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농구를 좋아하기 시작한건 초등학교지나 중학교에 다닐 즈음으로
기억된다. 80년대인 그때는 거의 현대와 삼성 이 두팀이 우승을
놓고 실업팀의 최강자를 가렸었다.
나는 어떤 계기는 없고 내 기억에 현대가 몇번 우승을 더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조금 약자라고 혼자 생각한 삼성을 응원하게 됬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농구의 일인자라 불리는 현대의 이충희에 가려진
김현준이라는 탁월한 슈터가 있어 더 그랬던거 같다.
신동찬? 조동우? 임정명, 박인규 정말 그땐 팬레터에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내게는 저 멀리서나 볼 수 있는 우상같은 존재였었다.
그리고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몇십년만엔가 이기고
금메달을 따서 팔짝팔짝 뛰던 그 시절의 선수들.....
그리고 그 후 주욱 우리나라 남자농구는 항상 중국에 밀려 있다
이번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만리장성을 넘어 다시 금메달을 땄다.
그렇게 농구팬임을 자청하던 내가 대학교 다닐무렵부터90년대엔
중앙대와 기아농구팀이 거의 대학과 실업의 우승단골이었다.
이때는 우상으로만 보이고 아저씨라 불리던 농구선수들이
정말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나이트가면 부킹도 서로 하는 그런 연배들이 되었으니까..ㅎㅎㅎ
(이거 우리 신랑 보면 안되는데^^)
그리고 다시 대학농구 붐이 일어 연세대와 고려대의 대결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었다.
서장훈 우지원 이상민, 그리고 우리 코치님도 있었지.
그리고 고려대엔 현주엽 전희철 김병철
난 그무렵은 오성식선수를 좋아했었던거 같다.
그러다 농구에 예전만큼 관심이 덜 가던 어느날
신문에서 내가 한때 우상으로 생각하던 김현준선수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은 참 많은 충격과 슬픔을 주었다.
이제 벌써 삼년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이맘때면
한때 우리나라농구의 기둥이고 정말 탁월한 천재였던 그사람이
생각난다. 그사람은 갔지만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팬들의
사랑속에서 그사람의 발자취는 영원히 없어지는것이 아니라는걸 느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 유명인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나의 발자취나 흔적은 그걸 기억하는 남아있는 사람에겐 결코 헛되거나 없어지는게 아닌.
그래서 오늘 하루 그리고 남아있는 내게 주어진 날들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을 섬기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그렇게 다짐한다. 나 스스로에게....
오늘탄생하신 예수님도 세상에 오신것은
우리를 섬기려 오신것임을 잊지않는 성탄절이 되길 바라며...
용인 아줌마가 끄적거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