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졌다.
집의 구조는 언제나 똑같은데 이곳에서 나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 보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한두 시간 하다보면 걸음을 걷기가 힘이 들어 질질 끌고 다니는 현상을 자주 접하다보니 의자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발동한 것이다.
아들이 장가가기 전에 거쳐했던 방을 정리하여 서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방안에 있는 침대를 처분해버리고 큰 책상과 책장 하나만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아무 상관없다 하기에 바로 실천하기로 한다.
아들 방에 있는 침대는 딸의 것이다.
애들을 낳아 기르면서 침대가 불편하다며 다시 갖다놓았으니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맘대로 처분을 해도 좋단다.
퀸 사이즈의 침대를 완전 분해해서 버리는데도 돈이 든다.
미리 청소업체에 연락을 해서 언제 수거할 수 있는지 약속을 해야 하고 그것을 안마당까지는 스스로 옮겨두어야만 수거가 가능하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침대베드가 어찌나 무겁든지 그것을 등에 울러 메고 옮기고 나니 정말 하늘이 노랗다.
낑낑대며 한쪽 구석에 옮겨두었더니 차선 하나를 쓸 수 없다며 경비실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난리다.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굳이 대꾸하기 싫어서 무대응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조금은 과하지 않나하고 혼자서 분을 삭여야만 한다.
잠시 동안만 있을 테고 청소업체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곧 수거해 갈건대 난리를 치고 있으니 한판 붙어야 하나 하고 고민했지만 다른 입주민의 원성 때문에 경비실에서도 어쩔 수 없이 전화하지 않았을까 하고 무대응으로 끝을 냈다.
아파트라는 곳에는 많은 가구들이 살다보니 별난 사람도 많아 오만가지 일들을 가지고 갑질을 한다고 하니 경비인들 무슨 재관이 있겠나 싶어 화내지 않고 참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침대를 분해하다보니 베드를 놓기 위해 설치된 각목이 다섯 개가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것을 이용하여 내 방의 한곳을 선반처럼 제작을 해서 숨겨놓은 상패 같은 것을 올려놓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쪽에 모아 두었다가 톱과 못을 사서 재단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궁리를 한다.
침대를 다 치우고 나니 방이 그런대로 넓고 아득하다.
책장에 아무렇게 꽂혀있던 책들을 종류와 용도에 맞게 정리하고 더러운 벽면에는 벽지를 사다가 바르니 깨끗하고 좋다.
책상은 언젠가 딸집에 갔더니 아이 책상을 사기 위해 버려야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전화로 그 책상을 나에게 주면 손자 책상을 사주겠다고 거래를 하니 좋아라! 한다.
그들에게는 일석이조이고 나도 손해 가는 것은 아니다.
침대를 치웠다고 하니 곧장 실어다 주겠고 해서 가슴이 콩닥거린다.
점심때가 다되어 갈 무렵 책상을 싣고 와서 설치를 하니 정말 안성맞춤이다.
사실 컴퓨터가 있고 해서 그림을 그리려면 책상크기가 어느 정도는 돼야 하는데 그 길이가 220CM이니 정말 좋다.
책상을 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진다.
의자에 앉아 쉽게 옮겨갈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굳이 한두 시간의 작업을 한다고 해도 다리가 아파서 쩔쩔 맬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신이 난다.
의자는 좋은 것으로 사야한다고 난리다.
의자가 불편하면 작업하는데도 불편할 뿐 아니라 힘이 든다며 좋은 것을 사서 쓰라고 채근하여 딸을 통해서 인터넷 구매를 하고 배달되어온 의자를 보고 비싸지만 맘에 쏙 들어 즐겁다.
침대에서 빼놓은 각목을 시장에서 톱과 못을 사와 나름의 방식으로 재단을 하고 간단하게 거치대를 만들어 상패며 작은 소품을 가져와서 장식을 하니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좋다.
혼자서 톱질하고 못질하는데 상당히 힘은 들지만 스스로의 방식으로 뭔가가 만들어지고 각목을 내가 원하는 용도에 멋지게 쓰고 있으니 이것 또한 맘속에 만족감으로 채워짐을 본다.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어때 하고 물었을 때 괜찮은 것 같다는 만족감을 표시해 더 신이 났는지 모른다.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올인 한다는 얘기처럼 내가 구상하고 만든 것에 만족감을 표시하니까 더 더욱 신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가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인정하고 잘 한다고 혹은 멋있다고 할 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취미이지만 내 글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림을 보고 멋있다고 툭 내뱉는 사람이 감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취미니까 꾸준히 할 것이지만 그래도 느낌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큼 인간을 즐겁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세월의 무게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칭찬이다.
내가 그린 조잡한 그림을 보고 너무 멋있다. 라고 하면 사실과 다른 립써비스 일지라도 듣기 좋은 것은 아이도 그렇지만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괜히 아내한테 자랑을 한다.
“오늘 그린 그림인데 어때?”
“정말 멋지네요.” 라고 대답을 하면 어깨가 우쭐거리고 괜히 아내가 예뻐 보이기도 하니까 인간은 누구나 칭찬에 감흥 한다는 얘기다.
사실 내가 화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에서 배운 것도 아닌데 그림이 멋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작은 칭찬 한마디에 용기를 가질 수 있고 신이 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느끼는 감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습작을 해놓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얘기만 들려주고 있을 뿐이고 가슴 저 밑에 존재하는 얘기는 그냥 혼자 보는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쓴 글을 가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다시 꺼내어 읽어보곤 한다.
그것은 지난 시간에 대한 되돌림이 아닌 흘러간 시간 속에 존재했던 생각에 대한 반추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가졌던 생각과 느낌이 무엇이든지 소중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때와 지금의 차이에서 어느 방향으로 변화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심하게 놀란다.
그때의 생각이 지금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늘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시대상에 대한 글도 있고 가족 간에 일어나는 작은 얘기도 있지만 그것이 가지는 그 시간에 대한 추억처럼 삶이 묻어있기 때문에 가끔 읽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모른다.
작은 방에 꾸며진 것은 별것 아니다.
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달랑 한쪽 벽면을 채운 책장 그리고 내가 만든 각목으로 된 장식장이 전부지만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작은 행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것이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또 글을 쓴다.
아무 간섭도 존재하지 않는 이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조잡하고 하찮은 것일지라도 나에게는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명력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에 즐겁고 유쾌한 것이다.
벽면에는 내가 그림 그림으로 채울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웃을 것이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토설하게 될 것이다.
감사하면서 말이다.
존재와 여유가 상존하는 이 작은 공간에서 단조로움의 행복까지도 덤이라며 웃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