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랜만에
어른이 되어서 아주 오랜만에
우산 없이 걸었네.
충북 청원의 산속을
서울 명동의 밤길을
하루 동안.
내 온몸이 젖어
뼛속까지 푹 젖어
입안에 연초록 싹이 움트고
난
우물우물하였네.
도시에 밤비 내리는데
사람들 우산 속으로 봄비 피하는데
나 우물우물
식물의 말들을 하였네.
지나가던 예쁜 서울 여자
꽃 같은 속눈썹의 서울 여자
눈 흘기고 지나갔네.
나의 잎들이 피어나고
나의 잎들이 밟히고
나의 뿌리들이
이 도시 여기저기 위에 걸려
꿈틀대었네.
비 흘렸네.
나,
아직 이 밤
빗물들 하수구 저쪽으로 몰려가고
우산들 길 저편 골목들로 사라지고
빈 택시들의 헤드라이트 속,
봄비 내리는데.
[비파 소년이 사라진 거리], 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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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 이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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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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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부산에도
봄비가 해동하는 대지를 적셔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