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 몇 번을 망설이다 끝내 영화로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또 몇 번을 주저하다 결국 비디오를 통해 보게 되었다.
단조로운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만으로 화면이 가득 차는 장면에서는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내다보던 내 어린 날의 기억 하나가 겹쳐지면서, 참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던 대부분의 시간동안 내 마음은 참 불편해 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혹은 '고향'의 느낌을 물으면, 보통 된장찌개 냄새 폴폴 나는 정감 어린 시골의 풍경이나 천진난만하게 뛰놀았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대개 이 말에서 풍기는 어감을 '아름다웠노라' 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면 아름다웠던 기억은 찰나의 순간뿐이고, 대부분이 참 부끄러운 기억들만 가득한 것 같다.
나만 그런 건가?
내가 어린 날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은 어느 자그마한 섬이다.
그 곳은 1970년 후반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왔고, 자동차는 1984년 쯤 처음 선보였을 정도로 동떨어진 공간이었다.
환경이 이러니 해가 질 때까지 동무들과 산과 바다를 뛰어다니는 것이 놀이의 전부였다.
수십 미터나 되는 벼랑을 펄쩍펄쩍 건너다니며 벌통을 털던 일하며, 섬 생활 십 여년 만에 처음 본 눈(雪)으로 하얗게 덮였던 섬의 정경들.
반면에 사람들은 저마다 참 많은 슬픔은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아마 갇혀 있는 듯한 섬 생활이 많이 답답했었나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잔인한 짓도 많이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기억과 다른 사람이 나를 아프게 했던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답고 그리워야 할 기억은 아주 흐릿하다.
대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잊고 싶어하기 때문에 더 그런 걸까?
어쨌든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화면에서 보여주지 않는 곳에서 아파할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네멋'에서 연정 어머니의 모습이 그랬다.
쭐래쭐래 따라다니면서 벌 받고 싶다는 복수에게 전경은 "죽은 친구의 어머니가 남은 평생을 홀로 살아가셔야 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난해서 면목이 없다고 아픈 딸에게 눈물을 보이던 연정의 어머니는, 딸의 죽음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 죄책감과 외로움으로 아마도 긴 겨울밤을 눈물짓고 계실 것만 같다.
그리고, '집으로…'의 할머니도.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 밖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스쳐 지나는 버스가 남긴 흙먼지 사이로 묵묵히 그 먼 길을 걸어 할머니가 모습을 나타내셨을 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꼬마가 미워졌다.
그리고 삶에 치여서, 수십년 동안이나 찾지 못했던 늙은 어머니에게 아들을 덜렁 맡겨 놓고는 다시 떠나버린, 그리곤 또 노모와 자식에 대한 죄책감에 자기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있을 꼬마의 엄마가 미웠다.
그리고 또 많은 것들이 미워졌다.
재래시장과 대형 할인마트가 비슷한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할인마트를 찾는다.
재래시장이 더럽거나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곳엔 물건 파는 분들과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또 푼돈이나마 깍아주거나 혹은 조금 더 얹어주는 사람냄새를 나는 안다.
그런데도 가기 싫어하는 건 시장의 어느 구석자리로 밀려나, 집 텃밭에서 가져왔을 것 같은 시들어가는 채소 몇 묶음을 길거리에 펼치고 있는 할머니들 때문이다.
그 분들을 보면, 홀로 사시는 어머니와 내가 무던히도 속을 썩였던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러면 내가 아주 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