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겐 두 아들이 있다. 부모는 아들들을 공평하게 사랑했다. 부모에게 두 아들은 황금 동전이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달랐다.
첫째는 씩씩했다. 몸도 건강했다. 초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첫째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괜찮은 포수’로 불리며 꿈은 조금씩 현실이 되는 듯했다.
반면 둘째는 조용했다. 몸도 쇠약했다. 태어날 때부터 체중 미달이었다. 독한 폐렴까지 걸리며 생사의 고비까지 갔다. 그래도 잘 견뎠다. 생(生)의 의지가 사(死)의 유혹을 이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폐렴이 지나간 뒤 둘째는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더뎠다. 기어 다니는 것도, 걷는 것도 늦었다. 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이 “아빠, 엄마”하며 말을 시작할 때 둘째는 옹알이만 했다.
그제야 부모는 알았다. 첫째와 둘째가 다르다는 것을. 다르지만, 두 아이가 평생 서로를 의지하며 살게 되리라는 것을.
김종민(30). 첫째 아들이다. 10구단 kt 포수다. 골수 야구팬이 아니면 잘 알지 못할 이름이다. 대전고-단국대를 졸업했다. 그때만 해도 포수 유망주로 꼽혔다. 하지만, 고교·대학 졸업반 때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유망하긴 하나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2009년 넥센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둘째에게 형은 신(神)이었다. 그런 형이 입은 프로 유니폼은 신의 제복이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 손을 잡고 형의 경기를 보러 갔던 둘째는 프로 유니폼을 입은 형을 보자 뛸 듯이 기뻤다. ‘우리 형이 프로 선수가 됐다니’ 둘째는 너무 벅차 세상을 향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소릴 질러도 주변 사람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김종민은 장종훈, 김현수(두산)처럼 신고선수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자 노력했다. 땀과 노력을 배신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프로 유니폼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는 넥센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신고선수 출신인 그를 데려가겠다는 팀은 아무 데도 없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딱’ 한 군데 빼고는. 거기가 어디였느냐고요? 군대였습니다. 상무, 경찰청은 1군 선수나 2군에서도 최고 유망주들이나 가는 곳이니 처음부터 제겐 꿈같은 곳이었습니다. 네,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2년 동안 배트 대신 총을 쥐었습니다. 주변 분들 가운데 ‘웬만한 야구선수들은 군에 가지 않는데 너만 가서 아쉬웠겠다’고 하시는 분이 계신데. 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웬만한 야구선수들도 가지 못하는 군대에 그것도 현역병으로 입대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고요.”
2012년 군에서 제대한 김종민에게 손길을 내밀어 준 팀이 있었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였다. 2012년 원더스 창단 멤버로 다시 야구판으로 돌아온 김종민은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살았다. 여기서도 살아남지 못하면 끝장이라 생각했다.
절박함은 효과를 발휘했다. 프로 2군 팀과의 교류전에서 김종민은 시쳇말로 ‘펄펄’ 날았다. 투수리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잘만 가다듬으면 1군 백업포수론 손색이 없다’는 평까지 들었다. 그리고 2년 뒤. 2013시즌이 끝났을 무렵. kt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10구단 kt의 일원으로 뛰어보지 않겠느냐”는 말에 김종민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돌째에게 형의 kt 유니폼은 넥센, 원더스에 이어 세 번째 신의 제복이었다. 형은 그 유니폼들을 입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전개했지만, 동생에겐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형이 계속 프로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 동생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둘째는 첫째보다 삶의 부침이 적었다.
지난 시즌 처음 정식 2군 경기에서 뛰었던 김종민은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휴식 기간 중 열렸던 두산 1군과의 연습경기를 잊지 못한다. 당시 김종민은 선발 포수로 출전해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정작 그가 이 경기를 잊지 못하는 건 동생 때문이다.
“제가 초교 야구부에서 뛸 때부터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항상 동생이 부모님을 따라 구장을 찾아왔어요. 멀리서도 제가 보이는지 저만 타석에 서면 손뼉을 치며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졸업하고, 신고선수로 넥센에 입단한 다음부터 응원이 뜸해졌어요. 제가 출전하는 날이 그만큼 뜸했으니까요. 그러다 잠실구장에서 두산 1군과 연습경기를 할 때 동생이 오랜만에 아버지 손을 잡고 찾아왔어요. 참 이상한 게…그 큰 구장에서 동생 얼굴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큰 구장에서…웃고 있는 녀석이 정말 한눈에 보였습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반드시 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프로 1군 선수로 성공하자는 게 막연한 목표였어요. 하지만, 동생을 보면서 그리고 원더스에서 뛸 때 우리 선수들을 응원해주신 팬들을 보면서 내가 아닌 날 아껴주는 분들을 위해 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들 위해 열심히 뛰는 게 프로 선수의 자세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1군 무대든 2군 무대든 절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뛸 때 비로소 성공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진리를 서른 즈음에 알았다는 게 아쉽지만, 더 늦지 않게 깨달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2015시즌 김종민이 kt 포수진에서 살아남으려면 경험 많은 용덕한과 촉망받는 유망주 포수 안중열의 벽을 넘어야 한다. 김종민은 “현실적으로 주전포수가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고 말문을 열고서 “하지만, 올 시즌은 팀당 144경기를 소화하는 만큼 체력 안배 차원에서 백업 포수들의 출전경기수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확실하게 잡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새해다. 신이 가장 바쁠 때다. 소원과 바람이 쏟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종민도 신을 향해 자신의 소원과 바람을 빌었다. 신이 그것을 들어줄지 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둘째 역시 신을 향해 자신의 소원과 바람을 전했다. 둘째의 소원은 형이 kt에서 성공한 야구선수로 우뚝 서는 것이고, 바람은 그런 형의 멋진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환호하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의 신은 따지고 보면 같다. 첫째의 신은 지금껏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김종민 자신이고, 둘째의 신 역시 신의 제복을 입은 ‘형’ 김종민이다.
그렇다. 김종민의 운명은 그에게 달려 있다. 어디 김종민뿐이랴. 우리 모두가 그와 같다. 행운도 조건이 갖춰졌을 때 찾아오는 법이다.
그 조건을 갖추려면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나은 선수가 되겠다는 한결같은 다짐과 그 다짐을 현실로 이끌어줄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노력하고도 보답 받지 못했다면 그건 아직 노력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올 시즌 김종민의 노력이 보답 받는 노력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생이 숨죽여 지켜볼 프로 1군 데뷔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 때. 우리 사회는 보다 많은 기적으로 따뜻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으로 새로운 기적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우연히 박동희 칼럼을 읽다가 발견해서 읽고 짠해서 일부를 퍼왔습니다.
재능만큼은 주전급이었지만 자기가 갖고 있던 나쁜 마음으로 인해 결국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게된 장성우와
줄곧 선수생활 내내 위기였다가 마지막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윤요섭을 제치고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한 김종민의 이야기는
비단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극과 극의 성향을 보이는 두 선수가 kt의 포수로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장성우는 분명 필요한 전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시즌 6월부터 시작된 반등을 이끌었던 선수이고
여전히 그 "재능"은 김종민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팬이 생각하는 판타지 중의 하나로
악마의 재능을 갖고 있지만 악역(?) 역할의 선수를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훌륭한 인격의 주인공이
결국은 성공한다는 그런 스토리를 꼭 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kt 팬이기 때문에 장성우가 만약 출전한다면
잘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야구 좋아하는 xx은 냄새나게 생겼다는 사람과
자신을 우상으로 삼는 동생을 위해,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들을 위해 뛸 때 행복함을 느끼고 죽을 힘을 다해 뛰는 사람 중에
한 명을 택하라면 고민하지 않고 후자를 택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 투성이인 김종민 선수이지만
그 노력이 장성우가 가진 재능을 밀어낼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안방마님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배려하는 마음과 팀을 위한 헌신이니까요^^

그 당시에는 김종민 선수의 동생분이 지체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는데
이 기사를 보고 다시 이글을 보니 김종민 선수의 기분도 정말 안좋았을 거 같습니다.
나이도 김종민(1986년)이 장성우(1990년)보다 4살이나 더 많은데
형으로서 못난 동생 도덕교육좀 시켜줬으면 하네요.
물론 인성은 쉽게 안바뀐다고 하지만... 동포지션에 저런 선수를 형으로 두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느끼는 게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보다 재능이 떨어지는 그가 어떻게 주전이 될 수 있었는지를...
그 답은 밑에 있습니다.

첫댓글 눈물 납니다 ㅠㅠ
박세웅이 너무아까와요. 그당시에는 이해할수 있는 트레이드였는데..휴... 그나저나 KT멋진 선수들 알게되네요. 환상의 식스맨님덕에 말이죠.
그때만 해도 롯데 손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었죠. 지금 와서는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지만..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김종민이란 선수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X같아 이득챙기고 살면 장 땡이야란 생각하다가도 묵묵히 자리에서 최선 다하는 김종민 선수 같은 이야기 들으면 정말 너무나 부끄럽네요. 다시 한 번 글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09 12:23
@둠키 한번에 여러개 좋아하면 힘들어서요ㅠ 축구-야구-농구 로 갔다 다시 축구로 왔네요. 야구도 정말 재밌는데 팬질하면 기본 100경기 세네시간 감당이 안되더라고요ㅠ 국가대항전이나 결승전 위주로 보고 있네요. 그리고 한화팬이라... 부끄럽지만 볼 때마다 져서 현진이 메쟈 간 후로는 더더욱 안보게 되더라고요.
@vs KG 아 뭐든지 하시면 열심히 하시는 스타일이신가보네요.. 멋집니다.
@둠키 그냥 남자라 그런지 드라마 안보고 스포츠 보는거죠ㅎㅎ 둠키님이 직관도 많이 가시고... 뭐 부럽습니다.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