다.
그래서 시경(詩經)에서는 高岸爲谷 深谷爲陵이라! 높은 언덕도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도 구릉이 된다고 했다.
노(魯)나라 소공을 몰아낸 계(季)씨가 왜 단죄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묵은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표준이 어디 있느냐”고 답한다. 다음에 자신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양가지론(兩可之論)”의 정치 논리 밑에 죽어나는 것만 국민이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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