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직생활 중 가장 부끄러운 일의 하나가 점암에서 동강으로 불법전근한 일이다.
86년 3월에 발령이 나 87년 9월 1일자로 중간에 동강으로 옮겼다.
선성수 교감선생님 사모님꼐서 전화를 받으시며 '어찌 그런 일이 있다요?'하시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6학년 1학기만 맡다 온 아이들이 영 마음에 남았다.
점수던가 정오던가 편지에 '이제 우린 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바뀌었어요.'라는 말도
남는다.
내가 민주주의를 그 아이들한테 보장하지도 못했지만, 그들과 같이 놀아주기는 했다.
소위 민중가요라는 것도 서툰 풍금으로 가르쳤고, 리코더도 교과서 외의 노랴를 더 많이 불었다.
부임 2주차엔가 일요일에 왕삼이 형제와 재영이를 따라 팔영산을 오른 이후
나 혼자도, 한결이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참 많이 올랐다.
그 땐 사자봉으로 오르는 절벽에 철계단 하나만 있고 어디에도 밧줄하나 받침하나 없었다.
그 아이들은 소 뜯기며 '사그네'(사은회, 5학년들이 졸업생을 위한 잔치를 베품)를 할 때
떡을 짊어지고 올라왔다고 했다.
염치없이 내 반도 아니었던 김정희한테 정오 점수를 보고 싶으니 퇴직 핑계로 연락을 해 달라고 했다.
어머니 부고를 제한했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너무 각박한 것 같아 이 기회에
나도 보고싶은 아이들 보고 그들도 자기들끼리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도 해서다.
처음엔 정오 점수에 은정이나 모동 경희가 참석하겠다 했다.
난 생고부대 생각이 나고, 봄소풍때 탑재에서 매를 때린 종훈이 병운이 등이 생각나 들먹인다.
종훈이는 연락이 됐다하더니 곧 종훈에게 전화가 왔다.
병운이는 나더러 연락하라기에 전화했더니 정희와 연락하겠단다.
13일 무등산에서 내려와 기다리는 시간이 설렌다.
망각이 심해 양복 자켓을 가져오지 않은 게 영 마땅찮다.
등산복 바지에 스카우트 면벨트를 하고 셔츠도 등산복이다.
다행이 크게 튀지는 않지만 꼴이 영 아니다. 집 앞 세일가게에 나가 등산수건을 물으니 없댄다.
맘에 들지 않은 수건과 퇴임문집을 몇권 챙겨 차를 끌고 금수장으로 간다.
6시 5분전쯤 두손으로 책과 수건을 안고 2층으로 올라가니 은정이와 주영이가 와 있다.
상도 3개다.
은정이는 눈시울이 붉어지려 한다. 국민학교 때의 사진을 가져 와 날 보여준다.
작은 사진에 나의 옛모습도 보인다.
그들에게 남아있을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교실 등 학교에선 아닐지 모르지만 난 그들을 배반하고 도망쳐 버렸다.
파란 양복에 늘씬한 종훈이가 예쁜 부인과 함께 선물을 들고 왔다.
정오가 왓다.(순서는 모르겠지만 점수와 일동이가 조금 늦게 왔다)
6시가 넘어 바쁜 정희가 꽃다발과 프랑 상패 등을 들고 온다.
빨간 병풍위로 프랑을 걸고 정희가 사회를 본다.
종훈이가 일어나 인사를 한다. 정희가 일산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식사도 했다한다.
그가 고등학교 때 내게 쓴 편지에 안써야 할 말을 써 죄송하다는데 난 기억에 없다.
답장은 했을거다.
점수가 오자 그에게 공로패를 읽어라 한다.
투명한 유리에 새겨진 글씨 읽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서 내용이 잘 전해져 온다.
난 두손을 맞잡고 할말이 없다. 스승의 은혜 노래도 불러준다.
나의 이야기 시간인데 지나 온 경과만 조금 말한다.
이럴까봐 미리 글을 쓰기로 했는데 마무리 못해 게으른 내 모습이어서 싫다.
(마무리 못한 글을 첨부한다. 언젠가는 완성된 편지를 보낼 것이다.
)
모두들 돌아가며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그들이 살아 온 건강함을 본다.
모두 자랑스럽다.
일동이는 고고학을 공부해 학예연국사가 되어 고흥군청에 있다는데 그도 몰랐다.
지역에서 아이들에게 문화역사를 안내하고 있는 은정이나, 건축사이면서 사모님이라는 주영이
정오의 문화패, 점수의 사회운동과 10월에 결혼을 한다는 맘ㄹ에는 박수를 보낸다.
전주에서 초등교사를 한다는 명석이는 느닷없는 연락을 받아 일정이 겹친다.
고급 음식이 계속 나오는데 난 술 마시기 바쁘다.
종훈이도 정오도 정희도 일동이도 모두 술을 잘 마신다.
무등에서 내려 온 나도 겁없이 마신다.
점수가 열차시각이 다 되어 일어난다고 한다.
내일 기타 공연이 있댄다. 그는 반가대회에서 지휘를 했었고, 리코더를 잘 불었다.
식당 일꾼에게 대리운전을 부르라 한다.
아이들이 꽃다발과 선물을 차에 넣어준다.
난 어떤 선생이었을까?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취한 채 돌아오는 길이 마냥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