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단장
김 규 린
아물지 마라
아물지 않은 채 우리 그냥 이대로
세상을 건너자
의도하진 않았지만
절로 겨눠진 서로의 칼날이
자주 심장을 후벼내곤 했다
어차피 묽은,
육수처럼 싱거운 세상 아니더냐
소금 치듯 그렇게
진물뿌리며 살며 그만인 것을
상처가 크면 세상에 뿌릴
진물도 넉넉해진다
흙을 지닌 마음 있으니
나, 씨앗처럼 일어나
조용히 화분 속으로 스민다
단 한 번
봄볕 없는 삶이 어딨더냐
너무 늦게 드리워진 봄볕이 따가울지라도
남겨진 습기에 뿌리를 묻고
지난 상처를 달랜다
아물지 마라 부디
아물지 않은 채 그냥 이대로
세상을 건너자
건너가서 다시는
겨누지 말자
한 세상 치유하기에는
상처가
너무 깊다
ㅡ《열꽃 공희》(천년의시작, 2011)
시인 김지연(필명 김규린)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1993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뒤, 필명 김규린으로 시집 『나는 식물성이다』,『열꽃 공희』를, 김지연으로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를 펴냈다.
그 외 학술서 『현대시의 생태론』, 논문 「이성선 『山詩』의 세계인식과 불교생태학적 의미」, 「젠더 관점에서 바라본 강은교의 여성적 시쓰기」, 「박재삼 시에 드러난 자연의 불교생태학적 의미」,「에코페미니즘 시 연구」 등 20여 편이 있으며, 제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_시인 소개는 알라딘 저자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 필명 대신 어느 순간 필명 뒤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키운 검은 나비도 아름다웠다』(애지, 2021)시집 부터는 본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시집『열꽃 공희』는 2011년에 나온 시집이기에 그 당시의 시인명(필명)으로 올리니 참조 바랍니다.
첫댓글 건너가도 같을 세상일까봐 걱정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칼을 먼저 거두어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