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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소녀#2
한일동.
우리집을 제외하고는 딱히 잘 사는 동네는 아니다.
한일동은 2층짜리 주택들이 다수인 평범한 거주지역이다.
다만, 최근에 의류점, 마트, 금은방 등 없는게 없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돈 이후로 집값이 오른다니, 장사하기 힘들어진다니 뭐니 이야기들이 많지만 평범한 동네이다.
오가는 차량이 뜸한 아스팔트 위를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작은 마트가 하나 나온다.
그렇잖아도 한산해서 조금 규모만 큰 슈퍼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이 곳도 사정도 힘들어질 것이다.
부모님이 모시는 카트에 올라타 먹고싶은 이것저것 집어 넣던 추억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끄응.. 김장철도 아닌데 배추값이 많이 올랐네.."
통장에 잔고라면 많다.
배추값이 작년 봄에 비해 30%가 올랐건, 300%가 올랐건 상관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알뜰한 장보기는 나와 같은 살림꾼에겐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복중에 하나이다.
"배추는 시장에 가서 사야겠네. 덤도 받을 수 있고"
"하암~ 그냥 아무거나 빨리 사서 먹으면 안될까?"
집안 살림을 모두 내가 도맡아 하는게 미안했던지 아수는 잠을 마다하고 나와 같이 장을 보겠다며 따라왔다.
"앗! 오빠, 우리 저거도 사자!!"
'전자레인지 30초 OK'라는 라벨이 붙어있는 핫도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 옷자락을 잡아끄는 아수.
아수 나름 나를 돕겠다고 따라온 것이겠지만, 사실은 방해된다.
"오빠아~~"
"알았어. 대신에 이게 정말 마지막이다?"
"응!!"
좀전까지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시무룩하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엄마한테 갖고 싶은 걸 사달라 끈질기게 졸라, 결국 승리한 듯한 얼굴.
수아가 웃는걸 보자 덩달에 나도 미소짓게 된다. 부모가 자식의 투정에 이기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까?
...
"으아!! 완전 맛있어!!"
'피식.'
한 손에 핫도그를 들고는 샤브샤브를 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아수.
핫도그와 샤브샤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진다.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
"응!! 배 터질 때까지 무진장 많이 먹을테니 걱정마!!"
많이 먹으란게 아닌, 천천히 먹으라고 한 말인데..
[다음 뉴스입니다. 일반엔 흔히 초능력자 학교라고 알려져있는, 사랑고와 평화고, 정의고의 대표들이 모여 사랑과 평화, 정의 구현을 위한 인재육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오빠?"
"..."
[이들 사화의* 대표들은 초능력자들은 시민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 아니며..]
(사회의* : 사랑고, 평화고, 정의고의 준말.)
"오빠!!"
"으.. 응?"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수가 다섯 손가락을 펼친 손을 내 눈 앞에 흔들고 있다.
"왜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하하.. 아냐 아무것도.."
평소 멍한 것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아수가 나보고 멍 때리고 있었다고 할 정도면 심각하다. 정신차리자!
...
[용문, 용문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을 위하여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The train for ...]
"너무해.. 아침에는 샤브샤브 2탄을 먹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고기라니.."
"그치만 어젯밤에 다 먹지 못한 원수를 갚아야한단 말야!!"
'맛있는 샤브샤브~ 맛좋은 샤브샤브~ 사랑스런 샤브샤브~'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는 원수란다. 이것이 바로 애증의 관계란 말인가?
...
"우와?!! 한성아, 축하한다!!
"아, 부럽다 임마!!"
"짜식, 출세길이 열렸네"
"하하하.. 아직 그렇게 축하해주기엔 일러.. 나도 뭐랄까.. 아직 현실감이 없거든.."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교실 구석에서 웅성거리고 있던 패거리 중 한 명인 유성이가 나에게 다가온다.
"아랑아! 얘기 들었냐?"
유성이는 몹시 흥분한 상태로 무언가 말하지 못해 안달난 것 같다.
인사도 건너뛰고 대뜸 무슨 얘기를 꺼내려 하는걸 보니 말이다.
"안녕? 무슨 얘기?"
"한성이가 사랑고에 스카웃 제의를 받았데!"
스카웃 제의?
"초능력자 학교에? 한성이가?"
"그래! 얼마전에 초능력을 각성했다나봐!!"
스카웃이 아니라 감시겠지.
초능력이라는게 관리가 안되면 위험한거니까.
말이 좋아 스카웃 제의지 사실은 반 강제적인 것으로, 거절하면 앞으로 인생이 매우 피곤해진다.
유성이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한성이는 자랑스러운 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3교시만 마치고 한성이는 사랑고로 간다고 한다.
난 우리 반 아이들의 틈 속에 섞여 한성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나왔다. 검은 양복들이 좌우로 정렬해 있고, 그 끝엔 검은 리무진 세 대가 주차해있다.
고작 초능력자 한 명의 마중을 위해 이렇게 화려하게 판을 벌인건가? 실상이야 어찌됬건 대외적으로 공식 초능력자가 받는 대우는 상당하다고 한다.
하긴, 막 대하다가 다른 초능력자들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숨기기라도 하면 골치아프니 그렇겠지.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할 때 쯤, 리무진의 문이 열리며 한 중년 남성이 내렸다. 주먹코에 머리가 홀라당 벗겨져 있는, 중년 사내였으나 어설프게 대머리를 숨기려 하기 보단, 훤히 드러내놓아 대머리는 대머리 나름 그에게 어울렸다. 왠지 전형적인 교장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김한성군, 환영하네!"
"열렬한 환영, 감사드립니다. 교장 선생님"
...
"아랑아?"
"..."
툭.
"아랑아!"
"으응?"
유성이다.
"왜 그렇게 멍해있어?"
"아.. 그래? 내가 그랬었나? 하하.."
"한성이랑 헤어지는게 아쉬워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요즘들어 자주 정신줄을 놓는 것 같다.
아수에게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정신차리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휘휘 저었다. 괜히 어지럽군.
"..."
"아랑아?"
얼굴을 들자, 사랑고의 교장, 신광혁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한성이와 악수를 하고 있던 손을 놓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게 아닌가?
"유아랑군?"
"..."
"하하하!! 아랑이 맞구나!"
"... 오랜만이네요.."
교장이 나를 보며 아는 척을 하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도 교장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자네 왠지 삐진 것 같은데? 하하하!! 미안하네.. 자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로서.. 자네를 친 아들처럼 챙겨주려 했건만..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이렇게 되버렸네."
"괜찮습니다. 항상 저에게 신.경.써주시고 계신다거.. 잘 알고 있으니까요"
"허허허, 미안하네.. 요즘 지낼만 하고?"
"덕분에요.. 아수와 둘.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껄껄껄, 다행이구만."
"천만에요."
뭔가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사람 어릴 때는 정말로 많이 봤었다.
딱히 우리집에 자주 방문했다거나 그런건 아니고, 어쩌다 길거리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곤 했던 정도?
"하하하! 이거 오랜만인데 아쉬워서 어떡하지?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조만간 한 번 찾아가도록 하마."
"바쁘시면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그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도록 하자꾸나. 하하하!!"
"..."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교장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건가? 이봐, 당신 등 뒤에서 한성이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데?
"흠흠, 그럼 이만!"
내가 손을 마주 내밀지 않자, 교장은 어색해진 오른손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성이에게로 향하는 교장.
근데, 방금 그 미소.. 무척 기분 나빴어.
...
"오빠,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기로 했어. 먼저 가~"
"그래.."
라고 하고 나도 모르게 보내줄 뻔했다.
덥썩.
"어디가?"
"치.. 친구들이랑 놀러.."
묘하게 들떠있다가 내가 붙잡자 말을 더듬는게 수상하다.
"누구랑?"
"지수랑.. 그 외 기타 등등.."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놀토. 더 수상하다.
"그러니까 어디? 누구?"
복도 끝에 지수가 보이는걸로 보아, 지수랑 놀러 가는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수상한 낌세를 보이는데 그냥 보내줄 수야 있나.
그러나 다음 순간 깊은 숨을 들이마시는 아수.
"꺄악! 치한이야!!"
"으응?"
치한? 어디?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감히 누가 신성한 배움의 터전에서 대놓고 그런짓을..
"도와주세요!!"
음?
웅성웅성..
뭔가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
휘익!
"야, 야! 아수 너! 거기 안서?!!"
내가 당황한 틈에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아수.
"헹, 메에롱~"
뒤돌아서 혀를 빼꼼 내밀도 도망가는 아수. 저거 틀림없이 오늘 외박이다. 들어오면 죽었어!
...
"..."
아, 이런.. 열쇠를 안가지고 나온건가.
'담을 넘을까..'
라고 잠깐 들었던 생각을 휘휘 쫓아낸다.
평범한 동네에 초호화 저택이라니.. 당연히 도둑들의 목표물이 되기 좋은 집이다.
그런만큼 이런저런 방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난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예전에 한 번, 아수가 자기가 새로 고안안 시스템이라며 나를 상대로 실험했을 때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다.
확실한건 위험하다는 거다.
아무리 방범 시스템이라도 사람에게 해가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아수가 고안한 시스템의 제1목표는 도둑을 잡는게 아니라, 도둑을 내쫓는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던 적은 없다.
어디 쥐어터지고 내쫓긴 도둑놈이 집 털려다가 다쳤다고 신고할 수 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흉악한(?) 방범 시스템은 아직까지 떡하니 우리집에 버티고 있다.
'아무도 없지?'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살폈다.
다행히 늦게까지 장을 보다 왔던 탓에 주위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인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대문에 살며시 손을 가져 대었다.
'언락(Unlock)'
"삐이-. 인식되었습니다. 눈을 가까이 대주세요. 삐이-. 인식되었습니다."
열쇠로 열면 2차로 홍체를 인식하는 잠금장치.
최첨단 과학으로 만들어진 잠금장치였지만 내가 손으로 한 번 쓸자 손쉽게 열렸다.
사물의 구조 해석과 그에 맞춘 변형.
나에겐 간단한 일이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ㅎㅎ 조금 사기적인 초능력의 소유자예요. 근데 주인공 초능력을 뭐라 이름붙여야 될지 아직 모르겠네요 ㅠㅠ
초능력이름 쌍콤한걸로다가 하나 생각해 보세요 ㅋㅋㅋㅋ생전 듣도보도 못한 맛깔난걸로 ㅋㅋㅋㅋ
끄응.. 저도 사실 요즘에 그거 때문에 고민입니다. ㅠㅠ 뭐로 해야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