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말이 있다. 당나라 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하여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괴안국(槐安國)이란 개미나라 사신의 초청을 받아 집 마당에 있는 회화나무 구멍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그곳에서 공주와 결혼도 하고 태수가 되어 온갖 호강을 누린다. 꿈이란 언제나 깨어나기 마련, 눈을 떠보니 바로 자기 집 마루였다. 마당으로 내려가 회화나무를 베어 조사해 보고서야 꿈속에서와 똑같은 개미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로또복권의 당첨발표를 기다린 나날이 길었다면, 월요일은 남가일몽 이야기처럼 정말 허망한 날일 것이다. 그래도 꿈은 희망으로 이어져 좋다. 우리나라 4그루의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중 전쟁터에 나가는 청년이 기념으로 심었다는 경북 안강의 회화나무 한 그루를 찾아가 본다. 경주와 포항 사이에 안강읍이 있다. 읍을 동쪽으로 빠져나와 기계읍으로 가는 68호 지방도를 달린다. 넓은 들판 가운데로 난 직선도로를 약 6km쯤 가다가 왼편으로 육통리 입구가 보인다. 나무는 200여 호가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의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언제부터 마을이 생겼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여러 성씨가 섞여 살아서 사람들이 정착한 연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옛날에는 마을의 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류에서 떠내려온 나무를 건져서 심은 것이 자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 나무에는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한 청년의 이야기가 애잔하게 전해진다. 때는 고려 공민왕 시절, 이 마을에 김영동이란 한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당시 중국대륙에서 홍건적이 침입하여, 1361년에는 임금이 안동까지 쫓겨 내려오는 수모를 당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서해안에는 왜구가 극성을 부려 강화도가 점령을 당하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이다. 학살과 노략질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들려오는 소문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는 싸움터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마을을 떠나면서 그를 돌봐줄 징표를 하나 남기고 싶었다. 귀족들이 즐겨 심는 품격 높은 회화나무가 머리를 스쳐갔다. 자그마한 회화나무 묘목 한 그루를 심고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보았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일 뿐이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잘 가꾸어져 오늘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이는 이 전설을 근거로 600년으로 추정한다.
이 나무는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인근의 경주를 비롯하여 멀리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소원을 빌기도 한다. 정월 14일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올린다. 이때는 집집마다 황토를 모아 두었다가 한줌씩 가지고 나와 정성스럽게 나무에 뿌려 주며 나무의 만수무강을 빈다. 그래서 나무 밑에는 언제나 황토가 깔려 있다. 토양개량제로서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음을 알고 시작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무 높이는 19m, 가슴높이 둘레는 6.2m로 두 아름이 조금 넘는다. 뿌리목 둘레는 8.3m, 가지 뻗음은 동서 15m, 남북 21m 정도이다. 나무의 모양은 땅에서 2m 높이에서 줄기가 둘로 갈라져 있고 각각 두 아름이 넘는 둘레를 가진다. 마을 전체를 굽어보고도 남는 거대한 덩치로 지나온 세월의 영욕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노거수들의 공통적인 질곡을 이 나무는 더욱 아프게 겪고 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터는 고작 10여 평 남짓. 그나마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해 버린 쓸모없는 땅이다.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아무도 배려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외과수술이란 이름의 부실 충전처리는 노구의 지탱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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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나무뿐이 아니지요. 계림의 회나무도 외과수술이 엉망이지요. 지난번 매미때도 살아남은 나무인데 고연한 외과수술이라니...안강의 회나무도 디디고 설 땅이 없이 온통 시멘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