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을 만나는 시간 - 배은주(마음의극장 편집인)
봄은 늘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절이 바뀌는 줄 알면서도 종종 그것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바쁘게 살아내느라, 견디느라, 하루를 버텨내느라 마음의 계절을 돌아볼 여유 없이 시 간을 지나오기도 합니다.
『마음의 극장』 2026년 봄호 역시 그런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어느덧 초여름의 문턱에 가까워진 5월, 조금 늦은 봄호이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다시 움직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봄호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는 “다시”였습니다.
다시 사람을 만나 고, 다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시 몸의 기억에 귀 기울이며,
다시 관계 안에 서 살아갈 용기를 내는 시간.
이번 호에 실린 글들 속에는 그런 “다시 시작되는 움직 임”들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이번 호는 한국 전통문화 속 해학과 카타르시스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엽니다.
우리 는 오래전부터 웃고 울며 살아왔습니다.
탈춤과 굿, 놀이와 난장 속에서 사람들은 억 눌린 감정을 풀어내고 함께 견디며 살아갈 힘을 만들어왔습니다.
웃음은 단순한 즐거 움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방식이었고,
눈물은 마음을 씻어내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진혜전 TEP 선생님의 글은 이러한 한국적 정서와 사이코드라 마의 치유적 본질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사이코드라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발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학회 소시오드라마분과에서 제공한 박낭규선생님의 번역 원고 「자발성 인간의 발견」은
모레노가 왜 인간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중요하게 바라보았는 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이사무엘 학술위원장님께서 미국 학회지 오픈아카 이브에 대한 소개 글은,
기록과 연구가 어떻게 다음 세대와 공동체를 연결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져줍니다.
이번 호에서는 몸과 관계외상,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도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우리는
- 4 -흔히 상처를 기억 속 사건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몸은 오래된 감정과 관계의 경험 을 기억하고 살아갑니다.
반복되는 불안과 긴장,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위축감은
때로 몸 안에 남아 있는 생존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TEP선생님들의 추천 도서 『관계 외상의 치유』,
『몸은 기억한다』, 『무언의 목소리』는 사이코드라마를 공부하는 분들에게
몸과 관계, 감정과 회복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봄호에는 “처음 사이코드라마를 만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낯설고 긴장되었던 첫 경험, 무대 위에서 처음 감정을 표현했던 순간,
잉여현실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다시 마주했던 기억들….
누군가는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자신의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누군가는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의 크기를 처음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국월례회와 워크숍, 지부 활동과 연구소의 공간 안에서 다시 연결됩 니다.
지역의 작은 모임에서, 무대 위 장면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람들은 조금씩 회복되어 갑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사이코드라마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연결하는 작업이 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음의 극장』은 단순한 소식지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남겨가는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첫 경험, 한 편의 번역, 한 지역의 월례회, 누군가의 치유와 성찰이 모여
지금의 학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또 다른 누군 가에게 닿아 새로운 시작의 용기가 될 것입니다.
봄은 어쩌면 특정한 계절이 아니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음의 상태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했더라도, 지금 우리의 마음 안에서 다시 시작된다면 그것으 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번 봄호가 독자 여러분에게도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르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무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5월 봄의 끝자락에서 - 배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