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재 金容宰 (1896 ~ 1945)】 "1920년 만주 애국청년혈성단 활동, 광복군 제1지대 제1구대장 "
1898년 4월 22일 전라남도 담양(潭陽)에서 태어났다. 김준(金俊), 김종(金鍾), 김종(金宗), 김복돌(金卜乭)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후 만주로 넘어갔다. 1920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냐오윈현(鳥雲縣) 페이다둔(倍達屯)에서 조직된 애국청년혈성단(愛國靑年血誠團)에 가입하여 서무부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난징(南京)으로 옮겨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1926년 의열단의 노선이 의열투쟁에서 정규전으로 전환되자, 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광저우(廣州)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로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졸업하였다. 졸업 후 중국군 고급장교를 지냈다. 중국 북벌군의 우한(武漢) 점령 후 우한 지방의 한인 통일기관인 유악(留鄂)한국혁명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대 초반 의열단계열이 항일군사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의 군사교관으로 전술학과 사격교범 등을 가르쳤다.
1934년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의 중국군 제3군 교도사 장교로 복무하였다. 1935년 난징에서 성립된 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41년 3월 충칭(重慶)에서 김원봉 등과 민족혁명당 제1특별구당부를 조직하고 선전부에서 활동하였다.
1940년 조선의용대 전방공작대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자 제1지대 제1구대장으로 선임되었다.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하고 1945년 12월 상하이(上海)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