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解說(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해설)
〈추수秋水〉는 가을의 큰 홍수[대수大水]의 뜻인데, 앞뒤의 여러 편들과 마찬가지로 편 앞의 ‘秋水’ 두 글자를 따서 편명으로 삼은 것이다.
제1장에 보이는 하백河伯과 북해약北海若의 긴 문답은 〈추수秋水〉편 전체의 반이 넘는데, 이 제1장은 〈소요유逍遙遊〉편 제1장과 〈제물론齊物論〉편 제1장 등을 이어받아 새로운 사상을 전개한 문답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사상이란, 제물론적齊物論的인 무無에 대한 비판, 지식론知識論으로부터 실천론實踐論으로의 전개, 인식론적 제동齊同으로부터 존재론적 제동齊同으로의 이행, 무위無爲의 제창, 도道를 아는 것은 사람[인人]이 아니고 자연[천天]이라는 주장 등이다.
제5장과 제6장에서는 장자莊子 자신이 설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전기傳記 자료가 많지 않은 장자의 생애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제7장에서는 논리학에 의한 것이 아닌, 직관直觀에 의해 대상을 파악하는 장자莊子를 묘사하고 있다.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20180911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1(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1)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머무는 곳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버러지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사는 때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곡사曲士(전체를 모르고 일부만 아는 사람)에게 도道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교리敎理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장-1 해석]
가을이 되자 물이 불어나 모든 물이 황하로 흘러들어 출렁이는 물결의 광대함이 양쪽 기슭에서 〈건너편〉 물가에 있는 소와 말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때에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흔연欣然히 스스로 기뻐하여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서 북해北海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더니 〈아무리 보아도 망망대해가 보일 뿐〉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이때에 하백河伯이 비로소 그 얼굴을 돌려 멍한 눈으로 북해北海의 신神 약若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간의 속담에 이르기를 ‘도道에 대해 조금 들었다고 세상에 나만 한 사람이 없다고 우쭐댄다.’고 했는데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일찍이 중니仲尼의 견문見聞을 적다 하고 백이伯夷의 의義로운 행동을 가벼이 여기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더니만, 지금 나는 그대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광대廣大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의 문門에 이르지 않았던들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나는 〈하마터면〉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길이 비웃음을 당할 뻔했습니다.”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머무는 곳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버러지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여름 버러지가〉 자신이 사는 때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곡사曲士에게 도道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곡사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교리敎理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는 황하의 양쪽 기슭 사이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마침내 그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함께 커다란 도리道理에 관해 이야기할 만하다.”
秋水時至 百川灌河 涇流之大 兩涘渚涯之間 不辨牛馬
於是焉 河伯欣然自喜 以天下之美爲盡在己
(추수시지하야 백천관하하야 경류지대 양사의 저애지간에 불변우마러니
어시언에 하백이 흔연자희하야 이천하지미로 위진재기라하야)
가을이 되자 물이 불어나 모든 물이 황하로 흘러들어 출렁이는 물결의 광대함이 양쪽 기슭에서 〈건너편〉 물가에 있는 소와 말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때에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흔연欣然히 스스로 기뻐하여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 추수시지秋水時至 : 시지時至는 물이 때에 맞춰 불어남.
☞ 백천관하百川灌河 : 백천百川은 백 가지 하천, 곧 모든 하천을 표시하는 수사이다. 관灌은 ‘물을 댐’이다. 이 두 구절의 의미는 “배움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단계여서 아직 대도에 이르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여해경呂惠卿)
☞ 양사兩涘 : 사涘는 기슭.
☞ 저애지간渚涯之間 : 저渚는 모래톱. 애涯는 물가.
☞ 불변우마不辨牛馬 : 어떤 물체가 소인지 말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워낙 멀어서 소나 말처럼 큰 사물들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하백河伯 : 황하의 神. 백伯은 장長의 의미.
☞ 천하지미위진재기天下之美爲盡在己 : “황하가 이미 광대해졌기 때문에 흔쾌히 기뻐한 것이니, 천하의 영화와 성대한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 것이다.”(成玄英)
順流而東行 至於北海 東面而視 不見水端
於是焉 河伯始旋其面目 望洋 向若而歎曰
(순류이동행하야 지어북해하야 동면이시하니 불견수단이어늘
어시언에 하백이 시선기면목하야 망양하고 향약이탄왈)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서 북해北海에 이르러 동쪽을 바라보았더니 〈아무리 보아도 망망대해가 보일 뿐〉 물의 끝을 볼 수 없었다.
이때에 하백河伯이 비로소 그 얼굴을 돌려 멍한 눈으로 북해北海의 신神 약若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 북해北海 : 굳이 특정지역을 가리키는 해역의 명칭으로 보기보다는 황하가 맞닿아 있는 동해의 일부. “제자백가의 사상가들이 비록 자신의 도를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할 줄 알지만 어찌 성인의 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겠는가. 이것이 장자가 하백河伯이 동쪽으로 흘러갔다가 북해에 이르는 이야기를 한 까닭이다.”(王雱), “장자가 북해를 가지고 성인의 도를 비유했고 황하의 가을 물을 가지고 백가의 학술을 비유했다.”(陳祥道). 맹자孟子 진심盡心 상上에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보시고는 노나라를 좁다고 여겼고 태산에 올라 보시고는 천하를 좁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물에 관해 말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닌 사람에게는 훌륭한 말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의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 약若 : 해신海神의 이름.
野語有之 曰聞道百 以爲莫己若者 我之謂也
且夫我 嘗聞少仲尼之聞 而輕伯夷之義者 始吾弗信
今我 睹子之難窮也 吾非至於子之門 則殆矣 吾長見笑於大方之家
(야어에 유지하니 왈 문도백하고 이위막기약자 아지위야로다.
차부아 상문소중니지문 이경백이지의자하고 시오불신이어니
금아 도자지난궁야호니 오비지어자지문이런들 즉태의라 오장견소어대방지가랏다)
“세간의 속담에 이르기를 ‘도道에 대해 조금 들었다고 세상에 나만 한 사람이 없다고 우쭐댄다.’고 했는데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일찍이 중니仲尼의 견문見聞을 적다 하고 백이伯夷의 의義로운 행동을 가벼이 여기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더니만,
지금 나는 그대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광대廣大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의 문門에 이르지 않았던들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나는 〈하마터면〉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길이 비웃음을 당할 뻔했습니다.”
☞ 야어野語 : 속어俗語.
☞ 문도백聞道百 : 도를 백 가지 정도 들음. 도에 대해 조금 안다는 뜻.
☞ 금아도자지난궁야今我睹子之難窮也 : 도睹는 본다는 뜻으로 도覩와 같다. 자子는 이인칭으로 여기서는 북해약北海若을 지칭한다.
☞ 오장견소어대방지가吾長見笑於大方之家 :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길이 비웃음을 당할 뻔함. 대방大方은 대도大道로 풀이.
北海若曰 井鼃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冰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出於崖涘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語大理矣
(북해약왈 정와를 불가이어어해자는 구어허야니라
하충을 불가이어어빙자는 독어시야니라
곡사를 불가이어어도자는 속어교야니라
금이는 출어애사하야 관어대해하고 내지이추하니 이는 장가여어대리의로다)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자신이 머무는 곳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버러지에게 얼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여름 버러지가〉 자신이 사는 때에만 얽매여 있기 때문이며,
곡사曲士에게 도道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것은 〈곡사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교리敎理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는 황하의 양쪽 기슭 사이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마침내 그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함께 커다란 도리道理에 관해 이야기할 만하다.”
☞ 정와井鼃 불가이어어해자不可以語於海者 :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주어야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 ‘와鼃’에 대하여는 ‘와蛙’와 같은 글자로 보아 ‘우물 안 개구리’로 번역.
☞ 구어허야拘於虛也 : 구拘는 구애된다는 뜻. 허虛는 장소로 허墟와 같다. “拘는 자기가 머무는 곳에 국한됨을 말한 것이다.”(林希逸)
☞ 독어시야篤於時也 : 곽경번郭慶藩이 ≪이아爾雅≫에서 “독篤은 고固이다.”고 풀이한 것을 따라 위 문장의 구拘나 아래 문장의 속束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 곡사曲士 불가이어어도자不可以語於道者 : 곡사曲士는 전체를 모르고 일부만 아는 사람이라는 뜻. “일부만 아는 선비이자 치우친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이다.”(成玄英)
☞ 속어교야束於敎也 : 곡사曲士가 교리敎理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뜻.
☞ 내지이추乃知爾醜 : “큰 바다가 무궁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난 뒤에 비로소 작은 물의 하찮음을 낮추어 봄이다.”(成玄英)
☞ 이장가여어대리의爾將可與語大理矣 : 이爾는 이인칭 그대. 장將은 앞으로에 해당하는 부사. 대리大理는 커다란 도리. “황하의 물가를 벗어나 큰 바다를 보았으니 국한된 곳을 벗어나 끝없는 바다의 모습을 함께 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커다란 도리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呂惠卿), “지금 하백河伯이 황하의 물가를 벗어나 바다를 보았으니 한 모퉁이에 가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커다란 도리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林自)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2(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2)
북해의 신 북해약이 황하의 신 하백에게, “황하의 양쪽 기슭 사이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 마침내 그대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함께 커다란 도리道理에 관해 이야기할 만하다.”고 하면서 도에 대해 이야기해준 말이다.
“중국이 해내海內에 있는 것을 따져 본다면 돌피의 낟알이 커다란 창고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한가. 사물의 수를 만이라고 일컫지만 사람은 그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이 구주九州에 살면서 곡식이 자라고 배와 수레가 소통하는 공간 가운데 개인이 차지하는 것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만물과 견주어 본다면 털끝 하나가 말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제1장-2 해석]
“천하天下의 물은 바다보다 넓은 것이 없다. 온갖 하천의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어느 때에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가득 차지 않으며 미려尾閭(꽁무니)로 빠져나가는데 어느 때에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고갈되지 아니하며 봄이나 가을의 계절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들든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바다가 장강이나 황하 따위의 흐름보다 나은 정도는 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많다고 자랑하지 않는 까닭은 스스로 생각건대 내가 천지天地 사이에 형체를 의탁하고 음양陰陽에게 기를 받은 존재인지라 내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가 큰 산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바로 작다는 것이 드러나니 또 어찌 스스로 많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사해四海〈에 둘러싸여 있는 이 세계〉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을 헤아려 본다면 개미구멍이 큰 소택沼澤(못) 가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한가. 중국이 해내海內에 있는 것을 따져 본다면 돌피의 낟알이 커다란 창고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한가. 사물의 수를 만이라고 일컫지만 사람은 그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이 구주九州에 살면서 곡식이 자라고 배와 수레가 소통하는 공간 가운데 개인이 차지하는 것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만물과 견주어 본다면 털끝 하나가 말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오제五帝가 서로 이어 계승해 오고 삼왕三王이 서로 쟁탈하고 어진 사람이 근심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이들이 수고한 것이 모두 이 작은 인간사회의 일을 극진히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백이는 그것을 사양하여 명예를 얻었고 중니仲尼는 그것을 말하여 박식하다고 칭찬을 받았으니 백이伯夷와 중니仲尼가 이 같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까 그대가 스스로 물이 많다고 자랑한 것과 같지 아니한가.”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천지를 크다 여기고 털 끄트머리를 작다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天下之水 莫大於海
萬川歸之 不知何時止而不盈 尾閭泄之 不知何時已而不虛
春秋不變 水旱不知 此其過江河之流 不可爲量數
(천하지수 막대어해하니
만천이 귀지호대 부지하시지이불잉하며 미려설지호대 부지하시이이불허하며
춘추에 불변하며 수한을 부지하나니 차기과강하지류 불가위양수로대)
“천하天下의 물은 바다보다 넓은 것이 없다. 온갖 하천의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어느 때에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가득 차지 않으며 미려尾閭(꽁무니)로 빠져나가는데 어느 때에 그치는지 알 수 없지만 고갈되지 아니하며 봄이나 가을의 계절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들든 그것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바다가 장강이나 황하 따위의 흐름보다 나은 정도는 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 미려설지尾閭泄之 : 미려尾閭는 바닷물이 빠지는 곳.
☞ 수한부지水旱不知 : 수량의 변화가 없다는 뜻. 부지不知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뜻.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어도 증감을 알 수 없다.”(成玄英)
☞ 과강하지류過江河之流 : 과過는 낫다는 뜻. 여기서는 수량이 많다는 뜻으로 쓰였다.
☞ 불가위양수不可爲量數 : 산술적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뜻.
而吾 未嘗以此自多者 自以比形於天地 而受氣於陰陽
吾在於天地之間 猶小石小木之在大山也 方存乎見少 又奚以自多
(이오 미상이차자다자는 자이비형어천지하며 이수기어음양이라
오 재어천지지간은 유소석소목지재대산야일새니라 방존호견소어니 우해이자다리오)
그럼에도 내가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많다고 자랑하지 않는 까닭은 스스로 생각건대 내가 천지天地 사이에 형체를 의탁하고 음양陰陽에게 기를 받은 존재인지라
내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가 큰 산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바로 작다는 것이 드러나니 또 어찌 스스로 많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 자이비형어천지自以比形於天地 : 이以는 ‘생각건대’의 뜻이고, 비比는 의탁한다는 뜻으로 바로 뒤에 이어지는 수기어음양受氣於陰陽의 수受자와 같은 맥락이다. “바다를 천지에 견주어 보면 단지 작다는 것을 알게 되니 어찌 큼을 알 수 있겠는가.”(林希逸)
☞ 수기어음양受氣於陰陽 : 천지음양에게서 기氣를 부여받아 이루어진 존재라는 뜻이다.
☞ 오재어천지지간吾在於天地之間 유소석소목지재대산야猶小石小木之在大山也 : 내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마치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가 큰 산에 있는 것과 같음. 위의 자이自以의 이以를 ‘생각건대’로 읽고 이 ‘猶小石小木之在大山也’로 이어서 이해하여, 이것을 “마치 작은 돌이나 작은 나무가 큰 산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로 번역.
☞ 방존호견소方存乎見少 : 바로 작다는 것이 보임, 또는 바로 작다는 것이 드러남의 뜻. 존存자를 일단 존재한다는 뜻으로 보고 ‘~에 해당한다, ~하게 된다,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번역. 견見은 알게 된다는 뜻.
☞ 우해이자다又奚以自多 : 다多는 많다고 여겨 자랑한다는 뜻. ‘이以’는 ‘~을 가지고’, 곧 ‘바다를 가지고’의 뜻.
計四海之在天地之間也 不似礨空之在大澤乎
計中國之在海內 不似稊米之在大倉乎
號物之數 謂之萬 人處一焉
人卒九州 穀食之所生 舟車之所通 人處一焉
此其比萬物也 不似豪末之在於馬體乎
(계사해지재천지지간야컨댄 불사뢰공지배대택호아
계중국지재해내컨댄 불사제미지재태창호아
호물지수하야 위지만이나 인처일언하며 인졸구주하고 곡식지소생과 주차지소통에 인처일언하니 차기비만물야컨댄 불사호말지재어마체호아)
사해四海〈에 둘러싸여 있는 이 세계〉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을 헤아려 본다면 개미구멍이 큰 소택沼澤(못) 가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한가.
중국이 해내海內에 있는 것을 따져 본다면 돌피의 낟알이 커다란 창고에 있는 것 같지 아니한가.
사물의 수를 만이라고 일컫지만 사람은 그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이 구주九州에 살면서 곡식이 자라고 배와 수레가 소통하는 공간 가운데 개인이 차지하는 것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만물과 견주어 본다면 털끝 하나가 말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 계사해지재천지지간야計四海之在天地之間也 : 사해四海는 사해에 둘러싸여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 불사뢰공지배대택호不似礨空之在大澤乎 : 뢰공礨空은 개미구멍.
☞ 불사제미지재태창호不似稊米之在大倉乎 : 제미稊米는 돌피의 낟알. 태창大倉은 커다란 곡식창고.
☞ 인처일언人處一焉 : 사람은 그중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음. 사람은 만물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 위의 인처일언人處一焉(號物之數 謂之萬 人處一焉)은 인류는 만물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고 아래의 인처일언人處一焉(穀食之所生 舟車之所通 人處一焉)은 개인은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 인졸구주人卒九州 : 인졸人卒은 사람들. 구주九州는 중국中國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한 것.
五帝之所連 三王之所爭 仁人之所憂 任士之所勞 盡此矣
伯夷辭之 以爲名 仲尼語之 以爲博
此其自多也 不似爾向之自多於水乎
河伯曰 然則吾大天地而小豪末 可乎
(오제지소련과 삼왕지소쟁과 인인지소우와 임사지소로 진차의어늘
백이사지하야 이위명하고 중니어지하야 이위박하니
차기자다야 불사이향지자다어수호아
하백왈 연즉오대천지이소호말이 가호아)
오제五帝가 서로 이어 계승해 오고 삼왕三王이 서로 쟁탈하고 어진 사람이 근심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이들이 수고한 것이 모두 이 작은 인간사회의 일을 극진히 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백이는 그것을 사양하여 명예를 얻었고 중니仲尼는 그것을 말하여 박식하다고 칭찬을 받았으니
백이伯夷와 중니仲尼가 이 같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까 그대가 스스로 물이 많다고 자랑한 것과 같지 아니한가.”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천지를 크다 여기고 털 끄트머리를 작다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 연즉오대천지이소호말가호然則吾大天地而小豪末可乎 : 이 질문의 대의는 앞의 문답을 이어받아 하백河伯이 진실로 큰 존재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참으로 큰 것[大]이란 천지인가라고 묻는 데 있다.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20180914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3(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3)
사람이 아는 것은 한계가 있고 알지 못하는 것은 무한히 많으며, 태어나서 살아 있는 시간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때의 장구함에 미치지 못한다.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지극히 큰 것을 궁구하려 하나니, 이 때문에 미혹되고 어지러워져 스스로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않을 수 없다.
[제1장-3 해석]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천지를 크다 여기고 털 끄트머리를 작다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북해약北海若이 말하였다. “아니다. 대저 사물이란 양에 한이 없이 무한히 크며, 시간은 멈춤이 없이 영겁永劫이며, 주어진 분수는 일정하게 정해진 몫이 없으며, 마침과 시작에는 고정됨이 없다.
이런 까닭에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원대한 도리道理와 비근한 일상의 사물을 볼 수 있다. 그 까닭에 작아도 그것을 적다 여기지 않고, 커도 그것을 많다 여기지 않으니, 사물의 양에 한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과거와 현재를 밝게 안다. 그 까닭에 먼 미래의 일이 명백하지 않더라도 근심하지 아니하고, 빨리 지나가는 일이라 하더라도 버둥대지 않으니, 시간에 멈춤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세상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살펴서 잘 안다. 그 까닭에 얻었다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잃었다고 근심하지 않으니, 분수에 일정한 몫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평탄한 대도大道를 분명히 안다. 그 까닭에 태어나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죽어도 그것을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다. 마침과 시작에 일정함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는 것을 따지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음만 못하며, 태어나서 살아 있는 시간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때의 장구함만 못하다. 〈이렇듯〉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지극히 큰 것을 궁구하려 하나니, 이 때문에 미혹되고 어지러워져 스스로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또 어찌 털 끄트머리가 지극히 작은 것 중에서 가장 끝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기에 족하겠으며, 또 어찌 천지가 지극히 큰 세계의 극한이라고 하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겠는가.”
河伯이 말했다. “〈혜시惠施 또는 명가名家들을 비롯한〉 세상의 논객들은 모두 지극히 작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지극히 큰 것은 밖에서 에워쌀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사실입니까?”
[원문과 해설]
河伯曰 然則吾大天地而小豪末 可乎
(하백왈 연즉오대천지이소호말이 가호아)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천지를 크다 여기고 털 끄트머리를 작다고 여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北海若曰否 夫物量無窮 時無止 分無常 終始無故
是故大知 觀於遠近 故小而不寡 大而不多 知量無窮
(북해약왈 부라 부물은 양무궁하며 시무지하며 분무상하며 종시무고하니
시고로 대지라야 관어원근 고로 소이불과하며 대이불다하나니 지량무궁일새니라)
북해약北海若이 말하였다. “아니다. 대저 사물이란 양에 한이 없이 무한히 크며 시간은 멈춤이 없이 영겁永劫이며 주어진 분수는 일정하게 정해진 몫이 없으며 마침과 시작에는 고정됨이 없다.
이런 까닭에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원대한 도리道理와 비근한 일상의 사물을 볼 수 있다. 그 까닭에 작아도 그것을 적다 여기지 않고, 커도 그것을 많다 여기지 않으니 사물의 양에 한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물량무궁物量無窮 : 양에 한이 없이 무한히 크다는 뜻. 부물夫物은 이 이하의 네 구句에 연결되어 있다. 양量은 아래 문장에 소小‧대大가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부터 미루어, 공간을 차지하는 크기이어서, 수數로 볼 수는 없고, 따라서 물량物量은 만물 전체의 공간적인 큼을 말하는 것. 무궁無窮은 무한無限하게 큰 것.
☞ 시무지時無止 : 시간은 멈춤이 없이 영겁永劫이라는 뜻.
☞ 분무상分無常 : 상常은 정定의 뜻. 주어진 분수 즉 분分은, 만물 각각에게 주어진 생존生存의 조건. 귀천빈부貴賤貧富 등을 말한다.
☞ 종시무고終始無故 : 종시終始는 사물의 생사. 고故는 固로 읽는다.
證曏今故 故遙而不悶 掇而不跂 知時無止
察乎盈虛 故得而不喜 失而不憂 知分之無常也
明乎坦塗 故生而不說 死而不禍 知終始之不可故也
(증향금고하야 고로 요이불민하며 철이불기하나니 지시무지일새니라
찰호잉허 고로 득이불희하며 실이불우하나니 지분지무상야일새니라
명호탄도 고로 생이불열하며 사이불화하나니 지종시지불가고야일새니라)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과거와 현재를 밝게 안다. 그 까닭에 먼 미래의 일이 명백하지 않더라도 근심하지 아니하고 빨리 지나가는 일이라 하더라도 버둥대지 않으니, 시간에 멈춤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세상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살펴서 잘 안다. 그 까닭에 얻었다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잃었다고 근심하지 않으니 분수에 일정한 몫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지혜를 갖춘 사람이라야〉 평탄한 대도大道를 분명히 안다. 그 까닭에 태어나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죽어도 그것을 재앙으로 여기지 않는다. 마침과 시작에 일정함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증향금고證曏今故 : 증證도 향曏도 모두 명백하게 한다는 뜻. 향曏에는 지난번, 접때라는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명明(명백하게 한다)의 뜻. 금고今故는 금고今古와 같다.
☞ 요이불민遙而不悶 철이불기掇而不跂 : 요遙를 ‘장長’으로 풀이(郭象)한 것을 따라 요遙를 명백하지 않은 먼 미래의 일로 보는 것이 좋다. 민悶은 근심한다[우憂]는 뜻. 철掇은 ‘단短’과 같다라고 풀이(郭象)했는데 짧은 시간에 빨리 지나가는 일이라는 뜻. 기跂는 ‘기忮(해칠기)’와 같은 글자로 거슬린다는 뜻으로 보거나, ‘기企’와 같은 글자로 남을 원망한다는 뜻으로 보는 주석이 있는 등, 이설異說이 분분하나, 육수지陸樹芝의 “잠깐의 시간이 쉬 지나간다고 해서 버둥대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而生跂望之心].”라는 주석이 좋은 것 같다.
☞ 명호탄도明乎坦塗 : 탄坦을 ‘평平’으로 풀이하고, 도塗을 ‘도道’라고 풀이했다.
☞ 생이불열生而不說 사이불화死而不禍 : 이 두 구句의 대의는 〈대종사大宗師〉편 제1장의 “삶을 좋아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미워할 줄도 모른다[不知說生 不知惡死].”와 같다.
☞ 지종시지불가고야知終始之不可故也 : 고故는 고固와 같다. 일정하다는 뜻.
計人之所知 不若其所不知 其生之時 不若未生之時
以其至小 求窮其至大之域 是故迷亂而不能自得也
(계인지소지론 불약기소부지며 기생지시 불약미생지시하니
이기지소로 구궁기지대지역이라 시고로 미란이불능자득야하나니라)
사람이 아는 것을 따지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음만 못하며 태어나서 살아 있는 시간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때의 장구함만 못하다.
〈이렇듯〉 지극히 작은 것을 가지고 지극히 큰 것을 궁구하려 하나니, 이 때문에 미혹되고 어지러워져 스스로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않을 수 없다.
☞ 계인지소지計人之所知 불약기소부지不若其所不知 기생지시其生之時 불약미생지시不若未生之時 : 사람이 아는 것은 한계가 있고 알지 못하는 것은 무한히 많으며 사람이 살아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고 살아 있는 시간이 아닌 그 이외의 시간은 무한히 장구하다는 뜻. “사람이 아는 것은 사람일 뿐이고 알지 못하는 것은 자연인 천天이다……지극히 작은 것은 나이고 지극히 큰 것은 천天이다. 지극히 작은 나로서 지극히 큰 천天을 궁구하려고 하니 미혹되어 즐겁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林希逸)
☞ 이기지소以其至小 구궁기지대지역求窮其至大之域 시고是故 미란이불능자득야迷亂而不能自得也 : “지극히 작은 것은 지식이고 지극히 큰 것은 천지 사이의 경계이다.”(成玄英)
由此觀之 又何以知豪末之足以定至細之倪
又何以知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유차관지컨댄 우하이지호말지족이정지세지예며
우하이지천지지족이궁지대지역이리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본다면 또 어찌 털 끄트머리가 지극히 작은 것 중에서 가장 끝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기에 족하겠으며
또 어찌 천지가 지극히 큰 세계의 극한이라고 하기에 충분함을 알 수 있겠는가.”
☞ 예倪는 끝.
河伯曰 世之議者皆曰 至精無形 至大不可圍 是信情乎
(하백왈 세지의자 개왈 지정은 무형하고 지대는 불가위라하나니 시신정호아)
하백河伯이 물었다. “〈혜시惠施 또는 명가名家들을 비롯한〉 세상의 논객들은 모두 지극히 작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지극히 큰 것은 밖에서 에워쌀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사실입니까?”
☞ 세지의자世之議者 : 혜시惠施 또는 명가名家들을 비롯한 논객들을 지칭한다.
☞ 지정무형至精無形 지대불가위至大不可圍 : 정精은 세細의 뜻. 〈천하天下〉편의 혜시惠施의 말 “지극히 큰 것은 밖이 없고…… 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다[至大無外……至小無內].”고 한 명제와 같은 취지이다.
☞ 시신정호是信情乎 : 신信은 부사로 ‘참으로’의 뜻. 정情은 확실한 것, 사실이라는 뜻.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4(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4)
대인大人의 행동은 세상의 작록爵祿(직위와 연봉)으로도 권장하기에 부족하며, 형륙刑戮(형벌刑罰에 따라 죽임)과 수치로도 욕되게 하기에 부족하니, 그것은 대인이 시是와 비非를 가릴 수 없고, 소小와 대大의 한계를 그어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道를 터득한 사람은 명성이 세상에 들리지 않고,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은 덕德으로 칭송할 수 없고, 대인大人은 자기自己가 없다고 하니 이것이 곧 시是와 비非, 소小와 대大의 구별을 버린 극치이다.
[제1장-4 해석]
하백河伯이 물었다. “〈혜시惠施 또는 명가名家들을 비롯한〉 세상의 논객들은 모두 지극히 작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지극히 큰 것은 밖에서 에워쌀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사실입니까?”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무릇 작은 것을 기준으로 큰 것을 보면 다 보지 못하고 큰 것을 기준으로 작은 것을 보면 분명히 보지 못하니 대저 지극히 작은 것[정精]이란 작은 것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고 극대의 것[부垺]은 큰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크니 작으니 하는 것은〉 본시 편의상의 구별일 뿐이니, 이것은 각각의 사물이 놓여진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대저 작다 크다 하는 것도 형체가 있는 대상을 예상해서 한 말이다. 형체가 없는 것은 수량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고 에워쌀 수 없는 것은 수량으로 궁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큰 것[조粗]이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작은 것[정精]이니,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작다 크다 하는 것을 초월한 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인大人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데로 나아가지는 않으나 인혜은덕仁惠恩德을 베푸는 행위를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대인大人의〉 행동은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으나 〈이익을 위해서〉 성문의 문지기 노릇까지 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재산 때문에 남하고 다투지 아니하나 그렇다고 해서 겸양의 미덕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일을 할 때 남의 힘을 빌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력自力으로 먹는 것을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청렴함을 지키고 귀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하여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행동을 세속과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사람과 크게 다름(피이辟異)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대중을 따라 행동하여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다.
세상의 작록爵祿으로도 권장하기에 부족하며 형륙刑戮과 수치로도 욕되게 하기에 부족하니 그것은 〈대인大人이〉 시是와 비非를 가릴 수 없고 소小와 대大의 한계를 그어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듣건대, 도道를 터득한 사람은 명성이 세상에 들리지 않고,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은 덕德으로 칭송할 수 없고, 대인大人은 자기自己가 없다고 하니 이것이 곧 〈시是와 비非, 소小와 대大의〉 구별을 버린 극치이다.”
하백河伯이 말했다. “혹 사물의 밖에서건 혹 사물의 안에서건 어디에 이르러 귀貴와 천賤의 구분이 성립되며, 어디에 이르러 소小와 대大의 구별이 성립합니까?”
[원문과 해설]
河伯曰 世之議者皆曰 至精無形 至大不可圍 是信情乎
(하백왈 세지의자 개왈 지정은 무형하고 지대는 불가위라하나니 시신정호아)
河伯이 말했다. “〈혜시惠施 또는 명가名家들을 비롯한〉 세상의 논객들은 모두 지극히 작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지극히 큰 것은 밖에서 에워쌀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이 참으로 사실입니까?”
北海若曰 夫自細視大者不盡 自大視細者不明
夫精小之微也 垺大之殷也 故異便 此勢之有也
(북해약왈 부자세로 시대자는 부진하고 자대로 시세자는 불명이니
부정은 소지미야요 부는 대지은야나 고이편하니 차는 세지유야니라)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무릇 작은 것을 기준으로 큰 것을 보면 다 보지 못하고 큰 것을 기준으로 작은 것을 보면 분명히 보지 못하니
대저 지극히 작은 것[정精]이란 작은 것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고 극대의 것[부垺]은 큰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크니 작으니 하는 것은〉 본시 편의상의 구별일 뿐이니, 이것은 각각의 사물이 놓여진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 부정夫精 소지미야小之微也 부垺 대지은야大之殷也 : 정精은 극소極小의 뜻. 부垺는 ‘클 부’, 여기서는 極大의 뜻. 은殷은 큼. ‘성盛’의 뜻이다.
☞ 고이편故異便 차세지유야此勢之有也 : 먼저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면 “그러나 본시 편불편便不便을 달리하는 것이니 이것은 각각의 놓여진 형세가 있기 때문이다.”가 되는데, 이는 “그러나 〈크니 작으니 하는 것은〉 본시 편의상의 구별일 뿐이니, 각각의 사물이 놓여진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의 뜻이다. 고故는 ‘본시’의 뜻이고, 세勢는 정세情勢‧형세形勢‧놓여진 상황의 뜻이다.
夫精粗者 期於有形者也 無形者 數之所不能分也
不可圍者 數之所不能窮也
(부정조자는 기어유형자야니 무형자는 수지소불능분야요
불가위자는 수지소불능궁야니라)
대저 작다 크다 하는 것도 형체가 있는 대상을 예상해서 한 말이다. 형체가 없는 것은 수량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고 에워쌀 수 없는 것은 수량으로 궁구할 수 없는 것이다.
☞ 부정조자夫精粗者 기어유형자야期於有形者也 : 기期는 기약한다, 예상한다로 해석. 정精은 미세하다, 작다[소小]의 뜻이고, 조粗는 거칠다, 크다[대大]의 뜻.
☞ 불가위자不可圍者 수지소불능궁야數之所不能窮也 : 에워쌀 수 없는 것은 경계境界를 정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可以言論者 物之粗也 可以意致者 物之精也
言之所不能論 意之所不能察致者 不期精粗焉
(가이언론자는 물지조야요 가이의치자는 물지정야니
언지소불능논이며 의지소불능찰치자는 불기정조언이니라)
〈사람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큰 것[조粗]이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만물 가운데 작은 것[정精]이니,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작다 크다 하는 것을 초월한 데 있는 것이다.
☞ 가이언론자可以言論者 물지조야物之粗也 가이의치자可以意致者 물지정야物之精也 : 논論은 논한다, 따진다, 설명한다이고, 치致는 이해한다, 의意는 뜻, 마음.
☞ 불기정조不期精粗 : 정精이니 조粗니 하는 것으로 기약되지 않는 것, 즉 정精(작다)‧조粗(크다)를 초월한 데 있는 것이란 뜻이다.
是故大人之行 不出乎害人 不多仁恩 動不爲利 不賤門隷
貨財弗爭 不多辭讓 事焉不借人 不多食乎力 不賤貪汙
行殊乎俗호대 不多辟異 爲在從衆 不賤佞諂
(시고로 대인지행은 불출호해인호대 불다인은하며 동불위리호대 불천문예하며
화재불쟁호대 불다사양하며 사언불차인호대 불다식호력하며 불천탐오하며
행수호속호대 불다피이하며 위재종중하야 불천영첨이라)
그래서 대인大人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데로 나아가지는 않으나 인혜은덕仁惠恩德을 베푸는 행위를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대인大人의〉 행동은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으나 〈이익을 위해서〉 성문의 문지기 노릇까지 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재산 때문에 남하고 다투지 아니하나 그렇다고 해서 겸양의 미덕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일을 할 때 남의 힘을 빌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력自力으로 먹는 것을 자랑하지도 아니하고, 〈청렴함을 지키고 귀하게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하여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행동을 세속과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사람과 크게 다름(피이辟異)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대인大人은〉 대중을 따라 행동하여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다.
☞ 시고대인지행是故大人之行 : 대인大人은 도道를 체득한 위대한 인물이란 뜻. 이 구절 ‘시고대인지행是故大人之行’ 이하 ‘약분지지야約分之至也’까지의 111자字는 문맥이 불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진고응陳鼓應은 마땅히 삭제해 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께다池田知久도 “시고是故는 앞뒤의 논리적 관계를 표시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확실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 불출호해인不出乎害人 : 출出은 진進과 같다.
☞ 불다인은不多仁恩 : 다多는 많다고 자랑한다는 뜻.
☞ 동불위리動不爲利 불천문예不賤門隷 : 비록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이익을 위해서 성문의 문지기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천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뜻. 두 句의 대의는 “내가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으나 또한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그르다고 여기지도 않는다.”(林希逸). 문예門隷는 “관문을 지키는 자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말하는 자.”(림자林自). 이利에 녹緣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 불다식호력不多食乎力 : 식력食力은 자력自力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
☞ 불천탐오不賤貪汙 : 〈청렴함을 지키고 귀하게 여겨 물질적物質的인 탐욕을 갖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탐욕스럽고 더러운 사람이라고 하여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함. 이 앞에는 한 구句가 있었는데 탈락脫落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王叔岷은 이것을 ‘수귀청렴守貴淸廉’ 네 글자로 추측推測하고 있다.(≪장자교역보록莊子校釋補錄≫)
☞ 불다피이不多辟異 : 피이辟異는 피이僻異 또는 특이特異와 같다.
世之爵祿 不足以爲勸 戮恥 不足以爲辱
知是非之不可爲分 細大之不可爲倪
聞曰 道人不聞 至德不得 大人無己 約分之至也
(세지작록으로 부족이이권하며 륙치로 부족이위욕이니
지시비지불가위분이며 세대지불가위예일새니라
문호니 왈 도인은 불문하고 지덕은 불득하고 대인은 무기라하나니 약분지지야니라)
세상의 작록爵祿으로도 권장하기에 부족하며 형륙刑戮과 수치로도 욕되게 하기에 부족하니
그것은 〈대인大人이〉 시是와 비非를 가릴 수 없고 소小와 대大의 한계를 그어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듣건대, 도道를 터득한 사람은 명성이 세상에 들리지 않고, 지극한 덕을 가진 사람은 덕德으로 칭송할 수 없고, 대인大人은 자기自己가 없다고 하니 이것이 곧 〈시是와 비非, 소小와 대大의〉 구별을 버린 극치이다.”
☞ 세지작록世之爵祿 부족이이권不足以爲勸 륙치戮恥 부족이위욕不足以爲辱 : 이상의 칠사七事에 있어서의 대인大人의 주체성主體性의 확립을 말하는 문장이다.
☞ 지시비지불가위분知是非之不可爲分 세대지불가위예細大之不可爲倪 : 예倪는 구별, 한계의 뜻. 시是와 비非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고, 대大와 소小 사이에 절대적인 구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 도인불문道人不聞 : 불문不聞은 무명無名의 뜻.
☞ 약분지지야約分之至也 : 시是와 비非, 소小와 대大 따위의 구별을 버린 극치의 행위라는 뜻. 大意는 “사람이 구분을 버리는 극치를 이룰 수 있으면 구별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呂惠卿), 약約은 검약儉約이라는 주석을 따라서 약約을 적게 한다,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
河伯曰 若物之外 若物之內 惡至而倪貴賤 惡至而倪小大
(하백왈 약물지외와 약물지내에 오지이예귀천이며 오지이예소대오)
하백河伯이 말했다. “혹 사물의 밖에서건 혹 사물의 안에서건 어디에 이르러 귀貴와 천賤의 구분이 성립되며, 어디에 이르러 소小와 대大의 구별이 성립합니까?”
☞ 약물지외若物之外 약물지내若物之內 오지이예귀천惡至而倪貴賤 오지이예소대惡至而倪小大 : ‘어디에 이르러’는 ‘어떻게 하여’로 번역하여도 가可하다. 예倪는 한계, 구별의 뜻. 약若은 선택관계選擇關係를 표시하는 연사連詞. 물지외物之外는 위 문장의 무형無形, 불가위不可圍, 물지내物之內는 유형有形, 가위可圍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하백河伯이 “물物의 세계 밖으로 상정想定하건, 물物의 세계 안으로 내재內在시키건, 거기에는 귀貴와 천賤, 소小와 대大로 구별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 문장이다.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20180916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5(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5)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상대를 천시하고,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귀천이 나에 있지 않게 된다.
[제1장-5 해석]
하백河伯이 말했다. “혹 사물의 밖에서건 혹 사물의 안에서건 어디에 이르러 귀貴와 천賤의 구분이 성립되며, 어디에 이르러 소小와 대大의 구별이 성립합니까?”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상대를 천시하고,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귀천이 나에 있지 않게 된다. 차별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크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어떤 사물을 크다고 하면 만물이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작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어떤 사물을 작다고 하면 만물이 작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천지가 돌피알처럼 작은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고, 호말毫末이 언덕이나 산처럼 큰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차별의 이치[차수差數]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효용效用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유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무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무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무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동東과 서西가 서로 반대편에 있지만 서로 없어서는 아니 됨을 알면 사물 각각의 효용성이 명확하게 될 것이다.
취향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하면 만물이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요堯와 걸桀이 자기를 그렇다고(옳다고) 하고 상대방을 그렇지 않다고(그르다고) 여기는 것을 알게 되면 취향의 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옛날 요堯와 순舜은 임금 자리를 사양함으로써 제왕이 되었는데, 연燕의 재상宰相 자지子之와 연왕燕王 자쾌子噲는 같은 방법으로 나라를 멸망시켰다. 또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무력으로 다툼으로써 왕이 되었는데, 초楚나라의 백공白公은 같은 방법으로 다투고서 살해당해 자멸했다.
이로써 살펴본다면 다툼[방벌放伐]과 선양禪讓의 예禮나 요堯와 걸桀의 행동은 어떤 것을 귀貴한 것으로 여기고 어떤 것을 천賤하게 여김이 때에 따라 다른지라 그 어느 하나를 일정한 법칙으로 삼을 수 없다.”
[원문과 해설]
河伯曰 若物之外 若物之內 惡至而倪貴賤 惡至而倪小大
(하백왈 약물지외와 약물지내에 오지이예귀천이며 오지이예소대오)
하백河伯이 말했다. “혹 사물의 밖에서건 혹 사물의 안에서건 어디에 이르러 귀貴와 천賤의 구분이 성립되며, 어디에 이르러 소小와 대大의 구별이 성립합니까?”
北海若曰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북해약왈 이도로 관지컨댄 물무귀천커니와 이물로관지컨댄 자귀이상천하고
이속으로 관지컨댄 귀천이 부재기하니라)
북해약北海若이 말했다.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상대를 천시하고,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귀천이 나에 있지 않게 된다.
☞ 이도관지以道觀之 물무귀천物無貴賤 : “도道는 허통虛通의 묘리妙理이고 물物은 질애質礙의 추사麤事이다. 추麤의 관점에서 묘妙를 보는 까닭에 대소大小가 있고 묘의 관점에서 추를 보는 까닭에 귀천貴賤이 없다.”(成玄英의 疏)
以差觀之 因其所大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稊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이차로 관지컨댄 인기소대이대지 즉만물이 막불대하고
인기소소이소지 즉만물이 막불소하니
지천지지위제미야하며 지호말지위구산야하면 즉차수를 도의리라)
차별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크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어떤 사물을 크다고 하면 만물이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작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어떤 사물을 작다고 하면 만물이 작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천지가 돌피알처럼 작은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고, 호말毫末이 언덕이나 산처럼 큰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차별의 이치[차수差數]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이차관지以差觀之 : ‘차差’는 ‘별別’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차관지以差觀之는 아래 문장의 “이공관지以功觀之” “이취관지以趣觀之”와 함께 위 문장의 “이물관지以物觀之”의 구체화이다. 물物의 대소大小를 차差라 하고 물物의 유무有無를 공功(작용, 공능功能)이라 하고, 물物의 연비然非를 취趣라 한 것일 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 인기소대이대지因其所大而大之 즉만물막불대則萬物莫不大 인기소소이소지因其所小而小之 즉만물막불소則萬物莫不小 : 각자의 기준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절대적인 대大나 소小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뜻.
☞ 지천지지위제미야知天地之爲稊米也 지호말지위구산야知毫末之爲丘山也 즉차수則差數 도의覩矣 : 천지보다 큰 것을 무한히 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비교하면 천지가 가장 작은 것이 될 수 있고, 털 끄트머리보다 작은 것들과 비교하면 털 끄트머리가 가장 큰 사물이 될 수 있다는 뜻.
以功觀之 因其所有而有之 則萬物莫不有
因其所無而無之 則萬物莫不無
知東西之相反 而不可以相無 則功分定矣
(이공으로 관지컨댄 인기소유이유지 즉만물이 막불유하고
인기소무이무지 즉만물이 막불무하니
지동서지상반(하나) 이불가이상무하면 즉공분이 정의리라)
효용效用이란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유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무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무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무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동東과 서西가 서로 반대편에 있지만 서로 없어서는 아니 됨을 알면 사물 각각의 효용성이 명확하게 될 것이다.
☞ 이공관지以功觀之 : 공功은 공용功用 곧 효용效用의 뜻.
☞ 지동서지상반知東西之相反 이불가이상무而不可以相無 즉공분정의則功分定矣 : “유무有無가 동서東西처럼 물자체物自體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밖으로부터 가지고 온 상호相互 규정적인 대립개념이니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상하문上下文에서 물자체에 대소大小, 연비然非가 없다고 하고 있는 것과 정합整合하지 않는다.”(池田知久). 공분功分의 분分에 대하여는 ‘본분本分, 본질本質’로 보아 ‘공분정의功分定矣’를 “효용을 나누는 명분名分이 분명히 결정될 것이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以趣觀之 因其所然而然之 則萬物莫不然
因其所非而非之 則萬物莫不非
知堯桀之自然而相非 則趣操覩矣
(이취로 관지컨댄 인기소연이연지 즉만물이 막불연하고
인기소비이비지 즉만물이 막불비하니
지요걸지자연이상비인댄 즉취조를 도의리라)
취향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각자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하면 만물이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요堯와 걸桀이 자기를 그렇다고(옳다고) 하고 상대방을 그렇지 않다고(그르다고) 여기는 것을 알게 되면 취향의 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취관지以趣觀之 : “중인들의 취향.”(王先謙),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王夫之),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것.”(宣穎)
☞ 인기소연이연지因其所然而然之 즉만물막불연則萬物莫不然 : 연然은 그렇다고 여김. 곧 옳다고 여긴다는 뜻. 시是와 같다.
☞ 지요걸지자연이상비知堯桀之自然而相非 즉취조도의則趣操覩矣 : 자연이상비自然而相非는 자신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하는 것. 취조趣操는 취향의 기준, 근거를 뜻한다. 도覩는 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알게 된다, 명백明白하게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昔者 堯舜讓而帝 之噲讓而絶 湯武爭而王 白公爭而滅
由此觀之 爭讓之禮 堯桀之行 貴賤有時 未可以爲常也
(석자에 요순은 양이제어늘 지쾌는 양이절하며 탕무는 쟁이왕이어늘 백공은 쟁이멸하니
유차로 관지컨댄 쟁양지례와 요걸지행은 귀천유시라 미가이위상야로다)
옛날 요堯와 순舜은 임금 자리를 사양함으로써 제왕이 되었는데, 연燕의 재상宰相 자지子之와 연왕燕王 자쾌子噲는 같은 방법으로 나라를 멸망시켰다. 또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은 무력으로 다툼으로써 왕이 되었는데, 초楚나라의 백공白公은 같은 방법으로 다투고서 살해당해 자멸했다.
이로써 살펴본다면 다툼[방벌放伐]과 선양禪讓의 예禮나 요堯와 걸桀의 행동은 어떤 것을 귀貴한 것으로 여기고 어떤 것을 천賤하게 여김이 때에 따라 다른지라 그 어느 하나를 일정한 법칙으로 삼을 수 없다.”
☞ 지쾌양이절之噲讓而絶 : 지쾌之噲의 지之는 연나라 재상이었던 자지子之, 쾌噲는 연나라 임금 자쾌子噲를 지칭한다. “연나라 왕 쾌가 계책을 쓰는데 어리석어서 소대의 유세를 따라 요순이 선양한 것을 본받아 재상이었던 자지子之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했다가 3년 만에 연나라가 어지러워졌다.”(司馬彪)
☞ 백공쟁이멸白公爭而滅 : 백공白公은 ≪경전석문經典釋文≫에 “이름은 승勝이고, 초楚 평왕平王의 손자이다. 백현白縣의 윤尹으로 공公을 참칭僭稱하고 난亂을 일으켰다가 죽었다.
☞ 쟁양지례爭讓之禮 요걸지행堯桀之行 귀천유시貴賤有時 미가이위상야未可以爲常也 : “위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 귀천의 차별이 있게 됨을 말했고, 여기서는 천하의 일은 본래 일정한 귀천이 없으므로 한 가지를 고집하여 상례로 삼을 수 없음을 말했다.”고 풀이했다.(陸樹芝)
(동양고전종합DB에서 인용)
20180917
莊子 外編 17篇 秋水篇 第1章-6(장자 외편 17편 추수편 제1장-6)
[제1장-6 해석]
대들보와 마룻대 같은 큰 나무로는 성벽城壁을 쳐부술 수는 있지만 조그만 구멍을 틀어막을 수는 없으니 이는 도구의 용도가 다름을 말한 것이다. 기기騏驥, 화류驊騮와 같은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쥐 잡는 일에는 살쾡이만도 못하니 이는 가지고 있는 기능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올빼미는 캄캄한 밤에도 벼룩을 잡을 수 있고 털끝을 살필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도 커다란 산과 언덕을 보지 못하니 이는 타고난 본성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그 때문에, “생각건대 옳은 것을 스승으로 삼고 그른 것은 무시해 버리며 치治를 존숭하고 난亂은 무시해 버리면 좋지 않은가.” 하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아직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말하자면 하늘을 스승으로 삼아 땅은 업신여기며 음을 스승으로 삼아 양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서 성립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또 계속 말하여 그만두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속이는 자이다.
제왕들은 선양禪讓하는 방법을 달리했으며 삼대의 왕위를 계승하는 방법도 달랐으니 그 시대와 다르고 그 풍속과 어긋나는 자는 찬탈한 자라 일컫고 그 시대에 합당하고 그 풍속을 따른 자는 의로운 무리라고 일컬었으니
하백河伯이여, 아무 말 없이 침묵할지어다. 그대가 어찌 귀천을 구별하는 문이 어디에 있고 소小와 대大를 구별하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가 사양하고 받고 달려가고 그만둠을 나는 마침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문과 해설]
梁麗可以衝城 而不可以窒穴 言殊器也
騏驥驊騮 一日而馳千里 捕鼠不如狸狌 言殊技也
鴟鵂夜撮蚤 察豪末 晝出瞋目而不見丘山 言殊性也
(양려는 가이충성호대 이불가이질혈이니 언수기야니라
기기화류는 일일이치천리한대 포서는 불여리성하니 언수기야니라
치휴는 야찰조하며 찰호말호대 주출하야는 진목이불견구산하나니 언수성야니라)
대들보와 마룻대 같은 큰 나무로는 성벽城壁을 쳐부술 수는 있지만 조그만 구멍을 틀어막을 수는 없으니 이는 도구의 용도가 다름을 말한 것이다.
기기騏驥, 화류驊騮와 같은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쥐 잡는 일에는 살쾡이만도 못하니 이는 가지고 있는 기능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올빼미는 캄캄한 밤에도 벼룩을 잡을 수 있고 털끝을 살필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도 커다란 산과 언덕을 보지 못하니 이는 타고난 본성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 양려가이충성梁麗可以衝城 이불가이질혈而不可以窒穴 : 양梁은 대들보, 려麗는 마룻대, 충衝은 찌른다, 찔러 쳐부수다의 뜻이고, 질혈窒穴은 조그만 구멍을 틀어막는다는 뜻이다.
☞ 기기화류騏驥驊騮 일일이치천리一日而馳千里 포서捕鼠 불여리성不如狸狌 언수기야言殊技也 : 기기騏驥·화류驊騮는 모두 준마이다. 리성狸狌은 너구리와 살쾡이, 여기서는 살쾡이로만 번역하였음. 기技는 각기 장기로 삼는 기능을 말한다.
☞ 치휴鴟鵂 야찰조夜撮蚤 : 치휴鴟鵂는 올빼밋과에 속하는 새. ‘치’를 올빼미, ‘휴’를 부엉이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두 글자를 합해서 ‘올빼미’라고 번역했다. 찰撮은 착捉(잡을 착)이다. 조蚤는 벼룩.
☞ 언수성야言殊性也 : 타고난 본성이 다름을 말한 것임. “양려梁麗 이하의 취지는, 세 종류의 물物(대들보와 마룻대, 천리마, 올빼미)의 실례實例를 들어 각각 능能(잘함)하고 능치 못함이 있는 사실을 관찰하면서 물物의 전일성全一性을 분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더구나 그 잘하는 쪽(가이충성可以衝城)만을 들고 잘못하는 쪽(불가이질혈不可以窒穴)을 간과看過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池田知久). 어떤 한 쪽의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 다른 쪽엔 아주 열등劣等한 것의 비유는 〈소요유逍遙遊〉편 제5장에도 리성狸狌과 리우斄牛의 예가 있다.
故曰蓋師是而無非 師治而無亂乎
是未明天地之理 萬物之情者也 是猶師天而無地 師陰而無陽
其不可行 明矣 然且語而不舍 非愚則誣也
(고로왈 개사시이무비하며 사치이무란호인댄
시미명천지지리와 만물지정자야니 시유사천이무지하며 사음이무양이라
기불가행이 명의어늘 연차어이불사하나니 비우즉무야니라)
그 때문에, “생각건대 옳은 것을 스승으로 삼고 그른 것은 무시해 버리며 치治를 존숭하고 난亂은 무시해 버리면 좋지 않은가.” 하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아직 천지의 이치와 만물의 실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말하자면 하늘을 스승으로 삼아 땅은 업신여기며 음을 스승으로 삼아 양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서 성립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런데 또 계속 말하여 그만두지 않으니 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속이는 자이다.
☞ 고왈개사시이무비故曰蓋師是而無非 사치이무란호師治而無亂乎 : ‘고왈故曰……호乎’는 ‘그 때문에 ……라고 말한다면’의 뜻이고, 개蓋는 ‘대개’ 또는 ‘생각건대……이 좋다’ 정도의 뜻. 사師는 스승으로 삼고 존숭한다는 뜻.
☞ 시미명천지지리是未明天地之理 만물지정자야萬物之情者也 시유사천이무지是猶師天而無地 사음이무양師陰而無陽 : 는 “천지天地, 만물萬物의 세계에 천天이 없으면 지地도 없고 음陰이 없으면 양陽도 없음을 말한다. 비유比喩라는 형태를 취해 서술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표현이 되고 있지는 않으나 아래 문장의 ‘여오지귀천지문 女惡知貴賤之門 소대지가小大之家’ 등에서 판단하여 이 같은 만물제동萬物齊同을 제창한 것이다.”(池田知久)
☞ 기불가행其不可行 명의明矣 연차어이불사然且語而不舍 비우즉무야非愚則誣也 : “이물관지以物觀之 등으로 대표되는 물物의 입장立場에서 발언하는 언론言論을 비난한 문장이다.”(池田知久). 사舍는 사捨(버릴 사)와 같음.
帝王殊禪 三代殊繼 差其時 逆其俗者 謂之簒夫
當其時 順其俗者 謂之義之徒
黙黙乎河伯 女惡知貴賤之門 小大之家
(제왕이 수선하며 삼대수계하니 차기시하며 역기속자란 위지찬부라하고
당기시하야 순기속자란 위지의지도라하나니
묵묵호인저 하백아 여는 오지귀천지문과 소대지가리오)
제왕들은 선양禪讓하는 방법을 달리했으며 삼대의 왕위를 계승하는 방법도 달랐으니 그 시대와 다르고 그 풍속과 어긋나는 자는 찬탈한 자라 일컫고
그 시대에 합당하고 그 풍속을 따른 자는 의로운 무리라고 일컬었으니
하백河伯이여, 아무 말 없이 침묵할지어다. 그대가 어찌 귀천을 구별하는 문이 어디에 있고 소小와 대大를 구별하는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 제왕수선帝王殊禪 삼대수계三代殊繼 : 위 문장의 물物에 각각 수기殊器, 수기殊技, 수성殊性만이 있었듯이 제왕帝王, 삼대三代에도 다만 수선殊禪과 수계殊繼가 있었던 데 지나지 않을 뿐, 그것의 하나하나에 선양禪讓이니, 방벌放伐이니, 또는 찬簒이니 의義니 하는 가치價値(와 반가차反價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 차기시差其時 : 차差는 다르다, 어기다, 등지다, 배반하다 등의 뜻.
☞ 黙黙乎河伯 女惡知貴賤之門 小大之家 : 묵黙은 밀謐(고요할 밀)의 가차(馬叙倫). 양려梁麗 가이충성可以衝城 이하 소대지가小大之家까지의 내용의 대의大意는 “천지 만물은 그 가운데 크고 작고 있고 없는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사실의 구별과, 귀하고 천하고 옳고 그른 귀천연비貴賤然非의 가치의 구별이 없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계인데, 여기에 접근하기 위하여는 물物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도道의 입장에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람은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입을 다물고 침묵할 필요가 있다.”라고 할 수 있다.
河伯曰 然則我何爲乎 何不爲乎 吾辭受趣舍 吾終奈何
(하백왈 연즉아하위호며 하불위호오 오사구취사를 오종내하오)
하백河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은 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내가 사양하고 받고 달려가고 그만둠을 나는 마침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세계의 제동성齊同性의 인식에 도달한 자者(하백河伯)가 현실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의 실천적인 질문이다. 지식론知識論으로부터 실천론實踐論으로의 이와 같은 전개는 초기도가初期道家에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사상이다(池田知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