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의 애인은 따듯한 손과 긴 속눈썹을 가졌다. 아사코는 그가 잠들 때마다 조심스레 그의 속눈썹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손끝에서 떨리는 속눈썹의 나약함을 동경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애인은 수시로 선잠에 들곤 하는데, 그의 입에서 희미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 꿈을 꾸나 보다. 아사코는 그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자신을 지운 의식 속에서 그렁그렁한 물기가 거울처럼 그를 비추인다. 그는 지금 파리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 죽도록 미운 이에게 권총을 겨누며 뇌세포와 기분에 따른 상관관계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아사코는 자신의 창의적인 거짓말을 좋아한다. 거짓말의 타당성에 대해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누구나 들으면 설득될 수밖에 없는 뾰족한 입술로. 며칠 뒤에는 벼랑 위 식물원에 도착한다. 아사코는 이름 모를 가득한 꽃들이 꼭 자신의 거짓말처럼 아름답다 생각한다. 꽃들은 나약하고 중세의 끔찍한 고문 기계처럼 아찔하다. 애인이 좋아하는 천변은 멀리 있다. 소리는 부유하는 기억 속에서만 들린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이나 미운 이의 옷자락을 뚫고 가는 파열음 같은 것들을 아사코는 편집한다. 빛을 배반하는 그림자를 삽입하고 수치스러운 두개골의 장래를 지워 버린다. 기적이라는 건 만년설이 쌓인 미래 같은 것. 그 속에 맥락 없이 존재하는 벼랑은 신의 장난질이지. 무언가 빠르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손끝에서 분명한 통증이 인다. 애인은 갈증이 나는지 침 마른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소리는 허공을 지우는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이 멀어진다. 이제 아사코는 물 잔을 건네며 말한다. 일어나. 반세기가 지났어. 애인의 따듯한 손이 아사코의 손을 잡는다. 생물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빛이 커튼 위를 넘실거린다. 잔상이 할퀴고 남긴 숨소리들. 창틀 위 선인장에는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이 피지 않는다. 조금 전 애인의 숨소리는 이제 애인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머나먼 오늘의 일처럼. 아사코의 투명한 거짓말처럼.
― 박은정, 『아사코의 거짓말』, 타이피스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