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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봄,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조성된 불화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당시 조선 사회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정치 체제와 사회가 요동치고 나라 밖에서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크게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포함하는 ‘근대’는 100여 년에 불과하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불교회화는 현재 전해지는 한국의 불화 중 약 70%를 차지할 정도로 수량이 많으며 그 모습도 다채롭다. 전시실에서는 고산 축연古山竺衍(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활동), 금호 약효錦湖若效(?-1928)를 비롯한 대표적인 근대 불화승의 작품 20여 점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
|상반기 신규 전시품 소개
|2024.2.13.~7.21.
◆ 불화의 명인名人, 고산 축연
도1.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阿彌陀極樂會圖] 169.0×198.8cm, 비단에 색(絹本彩色),
축연(竺衍, ?~1930년 이후), 조선(朝鮮 19~20세기), 구 9356, 국립중앙박물관.
✵ 근대 불화에 나타난 새로운 표현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긍법:
연꽃과 모란이 꽂힌 청화백자와 금빛 향로/ 겹겹이 쌓인 책갑/ 짙은 음영법.
모란꽃을 든 아미타불과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무리를 그린 아미타극락회도阿彌陀極樂會圖이다. 꽃을 든 부처의 모습은 연꽃을 들어 가르침을 전했다는 석가모니불에서 주로 나타나는 도상으로, 꽃을 든 아미타불은 독특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 주변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비롯한 여섯 명의 보살, 열 명의 제자와 사천왕, 천자, 동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불단 뒤쪽에 아미타불을 에워싸고 있는 제자들과 사천왕의 얼굴에 뚜렷한 그림자를 표현한 것은 시대적 경향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의 앉아있는 불단에 연꽃과 모란꽃이 꽂힌 청화백자, 향로, 책갑 등의 기물이 놓여있다. 가로로 길게 확장된 불단과 그 위에 기물을 그려 넣는 표현은 근대기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근대기 대표 화승畵僧 고산 축연古山竺衍의 개성있는 도상과 강한 음영이 반영된 그림이다.
고산 축연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승으로, 외국인 선교사 에카르트Andreas Eckardt(1884-1974)의 책에 소개될 정도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었다. 1915년 『매일신보』 기사에서는 그를 석옹 철유石翁喆侑(1851-1917)와 함께 조선에 단 두 명뿐인 ‘불화의 명인’으로 소개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20세 때 평양 영천암의 성운性雲에게 불화를 배웠다고 한다. 금강산 유점사에 머물며 전국적으로 활동했고, 일찍부터 서양화의 음영법과 투시법을 활용하여 입체적인 표현을 시도했다.도1 민화나 신선도에 나오는 도상을 불화에 도입하는 등 일반 회화에도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2. 쌍월당 대선사 진영(雙月堂大禪師眞影), 축연(竺演,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활동),
조선 19-20세기, 비단에 색, 이홍근 기증, 동원 2588, 국립중앙박물관.
축연이 그린 <쌍월당 대선사 진영>은 이 시기 변화하는 화승의 자의식이 보이는 작품이다. 화면 왼쪽에 붉은 족자를 그려넣고 여기에 돌아가신 선사를 기리는 찬문을 썼는데, 족자의 맨 아래 동그란 축에 ‘혜산蕙山’이라는 글씨를 작게 써넣었다. 혜산은 축연이 1910년경까지 썼던 당호堂號이다. 정성들여 조성한 공양물로서의 기록인 화기畫記가 아니라, 화폭에 개인의 서명을 남기는 모습은 전통적인 불화 제작 관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승려 장인으로서 뿐 아니라 예술품의 창작 주체로서의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모습이 아닐까.도2
◆ 마곡사파 화승을 이끈 금호 약효
도3. 산신과 호랑이[山神圖], 금호당 약효(錦湖堂若效, ?-1928), 조선(朝鮮, 1886년),
비단에 색, 전체 156.0×108.5cm, 122.0×88.0cm, 구 8596, 국립중앙박물관.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그렸다. 큰 눈과 음영으로 처리된 주름은 산을 호령하는 위엄 있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서운 눈빛의 산신과 대조적으로 호랑이는 민화풍의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산을 다스리는 영물보다는 익살스러운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한국 근대 불화계를 대표하는 화승 금호 약효錦湖若效가 단독으로 그린 산신도다. 약효는 그림을 그리는 승려가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불화에 입문했고,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 유성有成의 초본草本을 모방하여 수천 장에서 수만 장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화승이 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여러 화승을 거느리고 불사佛事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불화를 그려 벌어들인 재화를 마곡사에 시주하기도 했다. 약효가 조성한 불화는 100여 점이 넘게 남아있으며, 현대까지 그의 화맥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금호당 약효 진영(錦湖堂若效眞影)’, 1934년, 면에 채색, 115.8×60.4cm, 공주 마곡사.
금호 약효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공주 마곡사麻谷寺에서 활동한 화승이다. 약효의 작품은 전국에 100여 점 이상 남아 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도3 약효는 제자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그가 마곡사에서 활동할 때 마곡사 화소畫所에는 130여 명의 화승들이 머무를 정도였다고 한다. 약효 아래에서는 뛰어난 화승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의 제자 보응 문성普應文性(1867-1954), 호은 정연湖隱定淵(1882-1954), 금용 일섭金蓉日燮(1900-1975), 명성 우일明星又日(1910-1998) 등은 근현대에 크게 활약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제자와 손제자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약효의 대표작으로는 합천 해인사海印寺 대적광전 석가모니불도釋迦牟尼佛圖(1885년), 화장사華藏寺 감로도甘露圖(1893년, 서울 호국지장사 소장), 진안 천황사天皇寺 대웅전 삼세불도三世佛圖(1893년), 예산 정혜사定慧寺 관음암 치성광불도熾盛光佛圖(1911년) 등이 있다.
도4. 인물 밑그림[人物圖 草本], 약효(若效, ?-1928),
조선 19-20세기, 종이에 먹, 53.6×33.4cm, 구 10335-1, 국립중앙박물관.
약효의 작품으로 <인물 밑그림>이 주목된다.도4 마주보고 서 있는 두 인물상을 자유로운 필선으로 그리고, 오른쪽 위에 “약효가 초를 내다[若效出草]”라고 적었다. 불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은 선을 또렷하게 그려서 위에 천을 덮고 베껴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그림은 인물의 얼굴 부분을 매우 가는 선으로 능숙하게 표현하고 옷주름을 자유롭게 그렸다. 불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연습 혹은 제자에게 그려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수지장삼존도(刺繡地藏三尊圖), 약효(若效, ?-1928), 1917년, 비단에 자수, 140×89.5cm, 서울 지장암.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 :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를 제작하려고 그린 밑그림이다. 목탄으로 전체 구성을 그린 후 먹선으로 세부를 그리고, 색을 참조할 수 있도록 각 부분에 한글로 ‘양녹’, ‘옥석’, ‘삼청’, ‘진홍’, ‘장단’ 을 적거나 한문으로 ‘백白’, ‘황黃’ 등을 적었다. 지장보살 주변을 가득 메운 광선과 구름 사이로 흐릿하게 목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살의 신광 여백에는 입과 턱수염을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초본과 화면 크기, 도상이 같은 작품으로 화승 보경 보현寶鏡普賢(1890~1979)이 출초하고 수사繡師 안제민이 수를 놓은 <지장암 자수지장보살도地藏庵 刺繡地藏菩薩圖>(1917)가 있다. 근대기에 제작된 자수 불화의 밑그림이 화승에 의해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 근현대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 보경 보현
보경 보현寶鏡普賢(1890-1979)은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화승으로, 서울 경국사에서 출가한 후 60여 년 간 전국 사찰에 60점 이상의 불화와 불상을 조성했다. 불교미술을 조성하는 일뿐 아니라 불사가 법식에 맞는지 감독하는 증명證明을 맡거나 사찰의 주지住持로서 사회 주요 인사와 교류하는 등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승려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현은 1922년부터 1979년 입적할 때까지 경국사의 주지로 있었다.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과 자주 교류했으며, 이 인연으로 1953년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함께 경국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때 보현이 법회를 개최하고 절을 안내했다.
도5.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 보경보현(寶鏡普賢), 20세기, 종이에 먹, 구 10276,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지장암 자수지장보살도地藏庵 刺繡地藏菩薩圖(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35호)는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자수지장보살도(1917년)로서, 청련 대좌에 가부좌를 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만을 간단하게 표현한 지장보살삼존형식을 취하였다. 조선말기의 대표적 시주자인 강재희姜在喜가 대화주로 참여하였으며, 서울 경국사의 화승 보경 보현寶鏡普賢이 출초한 초본을 바탕으로 수사繡師 안제민安濟珉이 수를 놓았다.
보경 보현寶鏡普賢이 그린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은 불화 제작 과정을 잘 보여준다.도5 목탄으로 전체를 그린 후 먹선으로 세부를 자세히 그리고, 각 칸마다 어떤 색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한글로 ‘양녹’, ‘옥석’, ‘삼청’, ‘진홍’을 적거나 한문으로 ‘백白’, ‘황黃’이라고 적었다. 지장보살 주변을 가득 메운 광선과 구름 사이로 흐릿하게 목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살의 신광 여백에는 입과 턱수염을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밑그림은 현재 서울 지장암地藏庵에 봉안된 <자수지장보살도刺繡地藏菩薩圖>(1917)와 화면 크기와 구성이 거의 유사하여, 근대기에 제작된 자수불화의 밑그림이 화승에 의해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 근대 채색인물화의 대가, 김은호
김은호金殷鎬(1892-1979)는 한국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채색화가이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근대기 최초의 미술 교육 기관인 서화미술회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만년까지 채색화를 지속적으로 그렸다. 그는 전통적인 화풍에 당시의 새로운 화풍인 서양화와 일본화 기법을 차용하여 개인 양식을 확립하였다. 산수화·화조화·인물화 등 다양한 화목을 모두 잘 그렸으며 특히 인물화에 능했는데, 1915년 순종 어진을 제작하면서 공인된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김은호는 초상화와 역사 인물화뿐 아니라 불교 관련 그림들도 제작했다. 조계종 2대 종정 청담靑潭(1902-1971) 등 불교계 인사와 교유를 지속하면서 ‘관음보살’과 같은 불교 주제의 그림과 승려 진영을 그리기도 했다.
도6. 승려 진영 밑그림, 김은호, 20세기, 종이에 먹, 구 10062, 국립중앙박물관.
김은호의 <승려 진영 밑그림>은 앉아 있는 승려의 모습이다.도6 조선시대 승려들의 초상화인 진영眞影처럼 비스듬하게 오른쪽을 보는 자세이다. 승려는 가사와 장삼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오른손에 석장, 왼손에 염주를 들었다. 먹선은 가늘고 간결하다. 염주를 쥔 왼손과 어깨의 옷자락, 그림 위쪽 빈 공간 등에 부분 부분 스케치 흔적이 남아 있다. 전통적인 조선시대 승려 진영의 표현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특유의 세밀한 인물 표현을 더한 작품이다.
근대기는 서양과 일본에서 유입된 다양한 시각 자료의 영향으로 불교회화의 도상과 표현 기법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전통적인 승려 장인의 자의식 성장과 동시에, 근대적 미술 교육을 받은 화가가 불교회화 조성에 참여하는 제작자의 다변화도 엿보인다. 다양성과 역동성이 넘친 근대기 불교회화를 전시실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천여(天如, 1794-1878) 등 4인, 조선 1873년,
비단에 색, 127.0×148.6cm, 구 3170, 국립중앙박물관.
지옥에서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모두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그 무리를 함께 그렸다. 중앙의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빛나는 보배 구슬을 들고 있으며 아래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해 서 있다. 영혼을 이끄는 사자와 지옥에서 영혼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과 판관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화승 중 한 명인 천여天如 등 4명의 화승이 조성했다. 천여는 18세기 대표 화승인 의겸義謙에 의해 형성된 전라도 지역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였다. 1794년 나주에서 태어나 15세에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했고, 17~18세에 본격적으로 도일道鎰 아래에서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한다. 그는 불화 뿐만 아니라 불상 개금, 단청 불사에도 뛰어났으며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아 선사禪師로도 명망이 높았다.
제석회도(帝釋會圖), 천여(天如, 1794-1878), 조선 1843년, 비단에 색, 건희 3992,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기증.
제석천은 인드라Indra라는 인도 힌두교의 신으로, 벼락을 신격화하여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다. 인도에서 유래한 제석천 도상은 불교에 수용된 후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忉利天을 주재하는 신이 되었고, 나라를 수호하고,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림 위쪽에는 손을 모아 합장한 제석천과 양쪽에서 협시하는 보살이 그려져 있으며, 하단에는 팔에 보검을 얹은 위태천이 수호하고 있다. 그림 위쪽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제석천을 둘러싼 도상들이, 아래쪽에 제석천을 수호하는 도상들이 배치된 구도는 천여와 스승 도일道日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천여 진영(天如 眞影, 1794-1878)’, 1864년, 비단에 색, 109.5×75.5cm, 선암사성보박물관.
관음보살도 초본(觀世音菩薩圖 草本), 도봉(道峰), 조선 19세기 말,
종이에 먹, 104.2×104.2cm, 덕수 5543, 국립중앙박물관.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배경에는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있는데, 이는 화면의 중심과 주제를 강조하는 구획 역할도 한다. 관음보살의 신광 주변은 위쪽과 아래쪽 2단으로 나뉜다. 아래쪽에는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용왕과 선재동자가 예배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삼존과 보살상이 있다.
이 밑그림에서 관음보살의 배경이 하늘과 바다 2단으로 나뉘는 구도, 구름을 탄 화불과 보살·천인 등 권속의 표현, 머리 끝까지 덮은 백의 표현 등 19세기 관음보살도의 특징이 보인다. 또 관음보살의 몸 전체를 두르는 거대한 원형 신광은 <강화 현등사 관음보살도>, <서울 보문사 관음보살도> 등 19-20세기 서울·경기 지역 관음보살도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관음보살도(水月觀音圖),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02.8×96.0cm, 구 8585, 국립중앙박물관.
파도치는 물결 위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보살 뒤로 초록색 두광頭光과 금빛 찬란한 신광身光이 드리워져 있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암반 양 뒤쪽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과 대나무가 그려져 있고,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화면 왼쪽 물결 위로 용왕이 나타나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선재동자가 공손히 두손을 모으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의 기나긴 구도의 여정 중 한 장면을 담았다. 자신을 찾아온 선재동자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고려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달리, 조선시대 관음보살은 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도순(道詢, 1840~1860 활동), 조선 1854년,
종이에 색, 188.0×118.7cm, 건희 4029,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기증.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초록색 둥근 두광과 신광 주변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뻗어 나오고 있다. 관음보살은 하얀 옷을 머리 끝부터 드리운 백의관음白衣觀音이다. 보살 뒤쪽 바위에 정병淨甁과 대나무가 그려졌고, 화면 앞에는 관음보살에 예배하는 용왕과 선재동자가 배치되었다.
화면 아래쪽 기록으로 1854년 화승 도순(19세기 중반 활동)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도순은 고창 선운사, 순천 선암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등 전라남·북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이 그림은 도순이 처음 수화승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 한규(翰奎, 19세기 후반 활동),
조선(朝鮮 1888년), 비단에 색, 111.3×169.0cm, 구 8589, 국립중앙박물관.
극락정토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아미타불, 협시인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표현한 삼존도이다. 부처와 보살 사이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작게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는데, 무수한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아미타불의 이름만 불러도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아미타정토신앙은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아 성행하였고, 이 내용을 담은 불화 또한 많이 제작되었다.
이 삼존도는 1888년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한규翰奎가 그렸다. 본존 아미타불 뿐만 아니라 보살들도 연꽃 대좌 위에 앉은 모습인데, 이는 조선 19세기경 화면이 가로로 길어지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화면 위쪽은 오색 구름으로 가득 메워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긍법(亘法), 석가삼존십육나한도(釋迦三尊十六羅漢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1897년, 면에 채색, 179×235cm, 남양주 불암사.
산령각 내부 중심 불단 좌측에 모셔져 있는 <남양주 견성암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1882년에 주지 봉성 서린이 화주로 주도한 불사에서 신정왕후 조씨神貞王后 趙氏(1809-1890)의 조카 풍양 조씨 조성하의 시주를 받아 혜고 봉간이 단독으로 조성한 불화이다. 신정왕후는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어머니로 풍양 조씨가 조선 말 세도정치를 할 수 있었던 핵심 인물이다. 당대 풍양 조씨 실력자인 조영하와 그 일가가 시주·발원된 사실을 통해서 풍양 조씨의 원찰願刹인 견성암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견성암 석가삼존십육나한도>는 화면 상단에 석가여래와 협시보살인 문수·보현보살 삼존을 배치하고, 화면 하단에 십육나한과 사자 2위를 배치한 구도로, 혜고 봉간이 불화에서 참신한 구도를 과감하게 시도한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자가 석가삼존십육나한과 함께 표현되는 것은 매우 특이한 도상이다. 화면 배경은 가장 윗부분에 도식적으로 표현한 적갈색 구름으로 채우는 이 시기의 일반적인 화면 배경을 사용하면서 화면 양쪽으로 청록산수의 진한 채색을 사용한 암석을 사선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민화의 일월오봉도에서 화면 양쪽을 채우는 형식과 매우 비슷하다. 고분법을 활용한 금니 사용과 다양한 화문을 활용한 섬세한 문양을 볼 수 있으며, 특히 나한의 착의법에 금니로 용문(龍紋)을 표현한 것은 매우 독특하다.
십육나한도(十六羅漢圖), 긍법(亘法), 계웅戒雄 등,
조선 19세기 후반, 사직에 색, 104.1×188.6cm, 신수 13566, 국립중앙박물관.
진리를 깨달은 수행자, 나한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며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제자들이다. 나한은 신통력으로 중생을 이롭게 해주었고, 옛 사람들은 나한에게 공양하면 현실의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19세기 후반 보암당普庵堂 긍법肯法이 그린 <십육나한>은 나무와 바위, 폭포로 이루어진 산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나한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그렸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굽이치는 파도 위에 앉아 있는 등 나한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3점의 작은 <나한도>, <호랑이를 쓰다듬는 나한>처럼 귀엽고 친근함이 느껴지는 나한상도 전시된다. 영상을 통해 옛 사람들이 나한에게 의지했던 마음도 살펴볼 수 있다.
한규(翰奎),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 1889년, 면에 채색, 225×369cm, 청도 운문사.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목조신중상(木造神衆像)’, 조선 19세기, 나무, 구 9958, 국립중앙박물관.
이 상은 사찰에 봉안되었던 제석천상 혹은 범천상으로 추정 된다. 나무로 깍아 만들었으며 구름문양이 그려진 푸른색의 보관을 쓰고, 하얀 얼굴을 하고 있다. 왼손을 들어 중지와 엄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렸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사진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손목 부분에 끼워진 손은 떨어지지 않도록 못으로 고정하였다. 또한 머리부분에는 종이로 추정되는 복장물(服藏物)이 남아 있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와 등, 바닥 부분의 복장공은 별도의 목재로 막고 못과 꺽쇠를 박아서 고정하였다.
* 복장물: 불상과 불화에 함께 봉안되어 신성성을 부여하는 상징물. 사리, 후령통, 다라니 등이 있으며 제작연도가 기록된 발원문도 함께 납입됨.
삼보패(三寶牌), 조선 18세기, 나무에 채색, 산수 15306, 국립중앙박물관.
삼보패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 또는 발원 내용을 적어 불단에 봉안하는 불교의식구이다. 불교에서 숭배하는 대상인 삼보三寶, 즉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존명을 적어 모시는 위패이다. 사각형의 대좌 위에 연꽃과 연잎이 솟아올라 펼쳐지고 그 위에 광배형의 위패가 우뚝 섰다. ‘시방삼보자존十方三寶慈尊’이라 적힌 구획을 따라 꽃과 구슬 장식을 늘어뜨린 듯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다. 뒷면에는 암산으로 둘러싸인 전각과 봉황, 용, 호랑이 등을 조각하여 정토를 표현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신문 제632호(박물관신문 제632호 2024년 04월 발행)/ 글: 김영희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