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 1주기, 정부 아닌 시민들이 성금 모아 추모식
내달 10일이 1주기인데 정부·軍은 공식 행사 계획 없어… 시민들, 6·25 맞아 추모식 열어
이승규 기자
입력 2021.06.26 03:00
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71주년 기념식과 백선엽 장군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백선엽 장군 추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을 기리는 추모식이 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렸다. 백 장군은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고, 다음 달 10일이 1주기다. 정부나 군에서 따로 행사를 준비하지 않는다고 하자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백 장군이 승리를 거둔 다부동 전투 기념관에서 그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국가원로회의와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로 구성된 추모위원회가 준비했다. 이동수(67) 추모위 대구경북지부장은 “그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이곳 칠곡 다부동에서 장군과 6·25전쟁을 잊지 말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좌석 200개가 마련됐지만 300여 명이 몰렸다. 헌화와 분향, 각계 인사들의 추도사와 추모 영상,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인 이상훈(88) 전 국방부 장관은 “지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상당히 위험하다”며 “다부동 전투가 나라를 살리는 반격의 시발점이 된 것처럼, 오늘 백 장군 추도식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국가 영웅을 기리지 않는) 후배들이 참으로 한심해 매일 밤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했다. 권영해(84) 전 국방부 장관은 “돈과 물자에 빚을 졌다면 갚을 수 있지만 생명의 빚은 갚을 수가 없다”면서 “(백 장군과 다부동 용사들의) 뜻을 생각하며 매일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위 공동대표를 맡은 송영근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자유민주주의 기틀이 흔들리고, 한미 동맹이 악화되며, 국군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시면 (백 장군이) 많이 불편하실 것”이라며 “종북 친중 위주 대외 정책, 반일 국수주의 준동, 파묘 논쟁과 묘역 이정표를 없애는 망동을 (백 장군이) 어떻게 지켜보고 계실지…”라고 말했다.
칠곡 다부동은 백 장군을 상징하는 곳이다. 1950년 8월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그가 이끈 육군 1사단이 승리하면서 낙동강 전선 방어에 성공했다. 당시 백 장군은 “내가 앞장설 테니,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쏘라”고 말하며 북한 인민군이 점령한 고지로 돌격해 패퇴 직전의 전세를 뒤집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계기가 마련되자, 백 장군과 1사단은 그해 10월 평양으로 진격했다. 그는 1952년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돼 이듬해 우리 군 최초로 4성 장군이 됐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백 장군은 지난해 7월 별세 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남겼다. 그는 전투복을 수의(壽衣)로 입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관 위에는 다부동 등 8대 격전지 흙이 뿌려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그의 영결식에 불참했고, 일부 친여 단체는 안장식 때 반대 집회를 했다. 보훈처는 지난 2월 백 장군 묘 안내 표지판을 철거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청년 단체가 마련한 백 장군 분향소에는 추모객 1만여 명이 다녀갔다.
이날 추모식에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이 보낸 조화가 놓여 있었지만, 국방부와 보훈처가 보낸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예비역 육군 준위 박만록(73)씨는 “시민들은 백 장군을 끝까지 기억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참석했다”고 했다. 이동수 지부장은 “백 장군을 명예 원수로 추대하는 운동을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한 참석자는 만세 삼창을 하면서 “광화문광장에 백 장군 동상이 서는 날을 고대한다”고 했다.
이승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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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백선엽 장군 1주기, 정부 아닌 시민들이 성금 모아 추모식 - 조선일보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