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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무 기전록- 공부만 하던 조용한 선방에 무슨일,,(삼국전쟁의 서막,,)
,,, 어느날 왜놈들이 쳐들어 온다는 소문은 사실인지,,아닌지 모르지만,,
대중부 선방이 요란합니다, 왜놈들이 온다는데 어찌해야 하나 부터 그런 유언비어로
공부하는 선심들을 어지럽히지 말라 하는분도 있고,,우리가 이꼬자지 된것은 왕을 비롯 고관대신들의 불사탄압으로 비롯되었는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등,,
(시시각각 들여오는 소문에 유식론 공부을 접고 경청하고 있는 나는 어찌해야 하나,,)
얼마전 부산포 근방에 침몰한 군선을 두고 분명히 침략을 위해 왜놈짓이니,,선방 정리하고
공양 밥그릇과 수저를 녹여 칼과 몽둥이를 준비해야 한다하고,, 4대강 정비를 하면 왜놈
들에게 길을 터주는 사업이니 당장 상소하여 중단시켜야 한다,,
이런 소문들은 민심을 교란시키고 새왕조를 세울려는 역적들의 구데타 음모다,,라 하고
무척 혼란스러운 정보가 속속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1580년 후반 일본의 정세는,,
,,몰락한 가문의 도요토미,, 도씨가 막부 수장가에서 유년기 하인(종노릇) 생활을 하면서 여러곳의 심부름을 다닙니다,, 우연히 승가에서 선승으로 부터 경(밀경)을 듣게 되면서,, 크게 눈을 뜬다,,하지만 한자로된 경의 해석에 의역을 해야 할 대목에 직역을 하여 왜곡된 인식을 하며 생활도를 나름수행하며 출세도의 경지에 이른다,, 막부 주인이 저녁 늦게까지 술에 취해 아무렇게 벗어 놓은 나막신을새벽마다 찾아 방안앞 돌계단에 가지런히 놓아두길 수십년,, 드디어 주인의 신임을 얻게 되며,, 주종관계 아닌 주군의 장교로 발탁된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게하는 왜곡된 신통을 얻게 되지만 심한상기증과 빙의로 평생 고생하다,,측근에 의해 살해당하는 삶을 살게된다,,
어째든 일본의 천하통일과정인 전국시대에 통일 이데올로기로 불교를 이용하였으며 전투부대의 선봉은 천상마군의 형상으로분장한 특수부대로 무장하여,, 피지배지역의 민심을 얻기도 하였다,,
다시 국내의 승단 상황은 무성한소문들속에 치열한 논사를 벌리며(오히려 이런 논쟁들이 준비 할수 있는 방편을 만드는 순기능도 하였다)
원상대사을 중심으로한 선승들(다수파 ??)과 웃음대사을 중심으로한 선승들의 논쟁이,,,
(조선중기 1580년 후반 정세,, 선왕인 무왕 사후 중년의 명왕은 오랜 세월동안 2명의
세자가 음모에 의한 낙마로 반신불구가 되는 모습을 보며 강한 개혁의지를 숨기며 상업
에만 열중한다,,이런 와중에 반대자들의 자기 내부분열에 의해 세자로 책봉된다,,
이미 노쇄한 선왕 무의 후반 정치는 언론을 장악한 소수 토지개혁 반대세력들에게서
끝임없는 무고한 상소에 시달리며 결국 치매로 인한 통치불능의 상황이 된다,,소수세력의
간택을 받은 명은 상업만 알고 정치는 모른다는 오판에서 결정 되어졌으며 즉위를 한다,,
선왕의 집권을 간택했던 다수파는 4대강 정비사업의 내부간 사익차이로 갈라지며 돌아오지
못한 상황되었고 일부는 소수파와 사익을 함께 하게된다,,
4대강 주변에 관수급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소수나 다수파일부는 4대강사업을 시급히 하여 국가 백년대개를 주장 하지만 자기 토지에만 농수로가 확보 되어지는 반사이익이 원인이였다,, 대부분의 다수파는 내륙 지역에 관수급 토지를 보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사업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자기들 지배하에 있는 농노를 제공해야 하는 원인으로,, 불안정한 일본 정세를 전쟁논리로 비약시키며 4대강 정비사업을 반대 하였다,,이런 논쟁은 승단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위정자들의 잠재적 사익에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명의 정세는 태조이래 강건한던 국력은 쇠약해 지고 있어서며 제후국들의 황실 간섭이 자주 되어지고 있었다,,
1580년 후반 선왕 부씨 사후 젊은 혈기의 오왕은 갖가지 과거 제후들의 반대로 시행 하지 못한 정책으로 개혁을 하고자 하나 주변인들의 왜곡된 정보전달로 인해 정책이 거꾸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몰랐다,, 근자에 황실 대외비를 보관 하고 있던 사고에서 밀경 원본이 사라졌고 그행방을 쫓아 비밀리에 요동과 조선,일본에 특수간자들을 밀파 하였으며 본디 이 밀경은 명태조 주왕이 대원 투쟁에서 천하통일을 하기까지 가장 영향력을 준 명교의 교주로부터 전수 받아 보관해 오던 신물(밀경과 군사전략서등)이였다,,
이 신물을 가진자가 천하군주 되었던 대표적 사례가 명태조이다,, 대원전쟁에서 승리하고 천하통일후 정치적 안정 토대를 구축한 후 주왕은 이 신물의 내력을 아는 모든자를 숙청하여 죽였고 그의 장자마저 죽음으로 몰게 하였다,,이 신물의 내력을 정확히 모르는 어린 태자에게 왕위을 주며 유언을 남긴다,, 이 신물은 극비 보관하여 누구도 열람 하여서는 안되며 후에 행방에 묘연 할 경우 전쟁을 불사 해서라도 찾아야 한다,, 안정 장치로는 밀경 필사본(원본의 내용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빼고 하여 왜곡된 경)을 다량으로 제작하여 제후국들과 주변국들(대만,요동,조선,일본등)에게 배포하며 요사스런 이런 신물로 천하가 통일 되지 않는다 하였다,,후에 이 필사본은 제후,주변국 왕들로부터 외면 되어 더 복잡해 진 필사본들이 천하에 나돌아 다녔다,,하지만 필사본이라 할지라도 깊이 수행을 하면 왜곡된 신통을 얻게 된다,하지만 파경에는 자신을 파멸하여 평생 상기와 빙의로 고통받았다,,
행방이 묘연한 이신물은 직,간접적으로 조선 부산포 군선 침몰 사고와도 관련이 깊었다,,
1580년 후반 요동이북 북방지역의 정세는 오랜세월 대원제국의 피박과 억압을 받았왔다, 멸망지국된 금(여진)국의 잔존세력들은 명왕조의 초기 통일과정,, 대원전쟁의 원군으로 역할을 하며 명왕조의 제후국 인정을 받지만 토사구팽 되어 다시 흩어져 오랜기간 부족 유목민 생활을 하였으며,,일부 여진부족은 조선반도 이북지역에서 험주한 산악과 평야가 있는 옛발해국지방에서 과거 멸국되었던 원인들을 공부하며 흩어져 있는 부족간 소통에 힘써며 미약 하지만 빠르게 화합하여 간다,, 그중심에는 옛발해지역 여진부족장 염화장이며 일찍이 명왕조 부씨 선왕때 큰아들인 무을 볼모로 황궁에 보내었다,,
(참고로 염화장은 명왕조와 조선국의 숭유억불사상에 큰반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찍이 불심 삼보에 귀의하여 늘 불경을 가까이 한 인물이였다.)
염화무는 황궁에 간지 얼마되않아 선왕 부씨가 죽자 후왕으로 오왕이 즉위한다,,
선왕 부씨는 서역 이교도국(불교,마호교) 정벌에 오랜세월 전비와 기력을 낭비(소득이 없음)하여 자연사 되었지만 사실 혈족인 제후들과 측근에 의해 암독살 되었다,,후왕인 오왕은 소득없는 정벌전쟁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각종 정책만 만들어 공무원들만 힘들게 한다,,
민심은 정벌전을 그만두기를 원하지만 측근들은 태조 주왕 이후 큰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하고 있었으며,, 이런 황궁사를 염화무는 직접보고 듣고 생각하며 과거 금국이 멸망된 원인을 탄식하였다,, 총명한 사고와 민첩한 행동으로 황궁 보위부 신임을 얻게되는데,,
늘 주위에 멸국된 금국을 솔직히 비판하였고 주위에 정보를 가진자들 또한 솔직히 역사적 정보를 주어 오히려 염화무의 생각과 사고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한편 조선은,,
선왕인 무왕 제위 기간 몇가지 국가적사업을 진행 하였지만 복잡하게 이합집산한 위정세력들에 의해 모든사업은 소득없이 되었으며 특히 통치 후반기 도읍지 천도사업은 큰 국론분란으로까지 진행되었다,, 무왕을 간택 하였던 다수파는 열파와 민파,노파로 분열되었고 무왕 즉위 반대파인 소수파는 회합하여 지방민심을 얻는데,, 천도사업은 다수,소수파로 분열된 것 아니라 자신들 사익에 의해 이합집산 되었으며,, 결국 무왕의 노환으로 통치 불능때 지역적으로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사실상 지방 제후의 권력을 갖고 있어으며 공공연히 관병과 사병을 조직 하였든 것이다,, 왜란후 군사적 반란으로 까지 이어졌고,, 청태조 무가 진압하기까지 이른다,,
이런 와중에 후왕인 명이 즉위를 한다,, 자연히 자기를 간택했던 소수파는 거대한 다수파가되었고 선왕 지지파는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었다,, 천도사업은 선왕의 어리석은 판단이라 하여 진행된 모든 사업을 중단시킨다,, 이로인해 자기를 간택하였던 다수파내 분열이 다시 일어나며 군사적 무장까지 하게 되지만,, 명왕의 측근들은 태평성대 하다는 정보를 주며 안심 시키켰다,, 또한 측근들중 4대강 주변에 관수급 토지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다수파는 시급히 국가부흥을 위해(농수로 확보취지,사실은 사익적 측면이 강함) 4대강 정비를 주장하며 공사를 진행 하였다,, 이로인해 이분열은 사익적 성향으로 이합집산 되어 다수파내 소수파와 결탁된 4대강파와 비파로 분열된다,,
조선 남쪽 섬지방,, 일찍이 몰락한 염화가문(성씨가 북방민족임)에 염화신은 쇠약한 부모님과 동생들을 부양하며 배를 타고 먼곳 왜나라 까지 가서 상업을 하게 되는데,
<삼포왜란후 왜왕은 노골적으로 억불하는 조선이 왜 팔만장경을 가지고 있나,,노골적으로 달라까지 한다,,한편 임진년 왜란중 조선승단의 격한 내부논쟁으로 뜨거울 때 승려을 앞세운 왜군은 간승을 간자로 보내,, 불제자가 왜 칼과 몽둥이를 들고 살생하려 하나 하며 조선승단의 투항을 재차 권하고 있던 시점,,그 간승 무리들중 묘상이란자는 일찍 도요토미 도씨와 함께 막부 생활을 함께 했어며 도씨의 최측근중 한명이였다,,
본디 여자라 남매처럼 다정히 지냈으며 도씨가 20대 후반 막부 수장으로부터 비로소 신임을 얻을쯤 15세정도 되었고,,도씨로부터 밀경 필사본을 함께 수행하여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세간의 도를 얻어 일갑자 정도의 요술을 부렸다 한다,, 이또한 왜곡된 경이라 심한 상기와 방의에 시달린다,,사람 마음을 훔쳐보는 재주는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며 도의 갑자가 높을수록 남자는 여성화되고 여자는 남성화 되었다,,후에 도씨는 낮엔 남자인 왕으로 자정이 넘는 밤에는 요부가 되어 측근의 신하들을 괴롭히다,,암살되는 운명이되었다,, 묘상이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묘상이란자가 조선승단에서 간승이 되어 활동하였는데,,,,
*부기: 도요토미 도씨의 꺼꾸로 신공 휴유증 중독인 빙의와 상기증은 현대의학으로도 치유 가 불가능하다고 함. 하지만 유일한 치료 법은 구음의 독을 상호교환하며 다스릴수 있는구양신공으로,, 소림 달마조사로 부터 유래되어 혜능선사께서 육신을 훼손하 며 계승한 신공입니다,,
이미 중독이 일갑자 이상되는자는 이신공으로 치료를 한다 하여도 목숨만 부지하는
식물인간으로 살아야한다,, 그나마 걸어 다닐수 있는 정도로 치유 될려면 이신공의
직계전인을 만나 99일간 중독된 육신 오관을 스스로 폐하고 직계전인으로 부터
그독을 교환하며 해독하여야만 하지만,,그런 기연 세상에 만나기 어렵다,,
도요토미 도씨 역시 후에 이사실을 알아,,그신공을 찾기 위해 정명을 하였고 조선은 가도로,, 길만 열어 달라 하였지만,,결국 중원전쟁으로 까지,,
<<조선내 최대사찰 나물사의 비밀--삼국전쟁의 서막>>-염화무기전록중 일부
<조선내의 상황은,, 부산포 군선 침몰사건의 배경을 두고 조정내 어려가지 주장과 설이 난무하였다,, 또한 승단내에도,,예외는 아니였다,, 승단에 격한 논쟁을 하였던 여러 인물중 원단이란 이,, 19대 무왕 당시 다수파의 자제로 나름 불우이웃을 많이 도와 평판이 좋았지만,,
선왕인 무왕 사후,, 후왕 명왕 즉위후 나타나는 권력이동(청소) 과정에 억울히 멸문지화 되어,,정처 없이 방랑을 하게된다,,유학이란 시절무상 하다 여기고,,불심 삼보에 귀의하여 작은
암자에서 공부만 열중 이든때,,이웃 왜나라의 불안전한 시국을 듣게 되어 하든 공부 접고 하산 하게된다,,
,,어째던,,<왜승의 간자 묘상(법)이란자의 조선승단 분열책이 성공을 하고 도요토미 도씨가 전쟁 하러 조선에 온다,,이 대목에서,, 묘상(낫엔 남자,밤엔 여자,)의
,,덧에 걸려,,묘상이 야밤에 절세미인으로 변하여 원단거사(단현)과 치우거사-조선승단에서 정일론을 선전,선동하는 돌은주의자--와 함께 강으로 뛰어 들어
,,운명 하는 것으로 전개 된다,,하지만,,묘상은 구사 일생으로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왜군의 간자,,묘상이,,원단대사와 치우거사를 강으로 유인하여,,살상하게,,되나,,인피로,,위장한,,다라니신공계승인으로,,오인살상,,되었음>
,,<원상대사님,,구음진경을,,훔치기위해,,조선최대사찰,,나물사,,경영진으로,,신분세탁,,은닉활동중,,,,본디,,치우와 함께,,멸국,,거란왕족의,,후예로,,한때,,비련의,,조선여인과,,애틋한,,삼각관계로,,거란을,,배신하지만,,,,조선내,,극도의,,혼란을,,틈타,,재건국을,,도모하고자,,큰뜻을,,뿜고,,왜란후,,조선이,,남북으로,,갈라지게,,하는,,역할을,,하게됨,,>
,,,,<<원상대사,,뜻하지않은,,변고후,,이래,,인물이,,없는가,,단현대사도,,깊은,,내상을,,입고,,그에,,맛선,,정일론( 왜란전,,왜를 정벌해야,,한다는 주의론) 주장에,반대 하였던 선승들,,역시,,만만찮은,,내상을,,입게,,되었다,,그 논란의 과정,,각종,,음해세력(,,왜승의 간자들,,비롯하여,,과거,,멸국된 거란의후예들,,또한,,전왕인 무왕 시절,,다수파로 집권,,하였지만,,후왕 명왕 즉위후,,나타난,,권력이동(청소,,)중,,멸문 되었던,,후손들,,) 들이,,개입 되어있었고,,이 논란은,,왜의 도요토미 도왕의 침략후,,충북 탄현전투전까지,,이어졌지만,,결국,,왜군앞에선,,모든,,논쟁을,,종식하고,,분연히,,일어나게 된다,,>>--염화무기전록
<<,,왜국의 무장에,,대해,,조선내,,수없는,,논쟁과,,정치적 파벌 분쟁,,이미,,지방제후들은,,무왕후반기 부터,,사병까지,,조직을,,하였던 것이다,,당시,,민초들의,,어려움과,,조선승단의,,논쟁과정은,,후에,,전개되며,,우선,,왜국의 도왕이,,전국통일후,,정명론(,,구음진경 원본이 명황궁에 있다는 왜곡된 정보,,)을,앞세워,,조선엔,,가도를,,요구하며,,침략하여,,온다,,조선군의 무장력은 간자들이나,,간승에 의해 이미,,관병과,,지방제후들 사병으로 분리 운영되며,,무력하다,,판단,,하였으며,,이는 정확한 정보였다,,하지만,,왜의 도왕이,,전쟁 명분으로,,가장,,염려하였던 것이,,바로,조선승단의,,무공력,,있였다
왜의 도왕은..어째든 일본의 천하통일과정인 전국시대에 통일 이데올로기로 불교를 이용하였으며 전투부대의 선봉은 천상마군의 형상으로,분장한 특수부대로 무장하여,, 피지배지역의 민심을 얻기도 하였다,,또한,,정명가도(,,목적은,,진경 진본을 취하기 위해,, 도왕이,,이전,,필사본 밀경으로 왜곡된 출세도를,,이루었지만,,불치병을 얻게,,된다,,이를,,치료키,,위해선,,구음진경 진본이,,필요했던 것이다,,),,를,,명분으로,,첫원정,,부산포에,,입항 후,,왜군의 특수부대는,,천상마군의,,분장과,,묘법연화경으로,,,,도배한,,승기를 앞세우며,,조선민들의,,민심을,,얻을려는,,목적도,,있었다,,왜의 도왕은,,왜곡된 경에 의한,,왜곡된,,>>--후기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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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충무공,,온갖 시련을 통해,,왜국의 도왕을,,물리치고,,조선 영토를 적으로 부터,,수복 시키는,,염화신으로 등장합니다,,왜란후 조선은,,자연히,,소멸되고,,
,,염화신이,,대한국이란,,국호로,,한반도는,,새로운 역사를,,맞이하게,,되며,,잠시,,건국전,,왜란,,정벌 직후,,남,북국으로,,갈라짐(영토 수복 전쟁후,,앞서,,멸국된,,
,,거란의 후예들이(귀화인들,,),,수복전쟁의,,논공행상,,과정,,어떤음모로,,반란을 하며,,잠시,,남북으로,,갈라진다,,후에,,청의 태조,,염화무의 진압으로,,통일을,,한다,,
,,그과정에,,대한국의 태조,,염화신은,,,진경의 원본중,,상권과,,북국의 영토를,,청태조와,,교환하며,,동북아지역의,,상호패권자로,등장하며,,그,,장엄한,,불국토를,,다시,,건설하게,,된다,,,>>>---염화무기전록 결말,
첫댓글 오랜만에 다시 '기전록'을 읽게 되네요^^ 얼마전 일이 새록새록~ 고맙습니다 내가님 _()_
어제의 용사가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