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뱀 구두
김혜영
금요일 저녁에 앤디 워홀을 만났어
그는 공방에서 초록 뱀 구두를 디자인했지
그의 금발 머리카락이 솟구쳐 내 동공을 찔렀지
초록 뱀 구두를 신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어
발등에 도마뱀 비늘이 돋아났지
아무 말도 못 하고
비밀의 정원에 숨었지
미루나무 그림자 아래 뭔가 휙 지나가는데
바람결에 앤디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아름다움은 복제되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 놀란 목련 꽃잎이
툭, 발 앞에 떨어졌어
앤디가 내게로 걸어와
목련 꽃잎을 주워 건네주었지
머리를 왼쪽으로 갸우뚱 기울이며 말했지
"살짝, 치마를 올리면
발목이 가늘어 보일 거예요"
초록 뱀 구두는 삼각형
창문에 담긴 하늘은 사각형
미루나무 잎사귀의 숨소리를 들었을까
앤디는 구두코를 어루만지고
초록 뱀은 스르르 미끄러지고
미루나무 잎사귀 창문에서 사라졌어
푸르스름한 음악이 번지는 정원
초록 뱀 구두를 신은 유령들이 지나갔지
—《포지션》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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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 경남 고성 출생. 199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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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뱀 구두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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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7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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