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오늘 밤은 무장 해제다.
베란다 선반에 올려진 군납용 카스 프레쉬 캔맥주 하나 마시고 있다.
딱히 마시고픈 것보다 그냥 있어서 미적지근한 거 하나 땄다.
역시 맥주는 차가워야 제맛인가 보다...
얼마 전 네가 말한 공부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내 생각을 전해 줬지.
실은 난 너처럼 전문서적을 읽지 않았거든. 장자의 이야기도 우화집 한권, 그리고
신영복의 책 속에 일부분 정도밖에 모른단다.
다만, 네게 한 이야기는 그 속에서 내가 '느끼고 깨달은 거' 그게 전부였어.
나한테는 무엇이든 내 이익을 얻기 위해 한다는 생각은 많이 지워져 가고 있다.
그냥 '내 존재' 로 책이란 '또 다른 존재' 와 부딪칠 따름이지.
네게 말한 '존재와 존재의 만남' 과 같은 뜻이지.
네가 표현한 '공부도 뭔가 알로 먹으려 한다' 는 건 아마도 내 생각엔 그거 같다.
'마주침' 이 없는 것, 결국 책이란 존재 앞에 '네 존재' 를 내놓지 않았다는 뜻 같아.
그래서 네겐 공부도 악세서리 같다는 조급함이 생긴 게 아닐까...
친구야, 많은 경우에, 아니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마주침' 을 피한다는 걸 나는 알아.
생각에 생각을 마주하면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간 사람도 있고,
마음에 마음을 마주하면 삼십육계(계 자가 맞나??) 줄행랑 치는 사람도 숱하게 보았지.
사상? 철학? 그런 것 모두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
넌 어떠니? 마음, 생각, 사상, 철학, 종교........... 그런 게 다 따로따로 잘 정리되어 있니?
나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 그런 것들이 모두 섞여서 소화되고 있다고 느껴.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잠깐씩 보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그렇게...
나와 내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친구야,
너도 아팠고 나도 아프잖니. 굳이 마음의 병, 육체의 병 따로 떼어낼 것 없이 우린 둘다
'죽음의 문' 앞에 가 보았잖니.
그 앞에서 나는 더 머물러 있길 바래, 네가...
그때의 '충격' 을 '조급함' 으로 바꾸지 않길 바래. 그래서 늘 실체를 보며 살아가길 바래.
'죽음' 과 '삶' 은 한 몸이란 것을 발견하고 네가 찾던 것이 그것이었음을 '기쁨' 으로 마주하길 바란다.
맥주 김 다 빠졌다. 안녕.