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불의를 응징하는 정의의 우화(Justice punishing injustice)’, 1737년, 유화, 161x133cm, 개인 소장.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털옷 입은 남자를 손으로 제압하고 있다. 여인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금색 방망이로 남자를 내려치려 하고 있다. 건장해 보이는 남자는 손에 칼까지 들었는데도 넘어져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고 무슨 상황인 걸까?
이 그림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마르크 나티에가 그린 ‘불의를 응징하는 정의의 우화’(1737년·사진)다. 그러니까 현실의 상황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테미스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테미스(Themis : 율법의 신)는 두 눈을 가리고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게 일반적이다. 눈가리개는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의미하고,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칼은 거짓과 불의를 단호하게 잘라냄을 상징한다. 그러나 나티에가 그린 테미스는 눈가리개가 없이 불의를 또렷이 응시하며 상대하고 있다. 불의는 테미스에게서 저울과 칼을 뺏어 자신의 무기로 삼으려 한 듯하다. 화가 난 테미스는 손 모양이 달린 금방망이를 들고 불의를 응징하는 중이다. 그 손은 칼보다도 강해 보인다.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나티에는 실존 인물을 고대 신화 속 인물에 빗댄 우화적 초상화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프랑스 부르봉 왕조 제4대 국왕 루이 15세(Louis XV)의 궁정 여인들을 그려 부와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은 루이 15세의 어린 시절 섭정한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Philippe II, Duc d'Orléans)의 아들 기사단의 프랑스 지부장 장 필립 도를레앙(Jean Philippe d'Orleans)이 1737년 주문한 것으로, 모델은 루이 15세의 딸 마리 아델라이드(Marie Adélaïde)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의의 아델라이드 부인’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정의의 여신,
이 그림에서 검과 저울은 정의(Justice)의 상징이다. 요즘의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검찰청에 있는 정의의 여신 조각은 공평무사(公平無私)를 상징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불의를 응징하기 위한 검을 들고 있다. 그래도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손모양의 몽둥이는 참 귀엽다. 그리고 정의의 검과 저울을 불의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의의 기준은 각자가 달랐을 수 있지만, 이 그림을 의뢰한 권력자도, 그림을 그린 화가도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18세기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건, 정의가 끝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인류 보편적인 미덕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의를 응징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프랑스) 자화상‘, 1740년.
✵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프랑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상을 입은 루이 15세 궁전 귀부인들의 초상화로 유명하다.
초상화가였던 아버지 마르크 나티에(Marc Nattier, 1642~1705경) 밑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15세 때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았다. 1715년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황후의 초상화를 그렸다.
1715~20년 표트르 대제를 위해 〈폴타바의 싸움 Battle of Poltava〉을 그렸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주제로 그림을 그려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됐다. 1720년 파산 직전에 이르자 다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상물에 솔직하게 접근하는 그의 화풍을 설명하는 좋은 예로는 〈마리 렉장스카의 초상 Portrait of Marie Leczinska〉(프랑스 디종 미술관)과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화가 The Artist Surrounded by His Family〉(1730)가 있다.
우의적으로 그린 초상화들 중에는 루이 15세의 딸들을 흙·물·바람·불의 4원소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그린 4편의 작품(1751,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이 유명하다.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퐁트브로 수도원의 루이즈 공주’,
1748년, 캔버스에 유채, 82×66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아델라이드 공주’, 1745년 이후, 캔버스에 유채, 104×141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의 1748년 초상’,
1762년, 캔버스에 유채, 146×113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이사벨라 드 보르본 파르마 공주(1741-1763)‘,
1749년, 캔버스에 유채, 158×115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왕세자비 마리 조제프 드 삭스(1731-1767)’,
1751년, 캔버스에 유채, 113×105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매듭을 만들고 있는 아델라이드 공주’,
1756년, 캔버스에 유채, 89×77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루이 조제프 자비에 드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1751-1761)’, 1754년, 캔버스에 유채, 130×97.5cm.
장마르크 나티에(Jean Marc Nattier, 1685-1776),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퐁파두르 부인’,
1746년, 캔버스에 유채, 101×82cm.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4월 04일(금)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